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의 계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와 야당은 연내 국회 통과를, 재계와 여당은 결사 저지를 외치고 있다. 여러 현안 중 왜 노조법 개정이 필요할까. 손배 폭탄을 맞은 노동자, 사용자를 사용자로 부르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편집자>

▲ 김건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하이트진로지부 조직차장
▲ 김건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하이트진로지부 조직차장

나는 하이트진로 청원공장에 주류 제품과 공병 등을 운송하는 화물노동자다. 스스로를 노동자라 칭하지만 소위 말하는 사장님, 즉 ‘특수고용 노동자’이자 ‘간접고용 노동자’다. 내가 하는 일은 분명 노동이고 노동을 하는 사람은 노동자다. 그런데도 어디 가서 노동자로서의 존재와 정체성을 말하지도 못하고 부정당하는 존재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이어 화물노동자들의 투쟁이 시민들의 주요 관심사로 등장했다. 하이트진로의 운송노동자들이 강남 한복판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탑에 올라 우리의 사장은 하이트진로㈜이고, 화물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진짜 사장인 하이트진로㈜에 있다고 외쳤다. 그러자 세상이 우리의 처지와 현실에 관심을 가졌다. 우리들의 투쟁이 있기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특수고용 노동자 현실에 대한 분노와 공감이 생겼다. 그렇게 우리의 노동자성과 원청의 사용자 책임이 세상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여름의 상황을 정리해 본다. 하이트진로의 화물노동자들은 지난 15년간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며 기름값과 차량수리비 및 할부 등을 제외하면 실질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밑바닥 운임으로 생존의 벼랑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공병운임 및 공회전 비용을 포함한 운송료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지만 사측은 조합원 130명 집단해고로 답했다.

지난 104일간 파업 과정에서 원청인 하이트진로는 “직접 계약관계가 없다”며 하청인 수양물류에 교섭 책임을 전가했다. 17회에 걸친 교섭을 거부하고 화물연대 조합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로 탄압을 자행했다. 이후 끈질기게 지속된 투쟁과 본사 점거·고공농성 등 목숨을 건 투쟁이 이어지자 비로소 18차 교섭 테이블에 원청이 처음 참석했다. 원청의 교섭거부로 파업이 장기화해 조합원들은 차량 할부가 연체되고 생계의 어려움이 가중돼 고통받았다.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었다. 절박한 투쟁의 결과로 사측과의 교섭을 타결하고 고공농성을 정리했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삶은 변한 것이 없다.

화물노동자들은 노조법의 바깥에서 투명인간으로 취급되며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한 존재다. 다단계 하청구조 아래서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노동자성을 부정당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라 화물노동자들은 노조법상의 근로자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사측이 단체교섭 자체를 회피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 파업 등 단체행동권 행사를 통해 어렵게 단체협약을 체결하더라도 사용자측이 단협을 파기하거나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아도 이를 제재할 법적 구속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노동 3권이 없는 화물노동자들은 쟁의행위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니 노조법상 불법인 대체근로에 해당하는 대체운송을 막는 행위도 합법적인 투쟁으로 인정받을 여지가 전혀 없다. 이것은 업무방해를 이유로 한 고소·고발 남용, 손배·가압류 탄압 등 화물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을 파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파업 초기부터 단체교섭을 회피하며 사용자 책임을 부인하던 하이트진로 원청은 대체수송 차량에겐 두세 배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그 손해 등에 대해 화물연대 조합원 25명을 상대로 27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회 간부의 자택과 유일한 생계수단인 차량에 대해 가압류를 자행했다. 이런 손배 폭탄과 가압류는 우리 노동자에 대한 경제적·심리적 협박이다.

이렇듯 현재의 노조법으로는 우리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도 없고 원청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은 우리에겐 먼나라 얘기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이 비준·발효돼 일하는 사람에 대한 보편적 노동권 보장이 국제기준이자 규범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에겐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제 화물노동자는 더 이상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지 않으려 한다. 노조법 개정 국민동의 청원을 시작으로 노동 3권의 온전한 보장과 행사를 위해 적극 나설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함께해 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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