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일상이 비상계엄과 같았다”고 외치는 노동자들이 있다.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 발동으로 파업권을 제한받은 화물노동자, ‘건폭몰이’로 노조 사무실 압수수색과 조합원 무더기 구속을 당한 건설노동자들이다. 거주·이전 및 직장 변경의 자유를 제한받아 온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가 인력공백을 메우는 수단으로만 이주노동자를 활용하려 한 탓에 이들의 설 자리는 더욱더 좁아졌다. 17일 <매일노동뉴스>가 만난 노동자들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내려진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에 담긴 내용이 본인들의 일상과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미 상시적 비상사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탄핵 이후 한국 사회는 비상계엄 이전이 아닌 더 나은 사회가 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화물노동자 “업무개시명령이 비상계엄령”
건설노동자 “건폭몰이로 건설현장 비상사태 계속”
“저희는 이미 2년 전에 계엄 선포를 당했죠. 2022년 안전운임제 일몰을 막으려고 총파업 투쟁을 했는데 사상 처음으로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어요. 저희에겐 계엄령 선포나 다름없었어요.”
경북 포항에서 철강을 운송하는 화물노동자 장재석(50)씨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보고 2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2022년 12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과로·과적·과속을 막는 안전운임제의 일몰에 반대하며 총파업(집단운송거부)에 나섰다. 앞서 같은해 6월 화물연대는 정부와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과 ‘품목 확대 논의’에 합의해 파업을 유보했다. 제도 일몰을 앞두고 논의에 진전이 없자 6개월 뒤 파업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칼을 빼 들었다. 노조의 파업을 불법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을 넘어 운송업무를 강제하는 시도다. 당시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을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왜곡된 노동관을 숨기지 않았다.
철강은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 품목은 아니었지만 장씨에게도 ‘든든한 안전망’이었다. 사측과 운임료를 협상할 때 간접적으로나마 안전운임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씨는 안전망을 되살리기 위해 지난달부터 국회에 안전운임제 확대 입법을 촉구하는 상경투쟁에 참여했다. 비상계엄 선포 하루 전인 2일에도 국회 앞에 2천여명이 모였다. 장씨는 “국회가 언제 정상화될지 모르고, 정상화된다고 해도 안전운임제 논의가 바로 될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안 그래도 얼어붙은 경기로 철강 물동량이 감소해 힘든데 (계엄 선포로) 찬물을 끼얹었다”며 화물노동자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건설노동자도 비상계엄 선포 전후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노조혐오 정서에 편승해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적인 ‘노조 때리기’에 나섰다. 화물연대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면 건설노조에는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건폭’으로 칭한 뒤 강력 단속을 주문하는 식이었다.
10월에 30일간 국회 인근에서 고공농성을 한 문승진(52)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사무국장은 “대대적인 탄압이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비상계엄’ 상태였다”고 말했다. 문 사무국장은 노조가 5개 권역 철근콘크리트연합회와 진행한 임금협상에서 사측이 ‘임금 삭감’을 제시하자 광고탑에 올랐다. 사측이 삭감안을 철회하면서 농성을 끝냈지만 서울·경기·인천과 광주·호남은 아직 협상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연내 마무리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건폭몰이 이후 교섭석상에서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는 것이 ‘협박’이나 ‘강요’로 취급되면서 노조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됐다. 노조가 ‘사라진’ 건설현장은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졌다. 비상사태가 일상으로 자리하면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 사무국장은 “윤석열을 끌어내려도 노동환경을 다시 이전 상태로 돌리고 현장에 정착시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제도 공백으로 인권 사각지대 놓인 계절근로자
20대 필리핀 이주노동자, 브로커가 월급 절반 ‘착취’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더욱 쪼그라들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고용허가제 인력 도입을 검토하면서 동시에 이주노동자 상담과 교육을 수행하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의 올해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사업장 변경조차 자유롭지 못해 직장 선택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당한 이주노동자에게 지역 이동마저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주여성 인식 개선과 폭력 피해 예방을 위한 사업 예산도 전액 삭감됐다.
그런 가운데 올봄부터 계절근로자로 일한 필리핀 국적 A(20)씨에게는 비상계엄령보다 당장의 비자 문제가 더 크게 다가왔다. 계절근로자는 단기간 집중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농·어업 분야에서 최대 8개월까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제도다.
A씨는 한국에 입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브로커에게 월급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빼앗겼다. 브로커는 그와 같은 지역에서 일하는 계절근로자 40명에게 각 3개월 동안 300만원을 중개료 명목으로 요구했다. 해당 브로커는 입국 과정에서 A씨를 비롯한 필리핀 노동자들에게 입금약정서를 강요했고, 입국 뒤에도 약정서를 근거로 임금 착취를 자행했다. A씨와 이주인권단체는 브로커를 인신매매와 직업안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할 계획이다.
브로커에 갈취당한 돈을 받아내야 하지만 그의 체류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A씨도 다른 이주노동자처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평범한 목적으로 한국에 왔다. 그는 “계절근로자라는 기회를 잡아야 했다”며 “한국 최저임금은 필리핀 고위공직자 월급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어렵게 한국에 들어왔지만 입국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계절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방치 속에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에 근거해 최소한의 고용절차와 관리·보호 제도가 규정된 고용허가제와 달리, 법무부가 운영하는 계절근로자 제도는 운영지침으로만 규율하기 때문이다. 계절근로자 배정은 송출국 지자체와 우리나라 지자체가 MOU(양해각서)를 맺어 결정하지만 근거법이 없다 보니 모집·송출·운영 등의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한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이 수임료와 수속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갈취당한다. 브로커의 요구를 거부하면 신분증을 빼앗기거나 친인척에게 연대보증을 서도록 협박당하는 일도 잦다.
이주노동계는 정부가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계절근로자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기복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는 “현행 계절근로자 제도는 이주노동자 보호장치가 지나치게 허술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전혀 담보할 수 없다”며 “근거법을 만들어 규제하고 입국 과정에 드는 비용을 해외처럼 이용자 부담원칙, 즉 고용주가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비상계엄 이전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로
노동자들은 탄핵 이후 사회가 ‘원상복귀’가 아니라 ‘더 나은 사회’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일상이 비상사태가 된 만큼 비상계엄 이전으로 돌아갈 게 아니라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재석씨는 탄핵 이후 안전운임제 재입법을 넘어 적용범위 확대를 간절히 소망한다. 장씨는 “화물노동자와 도로의 안전은 곧 국민의 안전”이라고 강조했다. 문승진씨도 탄핵 이후 건설노동자 고용불안 문제가 꼭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똥떼기’로 중간착취를 당해도 문제제기를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고용안정을 촉구했다. 자신과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소송을 결심한 이주노동자 A씨는 “탄핵 이후 (브로커 처벌 규정이 미비한) 계절근로자 제도를 바꿔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고은·정소희·이재 기자
“시위 안 돼” 기본권 제한, 포고령 처음 아니다
윤석열 정부 광장집회 불허, 평화집회 ‘이격’
… 타임오프 감독·회계공시 강요하며 ‘법치’ 주장
계엄으로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윤석열 정부는, 특히 노동계의 온갖 기본권을 빼앗거나 의무 없는 강요를 남발해 왔다. 사전에도 없는 노사 법치주의는 계엄 전 윤 대통령의 제왕적 포고나 다름없었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내려진 포고령 1호에서 제한한 노조활동과 집회는, 집권 기간 내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에서 경찰은 거듭 광장의 집회를 불허했다. 서울시는 2022년 8월 재개장한 서울 광화문광장 집회와 시위를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통해 공익 목적을 선별해 집회 허가를 내주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금지됐다. 청계광장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용산 대통령실 앞을 집회·시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주요 도로’로 지정했다. 매번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집회가 삼각지역 인근에서 경찰과 충돌한 이유다. 집권 2년 차에는 보수단체 집회가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다며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의 집회는 용산구 남영사거리부터 차단하기도 했다.
대법원 앞 집회도 막았다. 지난해 5월25일과 같은해 6월9일 잇따라 경찰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개최한 대법원 앞 문화제를 강제해산했다. 연행은 없었지만 대법원 앞 시위자를 길 건너편으로 강제로 옮기는 ‘이격’ 행위가 등장했다. 노동권 보장과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요구한 노동계의 오랜 집회는 옮겨지고, 미뤄지고, 가려졌다.
집회와 시위를 제한한 조치가 기본권 제한이라면 노조에 대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근로감독과 노조회계 공시 요구는 의무가 아닌 행위를 강요한 조치다. 노사자율 원칙에 따라 타임오프 협약을 체결해 운용하는 공공기관 사업장을 집중 근로감독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타임오프 기준을 어겼다며 사용자쪽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지난해에는 근로감독 범위를 제조업 사업장으로 넓혀 노사 갈등을 사실상 유도했다. 우리나라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은 타임오프제도 운용은 노사자율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노조법상 타임오프 기준 ‘상한’을 운용한 대목이 충돌했다.
노조회계 공시는 강요의 표본이다. 정부는 노조비를 세액공제한다는 이유로 1천명 이상 규모의 노조에게 회계자료를 정부에 보고하고 공시하라고 요구했다.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에게 전면 공개되는 회계를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일반시민에게도 공개하라는 기형적 요구다. 정부는 정부 보조금이 들어간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는 노조도 공개를 의무화해 노사 갈등을 자초했다.
이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