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형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산재 경기안산지사장)

현 정부는 2022년까지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를 강력히 처벌하는 내용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근로자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이러한 흐름의 영향으로 산재에 대한 근로자들의 인식 역시 많이 개선됐음을 느낀다. 상담을 해 보면 ‘산재는 사업주가 승인해 줘야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에서 ‘산재는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이전에 비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식의 변화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사회에 이른바 직업병이라 불리는 ‘업무상 질병’에 대한 인식은 업무상 사고에 비해 조금은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업무상 질병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돼 몇 가지 예시를 들어 오해를 바로잡아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발병 장소’에 대한 오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택에서 갑자기 뇌출혈 등이 발병해 쓰러지면 사업장이 아닌 자택에서 질병이 발생했기 때문에 당연히 산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사업장에서 쓰러졌으니 당연히 산재에 해당한다’고 보는 사례 또한 있다.

하지만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질병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질병의 발생 장소보다는 질병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고려하도록 정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뇌심혈관계 질병을 예로 들면 발병 전 24시간, 1주, 12주간으로 나눠 법에서 규정하는 기준 이상의 업무상 과로(업무시간·업무량으로 판단)나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여부로 판단한다.

즉, 뇌출혈 발병 이전에 법에서 정하고 있는 일정 기준 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있었다면 뇌출혈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고, 단순히 발병 장소가 사업장이냐 그 외의 장소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발병 시점’에 대한 오해로 퇴직을 한 상태이거나 퇴직을 하고 수년이 지나서 질병이 발생한 경우의 문제다. 질병은 유해요인에 노출되고 일정 기간의 잠복기를 거쳐 발병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암’을 꼽을 수 있다.

암의 잠복기는 유해물질의 종류나 발병 부위에 따라 5년 이내에서 최장 40년까지의 잠복기를 거쳐 발병하게 된다. 과거 발암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서 근무한 뒤 10년이 지난 시점에 암이 발생해도 퇴직 여부와 상관없이 기준을 충족한다면 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비단 직업성 암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근골격계 질병부터 소음성 난청·진폐증 등 다양한 질병에도 해당할 수 있다. 과거 업무 수행 중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요인에 노출된 경력이 있다면 퇴직 후 발병했더라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살펴본 여러 가지 오해들로 충분히 업무상 질병에 해당할 수 있는데도 신청조차 해보지 못하고 그 고통을 근로자와 그 가족이 오롯이 감내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디 업무상 질병에 대한 오해가 개선돼 ‘질병 산재’로 인한 근로자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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