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안전보건단체와 대학생현장실습대응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앞에서 삼성전자 하청업체에서 휴대폰을 만들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 문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골무 하나만 낀 상태로 하루에 수천 번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고 피로해도 바로 쉬지 못하는 극한환경이었어요. 백혈병에 걸렸는데 회사 관계자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2024년 1월31일자로 일방적으로 고용계약을 해지했죠.”

삼성전자 1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스물한 살 청년 노동자 수현(가명)씨의 어머니가 눈물을 훔쳤다. 수현씨는 지난해 9월 급성 골수형 백혈병을 진단받았는데, 회사는 4개월 무급휴직 끝에 해고해 비판이 인다.

반올림과 김용균재단,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를 비롯한 48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 갤럭시 휴대전화를 만들던 스물한 살 청년노동자이자 대학생의 백혈병 발병을 삼성은 책임지라”며 대책을 촉구했다.

일과 공부 열심히 했는데 …
돌아온 건 백혈병 진단

삼성전자 1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수현(21·가명)씨가 급성 골수형 백혈병에 걸려 치료를 받은 뒤 몸에는 열꽃이 피어있다. <반올림 제공>
삼성전자 1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수현(21·가명)씨가 급성 골수형 백혈병에 걸려 치료를 받은 뒤 몸에는 열꽃이 피어있다. <반올림 제공>

수현씨는 2023년 9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삼성전자 1차 하청업체 케이엠텍 구미공장에서 약 2년간 휴대전화 부품 조립 업무를 한 뒤다. 수현씨는 특성화고 졸업을 앞둔 2021년 10월부터 3개월간 현장실습 기간 케이엠텍에서 일했다. 이후 2022년 1월 같은 회사에 정규직으로 정식 입사했다. 이 기업은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숙련 일학습병행(P-TECH) 과정 참여기업으로 일과 대학 공부를 병행해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에 기대가 컸다.

근무환경은 열악했다. 방수폰인 갤럭시 S21·S22·S23을 만들기 위해 휴대전화 기판에 플라스틱 부품을 2천개씩 조립하고, 휴대전화 뒷면을 고온으로 압착하는 일을 반복했다. 평일엔 일하고, 주말에 학습기관인 영진전문대에 가서 공부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돌아온 건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이다. 수현씨는 7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거쳐 지난 3월 조혈모세포이식 수술을 마쳤다.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는 “이식 후 보름이 지난 현재 조금씩 극한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입안이 헐어 밥알을 삼키키도 힘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업무상 질병이라고 본다. 이종란 노무사는 “부품을 조립하기 전에는 기판 위에 묻은 먼지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에어건(Air gun)을 사용했는데 그때마다 과일 향과 기름 냄새가 났다”며 “고온에서 접착제가 녹아 유해물질이 나올 수 있지만 배기와 환기가 안 돼 작업현장의 공기 질도 좋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해고, 학교는 사실상 퇴학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수현씨는 건강했던 자신이 왜 백혈병에 걸렸는지 알고 싶다.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케이엠텍은 정부 지원금을 받아 노동자를 고용했지만, 4개월 무급휴직 끝에 해고했다. 제대로 된 해고 통보도 하지 않았다. 수현씨의 어머니는 “수현이가 항암치료로 생사를 오가는 엄청난 상황에서도 회사 관계자들은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며 “자진퇴사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무급 4개월이 지나자 근로자 의사와 상관없이 2024년 1월31일자로 일방적으로 고용계약을 해지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모자라 케이엠텍은 업무상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보여 달라는 요구도 거절했다. 등록금을 지원받아 학생을 늘린 영진전문대학은 “출석 미달로 졸업이 어렵다”며 자퇴로 처리했다.

영진전문대 관계자는 “일학습병행 운영규칙을 보면 3개월 이상은 수업을 중지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며 “원래 올해 2월에 졸업인데, 1월 일학습병행 사업이 만료되면서 자퇴 처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기업과 대학은 부당해고와 반인권적 퇴학 조치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 “원청인 삼성 나서야”
삼성 “작업환경 문제 없어”

원청인 삼성전자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상수 반올림 활동가는 “삼성은 케이엠텍에서 발생한 직업병 피해 사례에 대한 케이엠텍의 반인권적 대응을 조사하고, 백혈병 피해자에 대한 피해복구에 나서야 한다”며 “피해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은 후 일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협력사 직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당사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것과 관련, 협력사와 협의해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협조할 것”이라면서도 “케임엠텍의 작업환경은 전문기관이 매년 측정해 노동부에 제출하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수현씨가) 근무한 조립공정은 작업환경 측정 대상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관련법상 작업환경측정 대상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케이엠텍쪽의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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