▲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

1. 사실관계

인천항만공사는 항만시설의 신철, 개축, 유지, 보수 및 준설 등에 관한 공사의 시행 및 항만의 경비, 보완, 화물관리, 여객터미널 등 항만의 관리·운영에 관한 사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사업주다. 공사는 항만시설의 갑문(조석간만의 차이가 심한 항만 등에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 수위의 고저를 조절하는 수문) 정기보수 공사를 시행했고 갑문 정기보수 공사를 A와 B업체에 공동 도급을 줬다.

2020년 6월3일 현장소장은 갑문 정기보수공사 현장에서 A회사 소속인 피해자 L(남, 46세)에게 갑문 상·하부 가이드장치 분리 작업을 위해 갑문 상부에서 윈치(밧줄이나 쇠사슬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내리는 기계)를 이용해 18미터 아래 갑문 하부 바닥으로 H빔(길이 2.5미터, 무게 42.5킬로그램), 유압잭, 공구 등을 내리는 작업을 진행하도록 했다. 그런데 피해자가 인근에 있던 윈치프레임(윈치를 거치하기 위해 철제 앵글로 제작된 틀)이 전도되면서 갑문 아래로 추락하자, 윈치프레임의 컨트롤러 및 H빔에 연결된 가이드 줄을 잡고 있던 피해자도 함께 18미터 아래 갑문 바닥으로 추락해 그 자리에서 다발성 손상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 자신의 근로자와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 도급인인 인천항만공사와 공사의 안전보건관리 총괄책임자인 C(인천항만공사 대표)는 ① 추락할 위험이 있는 높이 2미터 이상의 장소에서 근로자에게 안전대를 착용시킨 경우 안전대를 걸어 사용할 수 있는 설비를 설치해야 함에도 안전대 부착설비를 설치하지 않았고, ② 중량물 취급 작업을 하는 경우 근로자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추락·낙하·전도·협착·붕괴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대책을 포함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함에도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는 등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2. 쟁점의 정리

이 사건의 경우 인천항만공사 및 공사의 대표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지는 도급인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 의무가 제외되는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지 아니하는 자(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의무 책임에서 제외되는지가 쟁점이었다.

3. 1심과 2심 판결의 요지

1심은 인천항만공사와 이 공사 사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의 지위에 있다고 봤다. 1심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34조6항의 규정을 산업안전보건법을 규범적 해석의 근거로 삼고,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에 해당하는지는 여부는 실제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지가 아닌 규범적으로 평가해 도급인의 지위는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지위에 있는 자에 해당하는지 의해 판별해야 한다고 봤다. 1심은 인천항만공사의 규모, 실제 갑문공사에서 한 행위 등을 고려할 때 갑문 정기보수공사를 발주하고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할 책임이 있는 자로서 그 시공을 주도하고 총괄·관리했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 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으로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해 인천항만공사 사장에게는 1년 6월의 실형을, 인천항만공사에게는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그런데 2심은 산업안전보건법의 도급인 판단시 건설공사발주자를 예외로 둔 취지를 강조해 ‘인천항만공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이 제외되는 건설공사발주자’라고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산업안전보건법 건설공사 시공이란 전문자격 업체만 수행할 수 있다고 봐 인천항만공사는 갑문에 대한 정기보수 공사에 있어 전문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시공할 자격이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했다고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 발주자에 해당할 뿐 도급에 해당하지 않아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해 인천항만공사 및 대표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4. 대상판결의 요지

이와 같이 엇갈린 1심과 2심 판단에 대해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규범적 해석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정 체계, 입법경위와 함께, 개정법상 도급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는 수급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와 중첩적으로 부과되는 것으로’ 보고,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관계수급인 근로자 사망에 관한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한 것은 종래 도급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의무를 한정적으로만 인정하고 그 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제한적으로 형사처벌하던 것에 비해 의무 인정범위가 확대한 결과 사망사고에 대한 도급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 도급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예방함으로써 근로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적 결단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도급인에게도 산업재해 예방의 의무와 사고발생의 책임을 폭넓게 묻겠다는 입법취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다.

아울러 대법원은 건설공사의 도급시 도급인의 범위는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에 한정’하겠다는 제한 사항 역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입법취지를 고려해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다음과 같은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 대법원은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사망한 관계수급인의 근로자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상 형사책임을 부담하는 도급인에 해당하는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경위와 취지와 함께 ‘도급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시행하는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된 유해·위험요소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도급 사업주가 해당 건설공사에 대해 행사한 실질적 영향력의 정도, 도급 사업주의 해당 공사에 대한 전문성, 시공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규범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법리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기준에 따라 ‘인천항만공사 사건에서 피고인 공사는 항만의 핵심시설인 갑문의 유지·보수에 관한 업무를 주된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전담부서를 두고 있고, 여러 증거들을 통해 갑문 보수공사의 설계·시공·감리 등 준공까지의 전 과정을 기획하고, 설계도면도 직접 작성하고, 수급업체의 보수공사 공정률을 매주 점검하면서 공정상황을 고려해 설계도면을 직접 변경하는 등 갑문 보수공사 과정의 전문성은 갖고 있으며 전체 갑문시설 정비·보수 작업의 일부를 시행하기 위해 보수공사를 도급한 것인바, 피고인 인천항만공사는 갑문 정기보수공사에 관한 높은 전문성을 지닌 도급 사업주로서 수급인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봐 ‘인천항만공사는 건설산업기본법상 건설공사 시공자격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갑문 정기보수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로서 단순한 건설공사발주자를 넘어 수급 사업주와 동일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중첩적으로 부담하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5. 대상판결의 의미

2018년 12월 김용균 노동자 사망을 계기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도급인의 범위가 전면 확대됐다. 구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사업 시의 안전·보건조치와 관련해 사업의 일부 또는 전문 분야 공사의 전부를 도급 주는 사업주 중 그 사업주의 근로자와 수급인의 근로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한정해 도급인에게 산업재해 예방 의무를 부과했다. 그러나 개정 법에서는 도급의 의미를 명칭에 관계없이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타인에게 맡기는 계약이라 정의하고 도급인의 경우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자신의 근로자뿐만 아니라 관계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해서도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부담하도록 그 책임 범위를 확대했다. 다만 법 개정 당시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지 아니하는 자’인 ‘건설공사발주자’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러한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할 경우 도급인 의무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뒀다. 이후 이 조항은 건설공사를 발주한 도급업체에서 형사재판시 면책의 근거로 반복해 사용됐고 하급심 판결도 그동안 이 조항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엇갈린 법리해석을 내놓아 논란이 됐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도급인의 범위를 확대한 개정법 취지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이뤄지는 공사의 규모와 성격 등을 고려할 때 관계수급인이 안전보건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여부의 규범적 판단기준을 제시해 건설공사의 시공자격 여부와 상관없이 도급인의 범위를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건설공사의 일부를 수급업체가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당초 건설공사발주자에 대한 형식적 법률 해석으로 도급인의 산업안전보건법상 보호의무가 축소 해석됐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 도급인의 관계수급인에 대한 실질적인 안전보건의무가 강화되는 계기가 돼 노동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판결로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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