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0일 오후 태안군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 사전행사로 오픈마이크가 열렸다.<정소희 기자>

조만간 문을 닫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은 불안하다. 석탄화력발전소 59기 가운데 절반이 몰린 충남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촉구하며 전국의 노동자·시민 1천명이 행진했다.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길에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탄소중립시대, 노동자 스스로가 삶 지켜내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 추진위원회는 지난 30일 오후 충남 태안군 태안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태안 발전노동자들이 모인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위한 태안화력 발전노동자 모임’의 제안으로 전국 151개 단체와 325명의 개인이 함께 주최했다. 전국 59기의 석탄화력발전소 중 29기가 충남에 있다. 2025년부터 2032년까지 6기의 발전소가 태안에서 사라진다.

이날 터미널 인근 사거리에는 곳곳에 ‘오픈마이크’가 설치됐다. 전국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마이크를 붙잡고 기후위기와 고용불안에 대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충남 당진에서 일하는 최범규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현대제철은 현재까지 전국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기업,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한 기업”이라며 “현대제철도 탄소중립이 가능한 공정을 연구하면서 석탄을 활용하는 공정들을 차츰 없애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태안 발전소 폐쇄 이후 발전노동자의 삶을 지켜내야 탄소중립 시대 모든 노동자 삶이 지켜질 것”이라며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삶에 무관심한 정부를 대신해 우리 스스로 삶을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천호 녹색정의당 후보(비례)는 “재생에너지는 지역에서 만드므로, 그 이익 역시 지역에 돌려줘야 한다”며 “지역의 공공건물, 주차장, 도로, 철도에서 재생에너지를 생산해 나온 이익을 기반으로 녹색일자리를 만들어 지역 소멸을 막자”고 제안했다.

지난 30일 오후 태안군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 집회에서 발전노동자, 환경단체 회원, 제조업노동자 등 기후위기에 맞서는 다양한 이들이 발언하고 있다.<정소희 기자>
지난 30일 오후 태안군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 집회에서 발전노동자, 환경단체 회원, 제조업노동자 등 기후위기에 맞서는 다양한 이들이 발언하고 있다.<정소희 기자>

“충남도, 정의로운 전환 준비하고 있나”

이어 열린 본 행사에는 서울·경기·대전·충북·울산·부산·경남 등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시민 1천명이 참여했다.

발언과 공연을 중심으로 집회가 이어졌다.

충남도민들은 발전소 폐쇄 이후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도정을 비판했다. 2036년까지 14기가 문을 닫는데 충남에서만 일자리 8천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황성렬 기후위기충남행동 공동대표는 “충남도는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조성했지만 일회성 사업에 그치거나 노동자들의 일자리 전환 교육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이해당사자인 노동자, 지역민이 참여하는 논의 테이블, 위원회조차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고기석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정부는 지금 당장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정한 정의로운 전환 특구를 지정해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가동해야 한다”며 “2만4천명의 발전노동자, 가족까지 10만명의 생계가 달린 문제에 대해 발전노동자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인 송상표 발전노조 금화PSC지부장은 “충남노동자행진은 태안 발전소 노동자 문제를 알리려는 행사가 아니다”며 “기후위기로 제일 먼저 좌초되는 여러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문제이자 지역의 문제이며 나와 우리들의 문제”라고 말했다.

심인호 민주노총 서산태안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친환경차 전환 과정에서 완성차 공장은 내연기관에 비해 30% 인원이 줄고 부품사는 10만명의 노동자가 해고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며 “전기차와 관련된 신규 사업장은 100% 비정규직 공장으로 운영하는 추세로 자동차 노동자도 산업전환에 대해 각성하고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0일 오후 태안군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지난 30일 오후 태안군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지난 30일 오후 태안군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다이인(Die-in)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지난 30일 오후 태안군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다이인(Die-in)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집회 지켜보는 태안군민들
“발전소 폐쇄 들어만 봤거나 전혀 모르거나”

태안군 시내를 행진하는 노동자·시민들을 지켜보는 군민들은 낯선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집회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태안군민인 박점순(가명·74)씨는 “화력발전소 폐쇄에 반대한다”며 “서부발전에서 군에 다양한 지원을 하고 아들도, 손주도 그곳에서 일하는데 (발전소가 폐쇄되면) 태안·서산 모두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민 중에는 발전소 폐쇄에 관해 “알지 못한다”고 답한 이도 적지 않았다. 상인이라고 밝힌 A씨는 “발전소가 폐쇄하느냐”며 “폐쇄 시기나 대책은 들어본 적 없다”고 의문을 표했다. 백화초등학교에 다니는 김아무개(12) 학생도 “아버지가 발전소에서 근무하지만 폐쇄 이후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발전소 폐쇄, 치킨집 매출에 영향 미치지 않을까”

참가자들은 태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태안군청을 거쳐 한국서부발전 본사까지 약 3.3킬로미터를 행진했다. 시민들은 정의로운 전환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아 각자 준비한 손팻말과 풍력발전을 뜻하는 바람개비를 들고 행진에 나섰다.

행진 참가자들은 “아무도 버리지 마라! 모두의 존엄과 안전을 보장하라!” “석탄화력 폐쇄하고 공공재생에너지 확대하라!” “발전노동자 고용보장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와 같은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걸었다.

행진 와중에도 발언은 이어졌다. 내연기관의 필수 부품인 연료펌프를 만드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담산업지회 조합원인 박명희씨는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내연기관 부품 절반 가까이가 사라져 부품사 노동자들이 실업 상태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며 “전기·수소차로의 전환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내연기관차가 없어지더라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일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0일 오후 태안군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을 완주한 참가자들이 한국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있다. <정소희 기자>
지난 30일 오후 태안군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을 완주한 참가자들이 한국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있다. <정소희 기자>

이날 처음 집회에 참가했다는 발전소 하청노동자 박상빈 일진파워노조 신보령지부 조직부장은 “석탄화력 폐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고용보장과 지역 소상공인이 함께 살자는 이야기를 지역에 전하고 싶었다”며 “보령에서도 이미 인구 유출로 자영업자 생계 피해가 크다”고 호소했다. 그는 “당장 우리의 목숨도 달렸지만 전국의 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라며 “간절한 마음이 행진 참가자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행진 대오가 터미널 사거리에 접어들면서 대형 현수막이 드러났다. 참가자들은 바닥에 드러눕는 다이인(Die-in) 상징의식을 3분간 진행했다. 귀가 찢어질 듯 위태로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바닥에 누운 이들은 기후위기와 정의롭지 않은 기후정책이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상징의식을 통해 경고했다.

행진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군민들도 적지 않았다. 태안읍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기휘(36)씨는 “발전소 폐쇄에 대해 들어보긴 했지만 군 차원의 대책을 들어보진 못했다”며 “발전소 폐쇄로 인구가 빠져나가면 매출이 떨어질 것도 우려되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 공감도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1시간30분여 행진 끝에 참가자들은 한국서부발전 본사 앞에 도착했다. 비정규직 발전노동자, 시민, 환경단체 회원 등 행진을 완주한 이들은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는 문구가 쓰인 손팻말을 나란히 들고 구호를 여러 번 외쳤다.

전교조 대전지부 조합원이자 녹색연합 회원인 이규연(43)씨는 행진을 마친 뒤 “기후로 인한 노동자의 일자리 변화는 아이들의 교육과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정의로운 전환으로 정의로운 가정이 꾸려지는 날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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