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의 계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와 야당은 연내 국회 통과를, 재계와 여당은 결사 저지를 외치고 있다. 여러 현안 중 왜 노조법 개정이 필요할까. 손배 폭탄을 맞은 노동자, 사용자를 사용자로 부르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편집자>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

전국택배노조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려, 노동조합을 설립하려 단식을 하고 집회를 하지 않고서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려웠던 2017년 1월 창립해 그해 11월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여전히 현행법상 택배기사는 노동자(근로자)가 아니다. 택배사들은 우리가 쓰는 계약서를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수탁 계약서’로, 받는 대가를 임금이 아닌 ‘수수료’로 부르며 “특수한 형태로 고용됐다”고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 논리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게 된다.

택배노조는 설립신고증 발부 후 곧바로 원청에 교섭을 요구했다. 택배 일을 하루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원청 택배사가 노동조건의 대부분을 좌우할 능력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택배노동자의 노동시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원인인 간선차 배차, 급지수수료, 터미널 작업환경, 주 5일제 등 모든 문제는 원청 CJ대한통운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원청 CJ대한통운은 교섭 의무가 없다며 교섭을 거부했다.

2020년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연이어 발생했다. 지금까지 25명이 과로로 사망했고, 과로로 인해 쓰러진 노동자까지 합하면 40명에 육박한다. 택배노조는 당연히 이 문제는 과로를 유발하는 택배시스템을 구축한 원청 택배사만이 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원청 택배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뒤에 숨어 있었다. 쓰러져 가는 택배노동자들 속에서 노조는 어쩔 수 없이 교섭이 아닌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었고 그 투쟁의 결과로 택배 원청과 정부·여당·당사자·소비자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합의를 완성했다.

CJ대한통운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제대로 택배현장을 바꾸지 않았고, 오히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막대한 추가이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택배노조는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는지에 대해 대화하자”고 요구했을 뿐이다. CJ대한통운 본인들이 직접 참여해 만든 사회적 합의 관련 대화 요구도 교섭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심지어 지난해 6월 중앙노동위원회가 원청에 교섭 의무가 있다고 판정했는데도 CJ대한통운은 이에 불복했다.

교섭을 통한 단체협약이 아닌 조건에서 CJ대한통운은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아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결국 택배노동자들은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5일간 파업을 전개했고 묵묵부답이던 원청 CJ대한통운은 파업으로 인해 100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2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했다. 노동자들이 과로로 죽지 않게 해 달라 요구했더니 오히려 손배로 죽이려고 달려든 것이다.

노조법 2조는 사용자와 노동자 개념을 정의하는 조항이다. 노조법 2조가 개정돼 ‘특수고용’이라는 회피용 단어가 아니라 우리에게 ‘노동자’라는 정의가 내려진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본다. 앞으로 택배사 원청은 노조와 협상을 하게 될 것이며, 정상적인 택배현장 운영을 위해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노동조합과 교섭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점거농성 같은 투쟁을 할 필요도 없게 될 것이며 지금까지 원청의 자기 부정과 교섭 거부에 의해 벌어진 하청노동자의 투쟁 역시 많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을 찾고 책임 있는 이들이 나서야 한다. 책임과 권한이 있는 진짜사장이 교섭에 나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진리다. 사회적 합의로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에서 배제되자 거짓말처럼 과로사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택배사 원청, 진짜사장이 사회적 대화에 나와 책임을 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제까지 특수고용직, 플랫폼 업종 하나하나에 노동자성을 인정할 건가? 늘어나는 다양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이 그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과 사회적 비용은 결국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오는가?

노조법 2조 개정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낼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더 늦기 전에 지금 모두가 나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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