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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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은 언제나 활기로 가득차다. 특히나 올해 말 30여년에 걸친 터미널 확장 공사 완공을 앞둔 터라 공항 곳곳은 새로운 여행객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다. 이번 공사가 끝나면 공항은 1억명의 여객을 수용할 수 있는 ‘메가 허브’ 공항으로 거듭난다.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 등 각종 지표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였던 인천공항의 명성에 맞는 여객 규모라는 평가다.

그런데 공항 곳곳을 지키는 노동자들의 얼굴 표정은 어둡다. 공항의 시설·보안·환경 등을 책임지고 승객을 마주하는 이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 3개 자회사 소속의 노동자들이다. 용역업체에 소속돼 있던 노동자들은 자회사 정규직으로 2019년부터 전환돼 고용안정은 얻어 냈지만 처우는 답보 상태다. 특히 고질적인 인력부족과 연속된 야간근무를 부르는 3조2교대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서울교통공사·한국철도공사 등 운송 분야 공기업이 연속된 야간근무가 노동자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 3조2교대를 4조2교대로 전환하는 것과 달리 인천국제공항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은 여전히 3조2교대에 머물러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7일 인천공항 1터미널을 찾아 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3명의 노동자들은 제각기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며 “야간근무는 발암물질”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에게 교대제 개편은 목숨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인력충원해 ‘3조2교대 → 4조2교대’ 절실”
“아픈 곳 없이 정년퇴직하는 게 목표”

편집 김선영 기자
편집 김선영 기자

2005년부터 공항에서 일을 시작한 보안경비 노동자 소형은(51)씨는 스스로를 “노쇠했다”고 표현했다. 주간근무 때 하루 2만보를 걷는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몸과 마음은 지친 지 오래다. 높은 노동강도에 지친 수많은 동료를 떠나보내며 그의 바람은 소박하게도 ‘정년퇴임’이 됐다.

소씨는 공사의 자회사인 인천국제공항보안 소속이다. 공항 안팎을 순찰하고 드나드는 사람과 차량을 검색한다. 인천국제공항보안 노동자들은 보안경비직과 보안검색직 노동자들로 분류돼는데, 올해 6월 기준 각각 1천656명·1천884명씩 일하고 있다. 소씨가 맡은 보안경비직은 공항 내 1·2터미널과 탑승동, 외곽에 배치돼 순찰을 돌거나 공항 직원을 대상으로 보안검색을 한다. 공항 내 위험상황이 발생했을 때 초동조치를 담당하는 기동타격대도 보안경비직이다.

공사 3개 자회사는 모두 3조2교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보안경비 노동자들은 주간근무가 10시간(휴게 2시간)으로 다른 자회사에 비해 1시간 더 길다. 공항 진입시 혼잡도를 고려해 30분 빨리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하기 때문이다.

주간근무 때는 주로 순찰을 하게 되는데 대체로 2만보를 걷는다. 야간에는 그보다 더 걷는데 휴게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3시간 일하고 1시간 쉬도록 돼 있지만 1터미널은 휴게시설까지 거리가 멀고 검색대를 지나쳐야 해 이동에만 20분은 소요된다. 30여분 쪽잠을 자고 다시 순찰에 나서니 피로가 풀릴 리 없다. 특히 ‘주간-주간-야간-야간-휴게-휴게’로 두 번째 야간근무를 서는 날에는 업무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다. 10년 넘게 일한 주변 동료들은 고혈압·디스크·족저근막염·수면장애·장염 등을 앓고 있다. 갑상선암·유방암 같은 암환자들, 갑작스레 뇌출혈이나 심장마비로 숨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소씨는 “검색대에서 나오는 방사능에도 노출되고 무엇보다 연이은 야간근무에 따른 몸의 부담이 크다”며 “가족들과 생활이 불가능한 근무형태라 가족 때문에 직장을 옮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소형은씨는 “지난 1년간 신입사원을 뽑아도 10명 중 7명이 그만둘 정도로 노동강도 대비 보상이 적다”고 호소했다. 공사 자회사 3곳은 모두 ‘가·나·다·라·마·바’로 나뉜 6단계 직급체계를 운영하는데 보안경비직은 가장 낮은 직급인 마·바급이 전체의 91%를 차지한다. 바급 신입직원은 야간근로·휴일근로수당을 포함해 세전 317만원 정도를 받는다. 복리후생은 1년에 두 번 나눠 받는 명절상여금 100만원과 복지포인트 150만원, 매달 월급과 함께 나오는 급식비 11만원(포인트)이 전부다. 직급 간 급여차이도 크지 않은데 승급 기회나 승급TO 제한으로 장기근속 유인책이 거의 없다.

최근에는 각종 보안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묻는 일이 일어나기도 해 정신적 스트레스도 높아졌다. 소씨는 “예전에는 내부 징계로 끝날 일을 정부에서 보안 실패 책임을 물어 고소나 고발로 대응하면서 1년간 3명 정도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며 “신입들은 처우에 비해 노동강도가 높다고 느끼고 장기근속자는 업무부담을 느끼면서 퇴사자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공항 입사 전 민간경비업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소씨는 비슷한 경력을 가진 민간업체 동료에 비해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노동자들은 인력충원을 전제한 4조2교대로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수년 전부터 정원대비 인력이 부족한 실정을 강조해 온 데다가 4단계 준공을 앞둔 지금 교대제 전환 없이는 온전한 개항이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모회사인 공사는 업무 자동화로 사람의 채용을 최대한 제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현장 노동자들은 “자동화는 허구”라며 “현재 기술력으로는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기 어려운데도 공사는 이를 이유로 충원을 지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난 3월에도 공사는 폭발물 탐지 기능을 갖춘 로봇개를 시범적으로 소개했지만 제대로 도입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소씨는 “2억원짜리 로봇개를 시범운행하다 오류가 나 하루 만에 수거해 갔다”며 “비싼 로봇개를 수거하려면 우리가 필요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해가 지날수록 건강에 확신을 잃어 가는 소씨는 교대제 개편으로 동료와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자부심을 갖고 일하기를 바란다.

“공항에서 일을 시작할 땐 보람도 있었어요. 갑자기 쓰러져 심장마비가 온 분을 응급조치로 살려 내거나 화재가 났을 때 초동조치를 잘하고, 외국인 손님에게 안내를 잘해 칭찬 글을 받기도 했죠. 지금은 자부심이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어요. 매해 병은 늘어나니 정년퇴임이 목표가 됐어요. 부디 교대제 개편으로 조금이라도 일터를 사람답게 바꾸고 싶어요.”

항공편 5배 늘었는데 사람은 그대로
“입사한 거 후회, 자부심 생길 리 있나”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오고 나서 엄청나게 후회했죠. 지금은 더해요. 항공편이 (입사 때와 비교해) 5배 늘었는데 사람은 거의 그대로니까요.” 2003년 입사한 권도형(47)씨는 인천공항운영서비스 소속의 탑승교 노동자다. 원래 공항 경비대로 일하던 권씨는 “급여도 세고 조건도 좋다는” 소문을 듣고 탑승교에 지원했다. 해가 갈수록 권씨는 당시의 소문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밥 한 끼조차 제대로 먹기 힘든 근무 환경과 고질적인 인력부족 문제 때문이다.

탑승교 노동자는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하는 승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항공기와 공항을 잇는 탑승교를 제어해 비행기와 결착하는 ‘접현’이나 비행기와 해제하는 ‘이현’이 주된 업무다. 탑승교 근무자 1명 여객기가 드나드는 게이트 3개씩 전담한다. 항공편마다 출발과 도착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스케줄 변동이 많아 긴장의 연속이다. 탑승교를 늦게 연결하면 모회사에 보고돼 기관 평가에 영향이 가기 때문이다. 전담 게이트가 있긴 하지만 항공기가 몰려 들어오는 경우에는 다른 근무자의 게이트에 지원을 가기도 한다.

이들도 다른 자회사처럼 3조2교대로 ‘주-주-야-야-비-휴’로 근무한다. 주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점심식사를 위한 하루 1시간의 휴게시간이 주어지는데, 20분 내로 밥을 먹고 일터로 복귀하기 일쑤다. 항공편 스케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휴게시간은 사치다. 탑승교직군은 야간근무 때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서기도 하는데, 이때는 거의 잠에 들지 못한다. 권씨는 “식습관도 불규칙하고 빨리 먹으니 대부분 소화장애나 위염을 갖고 있고 불규칙한 생활로 혈압도 불안하다”며 “갑상선·위 질환이나 오랜 대기로 족저근막염을 앓기도 한다”고 말했다.

탑승교 설비는 고가이기 때문에 정신이 곤두선 채 일해야 한다. 항공편 스케줄에 맞춰 제대로 조작해야 할 뿐 아니라 정확한 위치 조작, 사고 없는 조작이 요구된다. 지금은 코로나 이전에 비해 항공편이 체감 90% 정도 회복된 상황이라 4단계 개항이 더 걱정된다. 정원 대비 현원이 부족해 자회사에서 채용공고는 계속 내고 있지만 채용부터 투입까지 최소 4개월은 소요돼 충원이 즉각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권씨는 “사람이 부족해 연차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터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정이 생길 리 없지 않냐”며 “승객 입국시 가장 먼저 우리를 만나 공항의 얼굴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야간근무요? 20년 일해도 적응 안 돼요”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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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공항에서 일한 지 만 20년 된 이자형(44)씨는 “아직도 몸이 적응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일근과 ‘주-주-야-야-비-휴’의 3조2교대 근무를 오갔지만 야간근무에는 특히 적응하기가 힘들다.

“야간근무를 서는 게 10년, 20년을 해도 적응이 되는 건 아니더라구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밤을 새고 휴식을 해도 쉬는 게 아니거든요. 두 번째 야간근무 때는 어디가 다친 사람처럼 (피곤하니까) 생각도 행동도 다 느려져요.”

인천국제공항공사 자회사 인천공항시설관리에서 일하는 일하는 이씨는 공항 내 전기시설물을 점검하고 관리한다. 수명이 다 된 조명기구를 교체하고 공항 내 각종 충전기가 잘 작동하는지 들여다보기도 한다. 각종 시설물의 전등이나 전원이 나가면 현장에 출동하도록 돼 있다. 사후 보고서에 초 단위로 출동시간을 기록하게 돼 있어 작업이 없어도 언제나 대기상태다.

시설물 교체 같은 작업을 할 때는 높이가 까마득한 공항 천장까지 닿는 크레인을 쓰기도 한다. 1터미널은 4개의 구역마다 4~5명 정도로 구성된 작업조가 하나씩 배치돼 있는데 조마다 최소 6명은 배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공항은 수많은 탑승객이 지나가기 때문에 안전하게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통행 통제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압·고전력의 시설을 다루거나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일이 적지 않아 사고를 예방하려면 교대제 개편이 절실하다고 한다.

“야간근무 둘째날에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말도 어눌해지고 행동도 느려져요. 야간에도 민원이 생각보다 많아요. 충전기가 작동 안 한다, 화장실에 불이 안 켜진다고 해서 출동하니 잘 쉴 수도 없죠. 휴게실은 수십 명이 한꺼번에 쓰니 위생상 잘 관리도 안 돼 쉬는 것 같지도 않아요.”

이씨는 갈수록 기억력에 문제를 느낀다. 연속된 야간근무 탓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암과 뇌출혈로 쓰러져 퇴사하는 동료들을 보며 더 나은 일터를 꿈꾸게 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항에서 일한다는 마음에 근무복을 입고 일할 때는 몸과 마음을 조심히하려고 하죠.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다 저 같은 마음이실 거예요. 그런데 우리 노력에 비해 현장노동자들의 노고는 많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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