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축구도, 야구도, 인생도, 투쟁도 그렇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린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주식회사 청산의 첫 단계는 주주총회의 해산결의다(상법 517조). 청산절차 진행 중, 주주들은 언제든 ‘회사의 계속’ 결의를 할 수 있다(상법 519조). 주주들로 하여금 스스로 손해를 줄이기 위해 계속 결의를 하도록 만들면 된다. 그러면 회사는 완벽히 부활한다.

한국와이퍼라는 회사가 있다. 매출 규모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부품 회사인 일본 덴소(DENSO)의 한국 내 자회사다. 덴소는 올해 기준 세계 35개 국가와 지역에서 총 198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체 임직원은 17만명에 육박한다. 지난 회계연도 매출 규모는 55조원, 순이익은 3조원에 이른다. 이들에게 한국와이퍼 노동자 280명은 언제든 정리대상이 될 수 있는, 한줌의 존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2018년께부터 새로운 납품계약을 스스로 중단하면서 매출 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해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매출 규모가 더욱 축소된 2020년, 회사와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다. 회사는 이를 위반하고 뒤에서 조용히 청산을 검토했다. 노동조합은 다행히 이러한 정황을 포착했다. 투쟁했다. 2021년, 더 강력한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다. 위 협약의 핵심조항은 청산·매각·공장이전의 경우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이행시 조합원 1인당 1억원의 금액을 손해배상 해야 한다는 위약금 조항도 들어 있다. 중간납품을 받는 원청 덴소코리아도, 일본 최대주주 덴소와이퍼시스템도 위 협약의 이행을 보증했다. 협약 체결 이후 노동자들은 회사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회사는 올해 7월7일 전 직원에게 사장 명의의 문자를 보냈다. 이사회·주주총회에서 해산결의를 했단다. 2023년 1월8일 본격적인 청산절차를 시작하며 기업 활동을 종료한다고 했다. 그들에게 협약은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았나보다. 이후 노사 간 현재까지 20차례가 넘는 교섭이 진행됐다. 회사 입장은 강경했다. 청산에 대한 재검토는 할 수 없고, 오직 퇴직조건만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리 당당한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노사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 소송이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소송 대리로 생계를 유지하는 변호사지만 여전히 생각은 그렇다. 노사 당사자들의 운명을, 사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법원에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노동조합과 합의가 없었으니, 청산절차의 요소요소(각종 등기, 주요 재산 매각, 주요 계약 당사자 지위 이전 등)를 막아 달라는 취지였다.

회사는 대리인을 통해 온갖 주장을 했다. 협약서에 분명히 ‘합의’라고 써 있지만 이것을 ‘협의’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청산’은 ‘청산 과정에서의 퇴직위로금’이라고 읽어야 한단다. 노동조합이 파업으로 위협해 어쩔 수 없이 협약을 체결했기에, 불공정한 법률행위(민법 104조)여서 무효라는 주장까지 했다. 기뻤다. 충분히 예상했던, 반박 가능한 주장이다.

심문 종결 이후 금방 판단이 날 줄 알았다. 하지만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주문은 전부 기각이었다. 예상치 못했다. 낙담을 뒤로한 채 결정문을 읽었다. 내용 자체는 괜찮았다. ‘청산절차’에 관해 노동조합과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맞는단다. 다만 가처분으로 구한 내용들이 상법의 청산규정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있어 안되거나, 더 면밀한 심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230명의 조합원 앞에서 결정문의 내용과 후속대책에 대해 보고했다. 즉시항고를 통해 고등법원에서, 또 별도로 진행하는 본안소송에서 다시 다투면 된다. 가처분 재판부는 힌트도 하나 줬다. 최소한 노동자들 해고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고를 못하면 청산절차의 정상진행이 어려워진다. 이제 사업종료가 임박했으니, 권리 보전의 필요성도 인정될 것이다. 그리하여 해고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별도 가처분도 신청했다. 권리관계에 다툼이 남아 있다면 청산은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고한 대법원 판례다. 어차피 끝나지 않는다.

덴소가 우리를 물로 본 것 같다. 질기게 싸우며, 부당함을 알려 낼 것이다. 단체협약이라는 최고의 무기도 우리 손에 있다. 폐업·청산 투쟁은 마지막 사람이 포기해야 끝난다. 아무도 포기하지 않는다. 모두 함께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간다. 그 여정에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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