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아침부터 자정 무렵까지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진행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자질 의혹만 키운 채 결국 파행으로 끝났다. 김 후보자는 헌법재판소가 판결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부정하고, 1919년에 무슨 나라가 있었냐, 일본이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야당은 “무의미한 청문회로, 후보자 사과가 없다면 청문회를 끝내겠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과거 논란의 발언을 포함한 모든 발언에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죄 없이 탄핵”
사법시스템 부정 발언에 야당 “우려스럽다”

김 후보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받을 정도의 죄는 없다고 주장했다. 야당 의원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과정이나 국가 사법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은 국무위원이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김 후보는 “지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죄가 없다고 생각하냐” “박근혜 대통령이 죄 없이 탄핵당했느냐”는 김주영·박홍배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박 대통령은 탄핵받을 정도의 죄는 없다, 탄핵되고 삼십 년 이상 실형을 받을 중범죄는 아니다, 무리한 부분이 있어 바로 사면·복권됐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감 4년9개월 만에 국민통합을 위한 조치로 특별사면을 받고 2021년 복권됐다.

안호영 환경노동위원장은 “장관으로서 헌법체계와 헌법재판소에 의한 탄핵 제도와 국회 및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 수사와 재판을 통한 사법시스템에 대한 생각은 후보자가 국무위원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사항”이라며 “시스템에 특별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으면서 잘못됐다고 말하는 걸 봐서는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는 “저는 헌법과 사법체계를 존중하지만, 탄핵이나 전직 대통령 구속 등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숙고해야 한다”며 물러나지 않았다.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자살특공대’ ‘손배 특효약’은 “표현 과했다”
‘문재인 종북’ ‘일본대사관 소녀상 치워야’는 “여전히 그렇다”

김 후보는 논란이 된 극우·반노동 발언도 철회하지 않았다. 박홍배 의원은 “중요한 것은 김 후보자가 과거에 했던 말들을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는지다”며 김 후보자에게 논란이 됐던 발언들이 아직도 유효하냐고 물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자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 “불법파업에 손해배상 폭탄이 특효약” “윤건영이 종북 본성을 드러내고 수령님께 충성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죽음의 굿판, 걷어치워야 한다” “다스가 누구 것이면 어떻길래 대통령을 구속시키나, 그렇다면 문재인은 총살감”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일본과의 관계를 나쁘게 해 바람직하지 않다” “광화문에 박정희, 이승만 동상을 세워야 한다” “쌍용차노조는 자살특공대”라는 발언이 여전히 유효하냐고 물었다.

김 후보자는 “당연한 이야기다” “특효약 표현은 과하나 불법파업에는 손배소를 해야 한다” “그런 측면이 있다” “세월호 기억 공간을 광화문에 두는 것은 잘못” “문재인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 “자살특공대는 과한 표현이지만, 있다가 설명하겠다”고 했다.

김문수 “1919년에 무슨 나라가 있느냐, 일본이다”
야 “반국가, 반헌법, 제국주의 침략 합법화”
여 “일장기 걸고 손기정 선수 뛰어 … 사실이 그렇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김 후보자에 대한 질의는 국가관 논란으로 번졌다. 김 후보자는 “1919년에 무슨 나라가 있느냐는 생각도 여전한가”란 박 의원 질의에 “같은 생각이다”고 답했다. “일제 강점기에 산 선조들 국적이 일본이냐, 저와 후보자 부모님 국적이 일본이냐”는 물음에 “그걸 모르냐, 일본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이 있었느냐”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헌법을 부정하고, 대법원 판례를 무시하며 일본의 논리를 정당화해 국무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봤다.

제헌헌법과 현행헌법은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해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구절이 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세워졌으며 정부 출범은 대한민국 재건이라는 뜻이다.

대법원 판례는 일본의 식민지배 합법 인정은 사회질서 위반이라고 명확히 하고 있다. 2012년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청구권 소송에서 대법원은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국가총동원과 국민징용령을 피해자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승인하면 한국의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내용임이 분명하다”고 판시했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은 “한국을 부정하고, 헌법을 부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용우 의원은 ”이승만 전 대통령도 취임 연설에서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했다”며 “반국가, 반역사적 발언”고 지적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통해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 동원됐던 사실을 부정하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합법화하는 논리”라며 “국무위원으로서 자질 부족”이라고 했다. 이학영 민주당 의원은 “대한민국 국무위원이 일본 입장을 선택하면 사도광산, 강제징용, 정신대 모두 합법이다”며 “이것을 주장하는 국무위원을 어떻게 인정할 수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여당은 “사실이 그렇다”며 김 후보를 변호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손기정 선수는 태극기를 달지 않고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며 “선조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서러움이 있었고, 식민치하에 있었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같은 당 김형동 의원은 “당시 국제적으로 한국 주권을 인정하는 나라가 없었고, 그럼에도 우리는 임시정부를 세워 법통을 이어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양 주장은 양립 가능한 이야기”라고 했다.

1시간30분 정회 뒤 산회 … 야 “역사 오점 될 인사청문회”
여 “민주당, 역사관 논쟁하다 무책임하게 떠나 유감”

이후 회의는 1시간30분가량 정회 후 속개됐지만 바로 파행됐다. 야당 간사인 김주영 민주당 의원은 “김 후보자는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언행을 일삼은 바, 국무위원 후보가 될 자격이 없다”며 “환노위원장은 역사의 오점이 될 인사청문회를 종료하고 위원장으로서 윤석열 대통령에 유감 표시를 해 주기 바라며, 김 후보자는 사퇴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여당 간사인 김형동 의원은 “후보자가 헌법 질서를 존중한다는 범위 내에서 답을 한다면, 청문회가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기를 건의드린다”고 했다. 같은 당 임이자 의원은 “민주당 의원님들이 역사관 논쟁을 벌이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떠난 데에 매우 유감”이라며 “서로 입장이 다른 걸 가지고 청문회를 파행으로 치닫게 했다”고 파행의 공을 민주당에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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