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건설노조와 금속노조 관계자를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연이어 소환하고 있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노조의 노숙농성을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을 지시한 것이 발단이다. 이후 일상적으로 열리던 문화제마저 경찰이 제재하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가 침해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유족·건설노조 “고인 유지 받들겠다”
남대문서 14일까지 4차 소환장
건설노조(위원장 장옥기)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출석요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장옥기 위원장은 세 차례에 걸친 경찰의 출석요구에 “고 양회동 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장례가 끝난 뒤 자진출두하겠다”고 밝혔다. 열사의 유족 대표인 고인의 형 양아무개씨도 “동생의 유지를 받들어 장례가 끝나는 날까지 장옥기 위원장과 함께 상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이날 오후 노조에 이달 14일까지로 네번째 출석요구를 했다.
경찰은 지난달 18일 건설노조 노숙농성 이후 장옥기 위원장과 노조 조직쟁의실장에 대해 출석을 처음으로 요구했다. 지난달 16~17일 1박2일 서울 도심에서 이뤄진 2만5천여명 조합원 노숙농성을 불법집회로 규정한 것이다. 이후 노조는 경찰과 조율해 6월1일 출석하겠다고 밝혔으나 서울시에서 ‘노조가 세종대로를 무단사용했다’며 도로법 위반 등으로 고발하자 이달 12일 출석하기로 다시 조율했다. 하지만 경찰이 다시 8일로 출석일을 앞당겨 요구하자 노조는 최종적으로 자진출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현재 고 양회동 지대장 장례는 빈소만 마련한 채 멈춘 상태다. 노조와 유족은 △고인 사망에 대한 정부의 사과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TF 해체 △윤희근 경찰청장 파면 △건설현장 제도개선을 위한 노사 협의체 구성과 노정 대화에 진전이 있다면 장례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양회동열사 노동시민사회종교단체 공동행동’의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정부와 경찰이 헌법을 위반해 집회를 제한하고 광장 이용을 금지하고선 평화적 집회를 연 노조 위원장을 범죄자로 몰아 구속하려고 한다”며 “억울하게 당한 죽음을 알리는 집회조차 봉쇄하는 잔인한 정권이 주권자인 국민을 구속하려는 행태에 시민사회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양회동 열사의 염원을 실현하고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당당하게 조사받고 책임지겠다”며 “윤석열 퇴진 운동본부를 구성해 폭주를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노동·시민사회의 반발에도 건설노동자 옥죄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날 오전에도 경찰 60여명이 건설노조 대구경북지역본부 간부와 조합원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을 위반했다며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문화제 방해할 경우 경찰에 책임 물을 것”
금속노조(위원장 윤장혁)도 집회 참석을 이유로 간부들이 줄줄이 경찰 출석을 요구받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이날까지 경찰에 소환 통보를 받은 노조 간부는 총 3명이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윤장혁 위원장, 손덕헌 부위원장, 최용규 울산지부장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지난달 17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와 관련해 수사하겠다는 이유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달 25일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행동이 함께 주최한 야간문화제에 대해서 수사하겠다며 윤장혁 위원장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윤 위원장은 현장에 없었지만 주최자라는 이유로 소환됐다. 출석을 요구받은 윤 위원장과 손 부위원장, 최 지부장은 경찰이 정한 일정대로 서울 중부서에 출석할 예정이다.
시민·사회단체 4곳이 함께하는 5·25 집회 인권침해감시단은 이날 오전 민주노총에서 금속노조 노숙농성 침탈 규탄 보고회를 열고 경찰의 강제해산을 비판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정부와 윤희근 경찰청장 등 58명의 경찰 지휘부를 상대로 이달 1일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9일에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같은 장소에서 문화제를 예고해 충돌이 예상된다.
김유정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문화제를 강제해산하고 참가자를 연행한 경찰과 경찰관들에게 직권남용죄 등을 이유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며 “공공의 질서를 침해하지 않은 평화적 문화제를 금지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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