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는 자신의 투쟁을 ‘자존심’을 찾는 투쟁이라고 이야기했다. 노동자들은 기타를 만드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지만, 콜트-콜텍 회사는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중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으로 물량을 넘겼다. 13년째 싸우던 노동자에게 먼지도 많고 임금도 낮은 그 현장으로 꼭 돌아가야겠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노동자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자신이 만드는 기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기타 소리가 날씨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하던 임재춘 노동자의 그 반짝이는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알았다. 회사는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할지라도, 노동자들은 노동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있기에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13년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가 그런 노동자를 또 만났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천막농성장 옆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농성장에서였다.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노동자들은 지난해 11월7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으며, 더불어 최윤미 분회장과 이규선 노조 경기지부장이 단식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30일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해 대우조선하청 유최안 동지를 비롯해 6명이 단식에 들어갔을 때, 이미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단식 24일차였다. 한국와이퍼 노동자 단식이 하루하루 차수를 더할 때마다 미안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단식 44일차 되는 지난달 22일 최윤미 분회장은 건강상 이유로 단식을 중단했고, 이튿날 이규선 지부장도 단식을 중단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폐쇄된 공장에서 아직도 투쟁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절박할 때 단식을 한다. 그런데 무엇이 이 노동자들을 이렇게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왜 이 노동자들은 40일이 넘는 단식을 하면서까지 그 현장을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하루하루 늘어나는 단식 일수를 바라보며 응원하기도 하고 알고 싶기도 했다. 최윤미 분회장은 20대 때부터 한국와이퍼에서 18년을 일했다고 한다. 회사는 이달 8일 청산을 개시한다고 공지했다. 220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노동자들은 일본 자본 덴소(DENSO)가 자신들의 이익은 모두 챙겨 놓고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버리는 일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회사에서 쌓아 온 자부심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단식을 하고, 문을 닫는 공장에서 다시 투쟁을 다짐하는 것일 테다.
한국와이퍼는 일본 자동차부품 기업 덴소가 100% 출자해서 만든 회사다. 덴소의 한국지사인 덴소코리아는 와이퍼 시스템의 일부인 모토와 링케이지를 만드는 화성공장을 건립할 당시 공장부지를 50년 무상 임대하고, 특별소비세와 부가가치세를 전액 감면하며, 시설 설치비를 지원받는 등 한국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와이퍼는 2공장 설립 이후에는 시설투자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한국에 들어와서 이윤만 챙긴 후 언제라도 청산하고 떠날 준비를 했던 것이다. 한국은 외국자본에 여러 특혜를 주고 있지만 정작 그 외국자본이 이윤만 챙기고 떠나는 것을 제동 걸 장치는 없다.
한국와이퍼분회는 덴소 자본이 철수할 것을 예상했다고 한다. 와이퍼는 10여년간 덴소코리아에 원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납품해 왔고 그 때문에 적자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덴소는 덴소코리아에 적자의 다섯 배가 넘는 기술사용료를 받아 챙겼다. 그래서 노조는 2020년과 2021년 회사와 고용안정협약서를 맺는 등 일자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덴소 자본은 막대한 이윤을 챙긴 후 고용협약서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고 청산을 발표했다. 덴소코리아가 와이퍼시스템을 디와이에 매각하면서 한국와이퍼를 청산하겠다고 하는 것은 노조를 무력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치권과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고 있지만 아직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기업 경영상 문제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다. 이 사회에서 외국자본은 막대한 이윤만 챙기고 언제라도 청산할 수 있으며, 노동조합을 기만해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쉽게 버려지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만이 아니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44일간의 단식에도 문제가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웃으며 당당하게 투쟁할 수 있는 것, 희망퇴직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터를 함께 지키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자존감과 자부심이 살아 있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며 꼭 승리하기를 기원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