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경력 40년의 베테랑 산업잠수사 김순종(72)씨는 10년 전 4월16일 전남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로 향했다. 이튿날부터 석 달 동안 그는 수심 20미터가 넘는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배 안에 갇힌 아이들을 구조했다. 이 과정에서 잠수병이라 불리는 골괴사가 발병했다.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뼈가 괴사되는 질병이다. 상태가 심했던 그는 즉시 수술했다. 극심한 통증은 개선됐지만, 평생을 해 온 잠수사 일은 하기 어렵게 됐다. 사업주는 골괴사 수술한 잠수사들의 고용을 꺼렸다. 현재 건설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리는 그는 지금 당시 수술을 후회한다.

“수술을 괜히 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처럼 그때 수술 않고 버텨볼 걸…. 괜히 수술을 해서 일도 못 하고, 후회를 많이 합니다.”

민간잠수사 25명 중 8명 골괴사 진단

김순종씨는 스무 살에 해군 특수부대 해난구조전대(SSU)에서 복역하면서 잠수 일을 처음 시작했다. 1972년부터 5년6개월간 군 생활을 마치고 하사로 전역했다. 이후 군생활 경력을 바탕으로 산업잠수사가 됐다. 산업잠수사는 수중에서 교각, 선박 접안시설, 부두나 방파제와 같은 구조물을 설치·보수하거나 인명을 구조하는 일을 한다. 일이 고되고, 위험해 통상 일당이 50만원(올해 기준)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수심과 업무 난이도에 따라 더 많은 일당을 받기도 한다. 많은 잠수사가 업체에 고용되기보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유다. 잠시 적을 둘 때도 있었지만 김씨도 대부분의 세월을 프리랜서로 일했다. 생계를 꾸리기 부족함은 없었다.

생계가 기운 건 세월호 구조작업에 참여해 골괴사 진단을 받은 2014년 7월 이후부터다. 세월호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안전규정도 무시한 채 2~3개월간 압축노동을 한 직후다.

“본래 잠수사가 바다 안으로 20미터 이상 들어가면 12시간 이후에 일을 해야 해요. 그래야 몸에 있는 기포가 다 빠지거든요. 그런데 그땐 사람이 없으니깐, 6시간마다 한 번씩 들어갔어요.”

해경에는 수심 깊은 곳에 들어가 시신을 인양할 수 있는 인력이 없었다. 국가의 공백을 김씨를 비롯한 25명 민간잠수사가 메웠다. 뭍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를 위해 제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일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요. 애들이 불쌍해서요. 한 객실에 보통 7~8명씩 있어야 하는데, 어떤 객실 가면 25명, 어떤 객실 가면 4~5명 있고 그러더라고요. 아이들끼리 손을 꼭 잡은 애들도 있고, 껴안은 애들도 있고….”

시신 인양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쯤 해경은 그해 7월 민간잠수사에게 철수를 일방 통보했다. 이후 25명의 잠수사들은 삼천포 서울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김씨를 포함한 노동자 8명이 골괴사 진단을 받았고 2명은 수술을 했다. 김씨는 바로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금 그는 그때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근로복지공단, 2022년 6월 골괴사 산재 인정
소멸시효 지나 장해급여는 불승인

세월호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 김순종씨가 2022년 7월13일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 중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세월호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 김순종씨가 2022년 7월13일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 중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골괴사 수술 뒤 잠수 일을 못 하는 건 아닌데 회사에서 골괴사 병력이 있으면 아예 안 쓰더라고요.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은 수술 안 하고 진통제로 버티고 있는 거라. 아니면 아예 다른 직업으로 바꾸기도 하고.”

김씨는 현재 건설인용직으로 일한다. 보조 업무를 수행하면 하루 일당 14만~15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고령인 그를 반기는 곳은 많지 않다. 지난 12일 그를 만났을 때 인력사무소에서 연락이 없어 일을 쉰 지 10일쯤 됐다고 말했다. 고정 소득은 기초노령연금뿐이다.

“살길이 막막하죠. 지금은 기초노령연금으로 버티고 있어요. 국민연금을 부었어야 했는데, 가입을 안 했어요. 그게 후회가 돼요. 생활이 좀 어려워도 그걸 들어 놨어야 하는데…. 애들 키우느라고 번 돈 다 썼죠.”

김씨와 같은 프리랜서로 일하는 잠수사는 국민연금 지역가입자로 연금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사업장 가입자는 9%의 보험료를 사업주와 나눠 절반(4.5%)만 내지만, 지역가입자는 9%의 보험료를 모두 내야 한다. 당장 효용을 느끼기 어려운데 부담이 크다 보니 국민연금 지역가입자 45%가량(2022년 4월 기준)이 김씨처럼 노후보장 사각지대에 있다. 지역가입자 2명 중 1명은 연금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2022년 6월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가 김씨의 골괴사를 산재로 인정하면서, 힘들었던 세월을 보상받는 듯 했다. <본지 2022년 6월28일자 2면 "세월호 민간 잠수사, 참사 8년 만에 산재 인정" 참조>

산재가 인정된 그해 12월 김씨는 장해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지난해 5월 장해급여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일은 치료가 끝난 2014년 1월14일로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며 장해급여 불승인을 통보한 상태다. 김씨에게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졌다.

이영만 공인노무사(법무법인 감천)는 “장해급여 소멸시효 기산은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것이 확인된 후, 당해 부상 내지 질병이 치유돼 신체에 장해가 있게 된 날부터 진행하는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가 골괴사에 대해 최초요양급여를 승인한 2022년 6월21일부터 재해자의 장해급여청구권이 진행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가 인정된 날로부터 3년, 즉 2025년 6월까지가 소멸시효라는 주장이다.

신뢰 잃은 국가

김씨를 비롯한 잠수사는 이제 국가를 믿지 않는다. 해경 대신 맹골수도를 뛰어들었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책임 전가, 생업 상실에 따른 생활고뿐이다.

2020년 5월 국가 피해 보상에서 제외됐던 민간잠수사도 의료·심리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김관홍법(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골괴사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3월 해양경찰청은 민간 잠수사가 정부에 치료비를 청구할 경우 심의 절차를 거치도록 ‘세월호 참사 구조 참여 민간 잠수사 의료지원금 지원 지침’을 개정 시행했다. 기존에는 잠수사가 본인 부담금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개정 지침이 시행되면서 잠수사가 치료비를 납부한 뒤,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면 해경중앙해양수색구조기술위원회가 잠수사 치료행위와 세월호 구조작업 간의 연관성을 판단해 치료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까다로워졌다.

김씨는 “지난해부터는 병원에 가도 돈 내고 치료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나라에서는 서류를 첨부해 요양급여를 신청하라는데, 내가 할 줄도 모르고, 그냥 내 돈 들여 치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또 해난사고가 나도, 나라에서 하는 일이면 민간 잠수사는 피하지. 대우가 이런데 누가 가겠어요.”

세월호 참사 당시 목숨을 걸고, 누군가의 가족을 뭍으로 데리고 온 잠수사들은 이제 나라를 믿지 못한다.

“저희가 양심적으로 (수색현장에) 간 게 죄입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해야 합니다.”

2016년 6월 잠수병과 트라우마, 극심한 생활고로 목숨을 끊은 김관홍 잠수사는 2015년 9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나온 ‘국가는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듣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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