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처구니없고 황당하죠. 직접공정과 간접공정을 나눌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설마설마했는데….”
한국지엠이 ‘직접공정에서 근무하는 하도급업체 재직인원’만 특별 발탁채용 절차를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한정수(55·가명)씨는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2006년 입사해 2019년까지 직접공정 업무를 수행한 그는 지난해 6월 인천지법에서 불법파견임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현재는 간접공정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특별 발탁채용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회사는 그에게 지난달 31일 해고예고 통보를 했다.
간접공정 노동자는 신생업체에 몰아 계속 일할 수 있게 한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하반기 부평2공장 생산중단 소식은 비정규직의 목을 죄어 오고 있다.
“14년째 직접공정 하다 최근 간접공정 맡았는데…”
<매일노동뉴스>가 최근 인천 부평구 금속노조 인천지부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지회장 이영수) 사무실을 찾아 비정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갑갑해요. 막막하고…. 다시 해고자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해요.”
쉐보레 2세대 아베오(T300) 차체 용접업무를 수행하던 한정수씨는 2018년 12월31일 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이미 한 차례의 해고를 겪었다. 당시 회사는 물량감소로 부평2공장을 1교대 근무로 전환했고 무급휴직 동의서를 작성한 노동자에게만 신규업체 면접 자격을 부여했는데 한씨가 이를 거부했고 해고됐다. 천막농성과 고공농성, 오체투지 등 온갖 투쟁을 한 후인 2020년 1월에야 그는 복직했다. 현재는 부평2공장에서 생산한 말리부 도어·보닛·트렁크 후드 등을 조립공장에 운송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하지만 복직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또다시 해고위기에 놓인 것이다.
한씨는 “임시로 (신규채용 대상에서 1차 사내하청 간접공정 노동자가 일할) 새 업체를 꾸린다고 하지만 부평2공장 물량이 내일모레면 단종되는 상황”이라며 “단종되는 시점까지 써먹고 소모품처럼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2021년 5월 인천지법은 한국지엠의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한씨도 승소자 중 하나였지만 한국지엠은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부평2공장 생산중단, 고용불안은 비정규직 몫
해고예고 통보를 받지 않았지만, 2차 사내하청 노동자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부평1공장 트레일블레이저의 범퍼 가조립업무를 하는 김태훈(31) 지회 정책선전부장은 “한국지엠은 2018년과 2019년 비정규직을 대량해고하고 대부분 업무를 인소싱했다”며 “부평2공장 생산이 중단되면 정규직들은 부평1공장이나 차원공장으로 들어오게 될 텐데 혹여나 하청업체가 하던 일을 인소싱할까 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은 2017년 생산량이 감소하자 비정규직이 맡던 일감을 정규직 노동자에게 주는 형태로 대응했다. 같은 이유로 인소싱을 추진하던 2019년에는 창원공장 비정규직 560명이 대량해고됐다. 한국지엠 노사는 고용안정특별위원회를 열고 부평2공장 생산 중단에 따른 고용불안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회사는 부평2공장에서 일하던 정규직 노동자 1천500여명을 각각 부평1공장과 창원공장에 전환배치할 계획이다.
2차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있는 김태훈 부장도 2019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 2021년 5월 인천지법에서 승소했고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범퍼 없는 차가 없는데 간접공정인 게 말이 되느냐”며 “그런데 회사는 공장 한쪽에 칸막이를 쳐 ‘범퍼장’을 따로 분리하고 불법파견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부평1공장은 반도체 수급 문제로 인해 주·야간조가 각각 격주로 일하고 있다.
“대화 제안하더니, 대화의사 없던 한국지엠”
한편 금속노조 경남지부·인천지부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10여명 중 회사가 밝힌 채용 대상(약 260명)에 포함되는 인원은 48명뿐이다. 발탁채용 대상에 포함된 노동자들은 회사 제시안을 받아들여 다음달 1일 원청에 입사할지, 거부한 채 해고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다.
발탁채용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간접공정 노동자와 2·3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불법파견 투쟁을 이어 나가야 한다. 한국지엠의 제안으로 시작된 한국지엠 비정규직 관련 특별협의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발탁채용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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