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철 금속노조 시흥안산지역지회장

2013년과 2024년 반월·시화공단의 변치 않은 풍경

한때 반월·시화공단은 전국 제조업 파견노동자의 93%가 모여 있었다. 파견업체가 카페보다 많았다. 어떤 공장은 생산직 100명 중 80명이 파견노동자였다. 파견업체도 다양했다. 라인별로 업체를 달리했다. 물량이 줄면 라인이 통으로 없어졌다. 20명을 해고하는데 1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문자 한 통이면 됐다. ‘일이 없으니 당분간 쉬어라.’ 문자를 받은 노동자는 다음날 고용노동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파견업체를 찾아가 일자리를 구했다. 명백한 부당해고지만 파견노동자들에겐 그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쓰다 버리는 휴지였다. 파견노동자에게 노동법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었다.

다치면 산재 처리 대신 해고를 당했다. 인권 따위는 언감생심이었다. 정규직 조장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반말에, 말끝마다 욕설을 내뱉었다. 노조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술자리에서 혹여나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노조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운을 떼면 어김없이 ‘노조의 노자만 나와도 회사 문 닫는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2013년의 이야기다.

지나간 역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2024년 반월·시화공단에서 ‘현장에 욕설이 난무하고, 노조를 만들었다고 회사를 폐업하고 집단해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현대위아에 전기차 부품을 공급하는 동서페더럴모굴은 사내하청업체 에이쓰리HR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도급계약을 종료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집단해고 했다. 기시감이 든다.

2013년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의 ‘안산·시흥지역 제조업 불법파견 실태조사’를 통해 불법파견의 일면이 세상에 드러났다.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가위바위보 해고, 퇴근길 해고, 여성 탈의실 검사, 욕설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침해 백화점’이 펼쳐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휴가를 내겠다”고 하자 “니가 거기를 왜 가냐”는 답변과 함께 그 자리에서 해고된 사례가 무덤덤하게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3년 뒤 노동부는 ‘안산·시흥지역 파견근로자 보호 종합대책’을 뒤늦게 마련해 시행했다.

아리셀과 동서페더럴모굴의 불법파견 문제가 10여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노골적인 불법 인력파견에서 형식적인 도급계약으로 위장했다는 것이다. 2013년 불법파견 근절 투쟁 당시 우려했던 풍선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의하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파견이 금지돼 있다. 그때는 노골적으로 파견법을 무시했다. 민주노총 안산지부 등에서 문제제기하고,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되자 노동부가 뒤늦게 움직였다. 그러자 파견업체들은 법망을 피하기 위해 인력파견 방식에서 도급으로 탈바꿈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금속노조 경기지부

실체가 있는 도급업체라면 독립성·설비·기술·전문성을 가지고 노동자를 직접 지휘·감독하며 인사노무관리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불법파견, 즉 파견법 위반에 해당한다. 동서페더럴모굴은 에이쓰리HR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했다. 잔업·특근 일정도 직접 관리했다. 에이쓰리HR은 아무런 설비·기술·전문성이 없으며 채용 시 ‘동서페더럴모굴 입사 일정 안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노동부에 제출한 증거자료만 50여개에 달한다.

불법파견 500곳 점검한다던 노동부
노골적으로 비웃는 기업

동서페더럴모굴이 에이쓰리HR과 계약을 해지하고 금속노조 현대위아시화지회 전 조합원을 해고한 이유는 단순하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기 때문이다. 해고노동자가 불법파견으로 회사를 노동부에 고소·고발해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3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라 시정 명령 조치가 나오면 회사는 법적 소송에 돌입한다. 그새 조합원들의 생계문제 등으로 노조가 와해되길 바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겐 긴 고통의 시간이다. 오래되고 익숙한 이야기다.

이제 노동부의 시간이다. 아리셀 참사를 계기로 노동부는 ‘사내하도급 500곳에 대해 불법파견 여부를 감독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시각 동서페더럴모굴은 버젓이 불법파견을 하고 있었다. 노동부를 대놓고 무시한 것이다. 노동부가 이런 능멸에 가까운 무시를 받는 이유는 적극적인 감독을 하지 않아서다. 지난 4일 <매일노동뉴스> 보도에 따르면 ‘500곳을 조사하겠다’는 발표와 달리 점검건수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노동뉴스 2024년 10월4일자 “[아리셀 참사 잊었나] 불법파견 감독 느긋한 노동부” 기사 참조>

현장에서는 “노동부가 만연한 불법파견을 방치하고 있거나 심지어는 조장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노동부는 이미 고발된 동서페더럴모굴에 대해 적극적인 행정조치를 취해야 한다. 동서페더럴모굴이 에이쓰리HR 대신 신설한 비엔엠은 과연 합법적인 도급업체일까. 동서페더럴모굴 본사 및 안산공장, 우정공장, 모듈 어셈블리 공장, 피스톤 어셈블리 공장에는 불법파견이 없을까. 노조에서 고소·고발한 것을 넘어 적극적인 행정으로 동서페더럴모굴 전반에 대한 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금속노조 경기지부가 지난 10일 오후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앞에서 ‘불법파견·위장도급 박살! 동서페더럴모굴 특별근로감독 실시! 경기지부 확대간부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금속노조 경기지부가 지난 10일 오후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앞에서 ‘불법파견·위장도급 박살! 동서페더럴모굴 특별근로감독 실시! 경기지부 확대간부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대화와 교섭을 통한 위장도급 문제해결
'대한광통신 사례' 배워야

지난 10일 금속노조 경기지부는 노동부 안산지청 앞에서 ‘불법파견·위장도급 동서페더럴모굴 특별근로감독 실시! 경기지부 확대간부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날 이규선 금속노조 경기지부장은 동서페더럴모굴에 직접고용 이행을 위한 교섭을 제안했다.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교섭을 통해 위장도급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대한광통신이다. 대한광통신 예산공장은 공장전체가 CMS, 금강, 번영이라는 3개의 도급업체로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대한광통신은 하청노동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하는 등 명백한 위장도급을 하고 있었다. 증거는 차고 넘쳤다. 금속노조 시흥안산지역지회 대한광통신분회는 예산공장 불법파견 문제를 대화와 교섭을 통해 풀어 갈 것을 제안했다. 노조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정규직 전환에 따른 회사의 부담을 줄여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회사는 노조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노조는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대한광통신 예산공장을 불법파견으로 진정을 넣었다. 조사가 시작되자 회사는 그제야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화와 교섭을 통해 노사는 소송에 따른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정규직화에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동서페더럴모굴도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노조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것이 회사가 모토로 걸고 있는 노사상생, 노사화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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