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상 업무개시명령 조항을 삭제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2004년 1월 업무개시명령 조항이 생겨난 뒤로 줄곧 위헌성 논란에 휩싸여 왔던 이 제도를 인권위 상임위원회는 어떻게 판단한 걸까. 3일 <매일노동뉴스>가 인권위 상임위 논의를 되짚어 봤다.
“화물차주는 노동자” 판례 널렸는데
2006년 판례만으로 “자영업자” 주장
인권위 사무처는 상임위에 두 개의 주문을 제시하면서 의결을 요청했다. 하나는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화물자동차법 14조의 업무개시명령 제도 관련 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회의장에게 업무개시명령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조속히 통과하도록 권고하라는 내용이다. 사무처는 이와 함께 △화물차주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등에 비춰봤을 때 노동 3권을 향유할 수 있는 존재이며 △업무개시명령이 위헌 가능성이 있고 ILO 협약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4명의 상임위원 중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이충상·김용원 상임위원이 사무처 주문을 반대했다.
이충상 상임위원은 화물노동자의 근로자지위에 대한 반박을 주요 논거로 삼았다. 이 위원은 2006년 대법원 판례를 들며 화물차주가 사업자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2006년 한 레미콘 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주며 레미콘 차주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문제는 이 위원이 주장한 화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판단한 대법원 판결이 이후에도 많이 나왔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판결로 지난해 4월 대법원이 선고한 삼표그룹 화물기사 사건이 있다. 회사 트랙터와 트레일러를 임차해 콘크리트를 운송한 화물기사 A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판결이다.
노조법상 근로자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은 다른데, 현실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3년, 2018년에도 화물기사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했고 하급심 판결로 내려가면 판례는 더 많다. 이 위원의 주장은 지난해 11월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면서 화물차주의 노동 3권을 인정하지 않은 정부의 주장을 반복한 것이지만 사법부는 이미 화물차주에 대한 근로자지위 판결을 쌓아 왔다.
제대로 다루지 못한 위헌성
업무개시명령 조항 삭제에 반대한 상임위원들은 ‘업무개시명령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못했다. 업무개시명령의 위헌성은 화물차주의 근로자지위 여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검토될 수 있는 쟁점이었고, 인권위 사무처가 제시한 주문의 핵심 근거 중 하나였지만 상임위 논의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지난 2020년 공공의대 설립 등 정책에 반대하며 의사들이 집단휴진하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법상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뒤로 업무개시명령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검토가 이어졌다. 복지부 장관은 이후 업무개시명령에 따르지 않은 전공의들을 고발했고, 전공의들은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청구를 각하했지만 이후에도 논란은 이어졌다.
김진환 변호사(법무법인 지금)는 지난 2020년 발간한 ‘의료정책포럼’에서 “의료법 59조의 업무개시명령은 전공의와 전임의의 근로 3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형벌조항의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법무부 사무관인 허창환 변호사도 지난해 발표한 헌법학연구에서 “업무개시명령이 특정한 상황에서 인정되더라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국가의 처벌이나 행정적 제재의 위협하에서 노동제공을 강요받는 것이므로 업무개시명령제도는 모두 헌법상 ‘강제 근로’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과잉금지의 원칙 위배”
화물자동차법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어떨까. 법조계는 의료법의 업무개시명령에서 나아가 화물노동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본다. 화물자동차법상 업무개시명령 조항의 요건이 모호하고 이 제도가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모든 입법에 대해서는 명확성의 원칙이 요구되는데 ‘정당한 사유’나 ‘심각한 위기’와 같은 표현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월 학술지 <법과사회>에서 업무개시명령제도의 위헌성 여부를 검토했다. 이 교수는 화물차주가 근로자지위를 지닌다고 볼 때와 아닐 때를 나눠 업무개시명령제도의 쟁점을 들여다봤다.
화물차주가 노동 3권의 주체로 근로자지위를 지닌다고 본다면 업무개시명령은 화물차주의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 3권을 제한한다. 누군가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이 헌법적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과잉금지의 원칙’을 충족해야 한다. 이 원칙에는 법익의 균형성이 포함돼 있는데, 이루려는 공익이 침해되는 사익보다 더 큰지를 고려하거나 양자 간 균형이 유지돼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업무개시명령은 국가경제 위기 방지라는 공익적 목적을 화물차주의 노동 3권에 비해 과도하게 추구하는 것으로 보여 법익의 균형성이 깨졌다고 볼 수 있다. 화물차주의 쟁의행위는 과로·과속·과적을 피하기 위해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안전운임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화물차주의 안전은 일반 국민의 안전과 화주의 화물 안전과도 직결돼 이들의 노동 3권 비중은 특별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즉 업무개시명령이 법익의 균형성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화물차주 자영업자여도 업무개시명령 문제”
화물노동자를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라고 해도 위헌 논란은 남아 있다. 자영업자는 영업의 자유를 포함하는 헌법상 직업의 자유를 누리는 주체다. 따라서 화물차주에게 내려지는 업무개시명령은 화물운송업무를 강제함으로써 영업의 자유를 포함한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한다.
이준일 교수는 “근로의 의무는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는 전쟁이나 재난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만 부과될 수 있으므로 근로의 의무에 근거해 업무개시명령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발동요건이 헌법적 요청에 부합하도록 구체화되지 않으면 허용될 수 없다”며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원리도 화물차주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의 헌법적 근거로 인용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가 2021년 비준한 ILO 협약 29호(강제노동 협약),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 협약), 97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헌법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ILO 협약 87호·98호의 해석에 비춰 볼 때 화물운송기사는 노동 3권을 향유하는 주체”라며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자영노동자에 대한 단결권을 인정했고 2016년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서도 화물운송기사에 대한 단결권 보장을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을 노동 3권을 누릴 수 없는 주체로 전제한 것이 ILO 협약에 위배된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임명된 인권위 상임위원들과 기존 위원들이 화물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나 취약계층에 대한 의견차를 보이면서 인권위 역할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31일 남규선 상임위원이 언급한 것과 같이 “우리 사회의 합의된 가치를 재차 이야기하기보다 어쩌면 국민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상기하고 국민 감정보다 반보 앞서 (가치를) 이야기하던 조직”이었던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비판이다.
조연민 변호사는 “공공운수노조가 인권위에 업무개시명령 관련한 의견표명을 요청한 이유는 당장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해 형사처벌 위기에 놓인 긴급한 조합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법부보다 한 발 빠르고 앞선 판단을 내릴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사법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독립적인 인권위를 세운 이유는 인권보호의 수준을 높이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함인데 이번 판단은 인권위의 존재 의의를 후퇴하는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