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바일 세탁서비스 업체에서 야간에 노동자들이 빨래를 분류하고 있다. 물량이 많은 날에는 오후 늦게까지 연장근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준표 기자>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노동력을 토대로 성장한 기업들이 저마다 ‘혁신’을 외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구축해 비대면으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사람의 노동’은 혁신 뒤에 가려져 있다. ‘플랫폼기업’ 그물망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최근에는 플랫폼 창업 바람을 타고 ‘모바일 세탁업체’가 지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고객의 빨랫감을 비대면으로 세탁해 하루 이틀 사이에 배송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업계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추세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무환경이 ‘세탁 스타트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실상을 파악하려면 ‘세탁계의 새벽배송’ 신화 이면을 살필 필요가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최대 규모의 모바일 세탁업체에서 이틀간 일하며 세탁 스타트업의 노동환경을 들여다봤다. 또 근로계약과 계약형태의 법률상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한다.<편집자>

① 24시간 세탁, 그곳은 ‘빨래지옥’이었다
② “잔업은 일상” 16시간 만에 퇴근
③ ‘쪼개기’ 계약에 인력파견업체 ‘동원’
④ 과로에 놓인 배송기사, 산재 위험 노출

“요즘 물량이 많아 다들 오후 3시 넘어 퇴근하니까 너무 힘들어요. 여기 나온 이후로 어디 다닐 여유가 없어요.”

24시간 이내 세탁을 완료해 고객에게 배송하는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E사의 50대 직원 A씨는 지난 12일 출근한 지 약 16시간 만에 퇴근했다고 전했다. A씨는 E사의 경기 군포 공장에서 야간 입고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A씨의 근로계약서상 근무시간은 자정에서 다음날 오전 9시30분까지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고 한다. 입사 일주일 만에 잔업에 투입돼 이르면 정오에, 늦으면 오후 4시에 퇴근하고 있다. A씨는 “최근 며칠 동안은 매일 오후 늦게까지 연장근무를 했다”며 “다음날 쉬지 않으면 잘 시간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회사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지킨다고 했지만, 하루 평균 12시간 넘게 근무하고 있는 셈이다.

‘연장근로 동의’ 조항에 포괄연봉 ‘초단기 계약’

24시간 이내 세탁을 완료해 고객에게 배송하는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환경’에 놓인 것으로 드러났다. 포괄연봉계약을 체결해 연장근무를 사실상 조장하는 근무형태라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E사가 노동자와 체결한 근로계약은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 기자는 지난달 이틀간 야간근무를 하며 공장에서 물량을 입고하는 조로 편성돼 일했다.<본지 2022년 10월12일자 2면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취업기 ①] 24시간 세탁, 그곳은 ‘빨래지옥’이었다” 참조>

기자가 체결한 근로계약서와 연봉계약서 조항을 보면 ‘허점투성이’였다. 먼저 근로계약기간은 3개월로 소정근로시간은 1주에 40시간으로 정했다. 그런데 단서가 달렸다. “을은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1주 12시간 이내에서 연장근로를 실시하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의 규정이다. 당사자 간 연장근로를 합의하도록 정한 근로기준법(53조1항)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사실상 연장근로를 강요하는 조항이다. 조영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오늘)는 “현재 판례는 포괄동의규정을 허용하고 있지만, 이는 노동자의 일과 생활의 균형 추구 및 적절한 휴식 추구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해당 조항은 근로기준법의 입법 취지를 형해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포괄연봉계약 형태도 문제로 꼽혔다. 연봉계약서에는 ‘포괄연봉계약’을 기준으로 월 지급액에 법정수당(연장근로수당 등)이 포함됐다. 이는 최근 대법원 판례의 추세와도 배치된다. 조 노무사는 “포괄임금계약은 근로시간의 측정이 어려운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이 최근 판례 경향”이라며 “E사는 실근로시간 산출이 충분히 가능한 경우라서 허용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휴게시간 차이 ‘실제 야간근로는 초과’

무엇보다 근로계약서상 근로시간이 ‘실근로시간’과 달랐다. 연봉계약서는 월 야간근로시간을 72.6시간(가산 전)으로 명시했다. 그러나 야간근로시간(오후 10시~다음날 오전 6시)을 기준으로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근로시간은 계약서상 야간근로시간을 초과했다.

특히 휴게시간이 현실과 다른 점은 문제다.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휴게시간은 오전 3시부터 오전 4시30분까지 1시간30분으로 정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전 6~7시 한 시간의 식사시간이 주어졌다. 나머지는 2시간마다 10분씩 총 세 번의 휴게시간이 부여됐다.

휴게시간과 상관없이 실제 근로시간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것보다 많은 것이다. 근로계약서상 휴게시간(오전 3시~4시30분)을 기준으로 하면 월 야간근로시간은 약 97시간(4.5시간X5일X4.3주)이지만 실제 휴식시간(오전 6시~7시)로 할 경우 월 야간근로시간은 약 130시간(6시간X5일X4.3주)으로 계산됐다. 계약서상 근로시간(72.6시간)을 초과한다.

실제 야간근로시간보다 근로계약서상 야간근로시간이 적어 야간수당도 과소 지급될 여지가 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실제 휴게시간(오전 6시~7시)이 야간근로시간을 벗어난 시간대에 운영되고 있어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야간수당이 늘어나게 된다. 계약서는 야간근로수당을 55만1천원으로 정하고 있다.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어떤 형태로든 야간근로시간은 연봉계약서에 명시된 시간을 훨씬 초과한다”며 “실무처럼 휴게시간을 오전 6시 이후로 부여할 경우 야간수당이 법정 기준에 미달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미지급 수당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다. 최 변호사는 “법정수당은 주휴수당과 야간근로 가산분을 토대로 계산한 시급을 기준으로 실제 근로시간에 따라 지급해야 한다”며 “단순히 포괄임금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법정수당의 지급의무가 면제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사측은 연장근로시간을 포함해 법정 기준인 주 52시간을 지키고 있다고 직원들은 전했다. A씨는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관리 직원이 주당 근로시간을 확인해 이를 초과할 경우 근무를 제지한다”며 “작업장에 내려와 연장근로시간을 초과한 직원에게 퇴근을 지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고 직원 B씨도 “인력업체 직원을 제외하면 주당 연장근로시간을 넘으면 집에 간다”고 했다.

‘장시간 잔업’ 심각 “12시간 넘길 때 힘들다”

그러나 연일 이어지는 장시간 야간노동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주·야 교대근무 없이 야간조는 지속해서 야간에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최근 하루에 1천400개가 넘는 빨랫감 수거함이 들어온다”며 “물량이 많다 보니 정시 퇴근은 불가능하고, 오후 2~3시가 넘어야 마무리되다 보니 직원들이 계속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SNS 업무 대화방의 일주일간 퇴근보고를 보면 최장 13시간까지 연장근무를 한 직원도 있었다. 이후 물량이 더 많아진 상황을 고려하면 이후의 연장근로는 더욱 가중될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A씨는 “잔업을 할 때도 간식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쉴 수 없다”며 “휴대전화를 볼 시간조차 없다”고 털어놨다. 장시간 연장근로에도 휴게시간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A씨는 장시간 연장근로에 다소 지쳤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도 공장에서 일해서 지금 환경이 더 낫다고 위안하지만, 12시간을 넘어 잔업을 할 때는 잘 시간이 없다”며 “만약 다음날 휴일이 아니면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또 연장근로를 하게 돼 너무 힘들다”고 했다.

▲ 국내 최대 규모의 한 모바일 세탁서비스 업체의 공장에 빨랫감이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 <매일노동뉴스> 기자는 밤새 300개가 넘는 이불의 등록·검수 작업을 했지만, 퇴근시간까지 완료하지 못했다. <홍준표 기자>
▲ 국내 최대 규모의 한 모바일 세탁서비스 업체의 공장에 빨랫감이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 <매일노동뉴스> 기자는 밤새 300개가 넘는 이불의 등록·검수 작업을 했지만, 퇴근시간까지 완료하지 못했다. <홍준표 기자>

법률 전문가들은 노동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권두섭 변호사(직장갑질 119 대표)는 “야간과 연장근로에 대한 법정수당 문제를 비롯해 사실상 연장근로가 강제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나아가 작업장 안전과 보건 등 전반적인 노동실태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조 노무사는 휴게시간이 사실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휴게시간을 너무 짧게 나누는 것은 노동자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이 있다”며 “한 시간의 휴게시간을 제외하면 10분간의 휴게시간은 휴식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는 근로계약 문제와 관련해 회사 입장을 듣기 위해 공장 관계자와 소관 정부부처 등을 통해 접촉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인사부에서 연락 줄 것”이라고 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