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택배노조 한진본부가 25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쿠팡 물량 이탈에 따른 한진택배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경북 경주에서 한진택배 노동자로 일한 지 3년차인 서영기(40)씨는 지난달 초부터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진택배가 취급하던 쿠팡 물량이 급감하면서 택배기사들의 물량도 자연스레 감소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300~400개씩 배송하던 물량은, 가장 물량이 많은 화요일을 기준으로 잡아도 200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월요일은 50개 미만, 수~토요일은 100개 수준이다. 월 600만원이던 수입은 300만원으로 반토막 났다. 서씨는 “과로사 문제가 불거지자 쿠팡 물량이 많아서 구역을 쪼개고 기사를 구하게 해 놓고 지금은 어떠한 조치도 없다”고 토로했다.

쿠팡 자체배송 확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쿠팡 물량을 많이 취급하던 한진택배 물량이 급감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직 택배노동자들이 생계난을 호소하고 있다. 쿠팡이 택배업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물량 확보에 따른 경쟁이 심화될수록 그 유탄을 택배노동자들이 맞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월 쿠팡 물량 절반 자체배송으로 전환
“월 200만원에서 350만원까지 감소 우려”

전국택배노조 한진택배본부(본부장 김찬희)는 25일 오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택배 배송물량 중에서 쿠팡 물량이 대량으로 이탈하고 있다”며 “한진택배가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본부는 6월부터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진택배 노사 설명을 종합하면 쿠팡의 자체배송 권역 확대 정책에 따라 다음달 14일부터 경기·강원 등 60개 지역의 쿠팡 물량 370만 박스가 자체 배송으로 전환된다. 370만 박스는 월 쿠팡 취급 물량의 절반에 해당된다. 경기도 이천·평택의 경우 이미 지난 12일 전환이 완료됐다.

노조에 따르면 한진택배에서 담당하는 쿠팡물량은 전체 물량의 15% 정도인데 중소도시와 군 단위에 위치한 한진택배에 40~70%가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 한진택배 노동자들은 물량 감소에 따른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미 자체배송으로 전환된 지역뿐만 아니라 곧 전환을 앞둔 지역의 택배노동자들도 수입 감소와 고용불안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다. 다음달 6일 전환이 예고된 광주터미널에서 일하는 김상용씨는 “당일배송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쿠팡 물량이 빠지면 생계난에 처할 수밖에 없다”며 “자체 조사 결과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350만원 이상 수입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호소했다.

한진택배측도 급감한 물량 감소에 따른 피해를 회복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쿠팡의 자체배송 확대 정책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된 상황으로 회사도 매출과 물량 감소로 인한 피해가 예상돼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공영홈쇼핑을 비롯한 대형 고객사 물량 약 357만박스(월 단위)를 유치해 급감한 물량을 완화시킬 수 있는 조치를 하고 있으며 쿠팡과도 다각적인 협의를 통해 추가 대책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량확보 경쟁→단가경쟁→노동자 피해’ 우려 제기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근본 원인에는 택배사 간 과열경쟁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에 따르면 한진택배가 쿠팡과 맺은 계약에는 ‘한 달 전 통보시 위탁한 물량을 회수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이 포함돼 있다. 택배시장 진출을 위한 공격적 영업에 나선 쿠팡과 이윤추구에 몰두한 한진택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계약이 체결됐는데 결국 물량 감소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찬희 본부장은 “2023년 5월까지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데 지금 물량을 빼고 있는 이유는 해당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며 “쿠팡의 공격적 영업에 따라 인프라가 구축되는 즉시 그곳부터 물량을 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진택배만의 문제도 아니다. 쿠팡의 택배업 진출에 따른 단가경쟁이 심화될수록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열악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쿠팡은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가 지난해 1월 국토교통부에서 화물차 운송사업자 자격을 취득하면서 택배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쿠팡로지스틱스에 쿠팡의 로켓배송 물량을 넘기고 다른 택배처럼 자체 물량뿐만 아니라 쇼핑몰 등 물량까지 배송하는 ‘3자 물류’ 사업 진출까지 나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 분석이다.

이희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지금까지는 물류망을 꾸리기 위해 적자를 감내해 온 것이고 흑자 전환을 위한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라며 “로켓배송 물량만으로는 전국적인 택배망을 꾸리기 어렵기 때문에 택배사에 위탁한 물량을 회수하는 수순이고, 물량확보 경쟁이 붙으면 단가경쟁으로 이어지고 그 리스크는 노동자들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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