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균재단

“무릎이 닳아서 없어질 것 같다는 고통을 참으며 일을 해야만 했던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아빠는 남은 생을 죄진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지. 못난 아빠를 용서해 다오.” 쿠팡 택배노동자 고 정슬기씨에게 아버지인 정금석씨가 쓴 편지다.

쿠팡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 유족들이 12일 오전 가족에게 쓴 편지를 들고 국회 앞을 찾았다. 연이은 과로산재가 발생한 쿠팡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 동의자가 5만명을 넘은 가운데, 관련 논의는 국회에서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날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쿠팡은 과로사의 본질인 클렌징 제도는 그대로 두고 조삼모사 대책을 내놓고 지금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고 있다”며 “택배서비스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토교통위원회와의 합동청문회가 절실한 만큼 환노위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국정감사 전 환노위와 국토위는 잇따른 노동자 산재를 일으킨 쿠팡에 대한 합동 청문회를 고려했지만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국정감사가 끝난 뒤 이른바 예산국회 국면으로 들어가며 우선 의제에서 밀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환노위 전체회의에서도 쿠팡 청문회를 언급한 의원은 정 의원뿐이었다. 정 의원은 “유족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청문회가 필요하다”며 “간사들과 위원장의 적극적인 논의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청원을 제기했던 쿠팡 유족들은 환노위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만이 유족들의 마지막 보루”라며 “다시는 우리처럼 무너지는 가정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기자회견에는 정금석씨를 비롯해 쿠팡 일용직 노동자 고 김명균씨의 배우자 우다경씨,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와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했다.

유족들은 한목소리로 국회가 하루빨리 쿠팡 청문회를 열어줄 것을 호소했다. 우다경씨는 “로켓배송이 부르는 빨리빨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며 “국회에서도 방치하지 말아 주시고, 청문회를 꼭 열어 진상을 꼭 밝혀 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미숙씨도 “지금까지의 죽음들을 조사하고 사과와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님·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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