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부터 대전시는 여성들의 일자리를 위해 콜센터 유치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대전의 여성들이 임금이 낮고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충청도 여성들이 잘 참는다는 굴욕적인 이유를 들어 컨택센터협회와 손잡고 콜센터 유치에 나섰다. 이 결과 2000년대 초반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지족동에 2천여명 규모의 국민은행, 국민카드 콜센터를 유치했다. 그 외에도 카드사나 보험사를 비롯한 공공기관 콜센터까지 인구 대비 많은 콜센터가 대전에 들어섰다. 콜센터 인력의 80%가 비정규직이란 점을 참작할 때 다른 지역 대비 많은 비정규직 여성을 양산한 셈이 됐고, 원청사의 지원을 받는 용역회사에 10억~15억원에 이르는 지방세를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대전 여성들에게 콜센터는 비록 비정규직이나 가뭄에 단비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콜센터 노동은 점점 고통스럽고 힘들어졌다.
2005년 국민카드 콜센터에 입사한 필자는 매달 밤을 새워 공부하며 시험을 봤고, 시험 점수가 미달하면 재시험이나 빽빽이를 하기도 했으며, 평가 점수가 차감되면 급여가 깎이기도 했다. 고객들의 욕이나 성희롱은 옵션이었다. 전화기에 대고 자위를 하거나, 성기를 언급하는 발언을 들을 때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욕설을 하거나 머리는 왜 달고 다니냐며 인격모독을 하고, 관리자를 바꾸라고 소리치며 잘라버리겠다는 콜이 들어오면 한동안 전화를 받는 것 자체가 숨 막히는 두려움이 되곤 했다. 유명 연예인이 ‘매달 본인의 결제일에 직접 전화하라’는 갑질을 서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2016년 소희의 죽음 이후 세상에 콜센터 상담사들의 고통이 사회 문제도 대두되며 2018년 10월18일 드디어 감정노동자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41조)이 시행됐다. 많은 감정노동자가 기대했던 법이었다. 그러나 법은 허울뿐이었다. 2019년 코로나를 시작으로 콜센터의 과밀한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세상에 알려졌으나, 상담사들은 콜 폭탄에 이어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몰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AI’라는 새로운 난관을 마주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전의 대표적인 콜센터인 국민은행콜센터에 240여명의 상담사들이 집단해고를 통보받았다. 사상 최대의 실적으로 수십조원의 수익을 내던 국민은행이 AI 도입으로 인해 콜 인입량이 줄었다며 상담사 30%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다.
적게는 1~2년 많게는 17년 동안 일한 직장을 잃을 위기였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는 조치’라며 대전시와 협약으로 자리 잡았던 지족동 콜센터에서 쫓겨나 용역회사 건물로 강제 전출됐을 때도 기가 막혔지만, 집단해고는 충격 그 자체였다. 다행히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정치계에서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고,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앞에서 목숨을 건 노동조합의 노숙농성을 강행하며 결국 해고 사태는 정상적인 전원 고용승계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국민은행은 그 이후, 자연 퇴사한 상담사들의 자리를 충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인원 축소를 감행하고 있다. 은행권 콜센터만의 일이 아니다. 다른 일자리보다 AI의 도입이 빠른 콜센터는 114콜센터를 시작으로 전반적인 영역에서 축소되는 분위기다. ‘일자리 마련’이라는 명목으로 콜센터 유치사업에 열을 올렸던 대전시는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지, 대책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는 배달이나 음식점에서의 주문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은행이나 보험사의 영업점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기차표의 예매도 대부분 앱으로 진행이 되고 심지어 국가에서 발급받는 서류 또한 그렇다.
그러면 콜센터 일자리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순리인가?
상담사를 고용하는 원청사는 모두 대기업이거나 공공기관인 경우가 많으며 상시 지속적인 업무로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노동’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스마트화로 앱이나 PC에서 모든 업무가 이뤄지나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의 고충도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시대의 흐름이 모두에게 간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욱 콜센터가 필요한 시대일지 모른다.
디지털 전환의 새로운 환경에서 콜센터 상담사들에게는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폭넓은 지식이 요구된다. 금융기관 영업점의 모든 기능을 스마트 기기들이 대신하고 그 기능과 조작법을 모두 알아야 하는 콜센터 상담사의 노동강도는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반면 AI·챗봇 등은 수만 가지 종합적인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 사람을 응대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에도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없다.
고객들은 AI와 챗봇을 돌고 돌고 돌아, 지치고 짜증과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를 때쯤 결국 상담사에게 연결된다. 문제해결 능력과 상관없이 상담사들은 ‘AI를 대신한 사과와 속죄’로 상담을 시작한다.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지만, AI와 공생하는 콜센터의 노동환경은 변할 줄 모른다. AI에 대한 환상과 이윤 창출에 매몰된 기업들은 언제나 그랬듯 상담사를 기계적 시스템의 일부로 여긴다. 그러니 시대와 서비스시스템이 변해도 콜센터 상담사들은 콜수, 콜타임, 통화품질로 경쟁하는 체계에 갇혀 상담의 질을 높일 수가 없다. 콜센터의 열악한 근무 환경, 상담사들의 감정노동피해, AI 도입을 명분으로 한 자연 퇴사 인력 미충원, 그리고 당연하게 이어지는 노동강도 증가,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고도화되면, AI는 보조(단순)업무를 지원하고 콜센터 상담사들은 질 높은 상담을 책임지게 될 것이라는 환상의 협업이 과연 이뤄질까?
“AI는 기업들이 인원을 감축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면죄부로 활용하기 좋은 수단”이라고 표현한 문화인류학자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문화인류학)의 지적이 따갑게 다가올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