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회사로 변경됐더라도 피고에 대한 직접고용관계의 성립이나 직접고용의무 규정의 적용을 배제할 수는 없다” 지난 10일, 기자에게서 판결문을 받아 읽었다. 원고가 1천200여명이나 되는 사건이라 업무처리 등을 고려해서 판결문 송달을 최대한 늦추고 있었다. 그런데 판결문을 송달받으면 알려 달라던 기자가 어떻게 입수한 것인지 몰라도 판결문을 보내왔다. 지난 2일 인천지방법원이 선고한 인천국제공항공사 불법파견 사건 판결문이다. 인천국제공항 판결 선고를 두고 지난주 이미 칼럼을 썼지만, 당시는 판결문을 읽지 못한 상태였다. 사건 경위를 중심으로 자회사 전환방식의 문제를 끄적거려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판결문을 읽으면서 자회사 전환과 관련해서 재판부가 어떻게 판결했는지에 대해 쓴다. 해당하는 판시 부분을 더 꼼꼼히 읽었다. 판결문을 읽어보니 재판부는 위와 같이 자회사로 전환됐어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직접고용 의제(의무)가 적용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2. 판결이 선고되고서 더 난리다. 판결이 선고되기 전에는 ‘언제 판결이 나오냐’는 질문만 간혹 있더니, 판결이 선고되자 온갖 질문들이 쏟아졌다. 원고들은 물론, 노조까지도 그러했다. 그중 비교대상인 동종유사업무 종사자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관련한 질문도 있지만, 자회사로 소속을 변경한 것과 관련한 질문이 더 많았다. 항소심에서 사측이 자회사 전환을 강력히 주장하면 근로자지위에 관한 청구를 인정한 1심 판결이 파기될 것이라고 사측, 즉 피고인 인천국제공항공사 관리자들이 말하고 다닌다고도 걱정하며 질문하기도 했다. 자회사에 신규채용된 노동자들도 승소할 수 있는지 질문했다. 이번 판결이 선고된 이후 ‘자회사 전환’과 관련해 말하고 질문하고 더 난리가 났다.
판결문에서 이에 대해 찾아봤다. 판결문에서는 파견법에 따라 “원고들에 대한 직접고용관계가 성립 또는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하였는바, 그 후 파견사업주가 이 사건 협력업체에서 이 사건 자회사로 변경됐더라도 피고에 대한 직접고용관계의 성립이나 직접고용의무 규정의 적용을 배제할 수는 없다”라고 판시하고 있었다. 협력업체 소속에서 자회사 소속으로 변경됐어도 파견법상 직접고용의제(의무)가 인정된다고 판결한 것이라서, 시끄럽게 말할 것은 아니다.
3. 자회사 전환을 이유로 불법파견 소송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청구를 기각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사측 주장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법리적으로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전을 상대로 한 소송사건에서 담당변호사의 서면을 검토해 주면서 파견법상 부당하다고 반박하도록 했을 때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서울남부지법 재판부는 사측 주장을 인정해 원고 노동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 판결문을 읽고 또 읽었지만, 그 판결의 법리적 논리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저 업체 노동자 아무개가 대표로 원청과 노사 논의기구에 참여해서 자회사 전환에 합의했고, 그에 원고들이 응해서 자회사로 소속을 변경했다고 적시하고서 원고들의 파견법상 직접고용 청구는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이 나라에서 자회사 전환을 논의하고서 자회사 소속이 된 수많은 비정규직은 원청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으로 정규직 고용을 청구하기 어렵다. 과연 이것을 파견법 등 이 나라의 법이 선언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한전 사건 판결이 나오자 자회사로 전환한 많은 사업장의 사용자측은 마찬가지의 주장을 했다. 졸지에 이 나라에서는 자회사 전환을 선택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원청을 상대로 정규직 고용 청구를 할 수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이 오늘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현재 한전 사건은 대법원에 상고해서 다투는 상태지만 이 나라는 확고한 판례 법리인 양 이런다. 그야말로 사내하청업체에서 자회사로 소속을 변경한 비정규직의 파견법상 직접고용에 관한 권리를 빼앗는 일이 우리 노동현장에서 태연하게 저질러지고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서 강력히 투쟁할 것 같으면 사용자들은 자회사 전환을 정규직 전환방식으로 가지고 나온다. 현대자동차, 기아 등 이미 법원에서 원청의 직접고용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자회사 전환이라는 방식으로 논의·전개되고 있다.
심지어 노동조합조차도 자회사 전환을 요구하고, 그 요구 관철을 위해 투쟁할 정도다. 정규직 노조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가 조합원으로 있는 노동조합조차도 그러하다. 그야말로 오늘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자회사 방식을 빼놓고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지경이다. 이 나라에서 수십 년 민주노조운동을 전개한 노조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모비스 사례에서 보듯 자회사 전환을 현실적인 방안으로 현장 노조간부들이 추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오늘 이 나라에서는 자회사 전환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전개되는 실정이다.
4. 자회사 전환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다. 사내하청(협력)업체 소속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를 원청사업주가 설립한 자회사 소속으로 변경한다고 해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인가. 자회사의 정규직 노동자로 되는 것이니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것은 불법파견 소송에서 피고 원청이 수도 없이 해왔던 주장이다. 원청 소속이거나 자회사 소속이거나 정규직으로서 고용되는 것이라며 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주장한다면, 당초 사내하청(협력)업체 소속일 때에도 법적으로는 기간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해서 정규직이라고 주장해도 할 말이 없다. 기간제·파견제 등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일하는 것이 아니니 업체의 정규직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법적으로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당신은 고개를 끄덕거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니다. 뭐라 주장하고 변명해도, 자회사 전환은 정규직화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협력)업체와 관련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한 것은 간접고용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결코 그 업체를 사내하청(협력)업체에서 자회사로 바꾸라는 것이 아니다. 간접고용의 철폐를 통한 직접고용이야말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나라에서는 자회사 전환방식이 정규직 전환으로 여긴다. 자회사로 전환돼도 업체 소속일 때와 마찬가지로 원청과의 관계에서 보면 간접고용관계에 있는 노동자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그 지위가 달라졌다고 볼 수 없다.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단시간 및 기간제 근로자, 파견근로자, 그리고 여기서 간접고용 근로자를 두고서 한 말이다.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협력)업체 노동자의 경우 단순히 간접고용만이 아니라 파견근로자로서도 문제다. 이 때문에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사건처럼 불법파견 소송이 제기돼 파견법상 고용의제(의무)를 인정받기도 한다. 본질적으로 이 나라 노동현장에서 사내하청(협력)제도는 원청이 사내하청(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를 자신의 사업에 사용하기 위한 필요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지, 업체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 원청 사업장 내에서 업체가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내하청(협력)업체 소속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는 그 업체를 자회사로 바꾸는 것으로 실현될 수 없다. 여전히 간접고용관계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업체와 체결했던 위탁도급계약을 자회사와 체결하고, 자회사로 전환한다고 자회사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파견근로가 문제될 수밖에 없다. 이상과 같이 끄적거리고 보니 판결문에서 다시 읽고 싶은 부분이 생각났다. “자회사로 변경됐더라도 피고에 대한 직접고용관계의 성립이나 직접고용의무 규정의 적용을 배제할 수는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