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항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고 이선호씨 사고와 관련한 원·하청 관계자들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은 ‘징역형의 집행유예’였다. 유족과 고 이선호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검찰 구형과 선고 형량이 모두 약하다며 검찰에 항소를 촉구했다.
동방 평택지사장 혐의 부분은 단 ‘한 줄’
‘컨테이너 하자와 피고인 반성’ 고려
20일 <매일노동뉴스>가 이선호씨 사고 책임자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지난 13일 선고한 판결문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1단독(정현석 판사)은 관계자들의 안전조치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므로 사고 당시 법률을 따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따른다는 형법 1조1항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동종 유사사건의 양형 등을 참작해 형을 정한다”고 밝혔다.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청인 ‘동방’의 평택지사장인 A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동방 팀장과 대리에게는 금고 5월과 6월을 선고했다.
사고 당시 현장을 지휘했던 하청 직원과 지게차 기사는 각각 금고 4월과 8월이 선고됐다. 이들에 대한 형 집행은 모두 2년간 유예했다. 양벌규정으로 재판에 넘겨진 동방 법인에는 벌금 2천만원을 부과했다.
이선호씨는 지난해 4월22일 평택항 내 ‘FR(Flat Rack) 컨테이너’에서 화물 고정용 나무를 제거하던 중 넘어진 한쪽 벽체에 깔려 숨졌다. 컨테이너의 안전핀이 빠져 있어 지게차가 뒤쪽 벽체를 접는 과정에서 충돌로 인해 발생한 진동으로 앞쪽 벽체가 접히면서 선호씨를 덮쳤다.
이후 고용노동부와 검찰 수사 결과 안전사고 예방계획과 사전 안전교육, 현장 관리·감독과 안전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동방은 FR컨테이너 작업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았고, 중량물을 취급해 위험한 작업인데도 안전모 등 보호구를 지급하지 않았다. 지게차 작업에 신호수가 배치되지 않았고, 중량물취급 작업계획서도 작성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동방 팀장은 재판에서 작업계획서를 몰아서 한꺼번에 결재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법원은 이러한 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형량은 대폭 낮췄다. 하청 책임자에 대해선 번들작업 경험이 없는데도 사전준비 없이 동방 대리의 지시에 따라 작업현장을 지휘해 안전조치의무를 부담한다고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하지만 동방 평택지사장 A씨에 대해선 “사업주로서의 안전보건 조치의무 위반의 정도가 무거운 편”이라며 한 줄로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들이 잘못을 깊이 반성하며 유족에 진지한 애도를 표하는 점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짐한 점 등을 유리한 양형요소로 참작했다. 사고 컨테이너에 하자가 있다는 부분도 고려했다.
상향된 양형기준 전혀 적용 안 돼
가중영역 최소기준 미달, 양측 항소
유족은 원청에 대한 1심 선고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입장이다. 대책위는 “깃털보다 가벼운 선고로 원청사는 면죄부를 받았다”며 “연간 5천억원 매출을 올리는 동방이 벌금 2천만원으로 안전에 대한 투자 필요성을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더라도 검찰 구형과 법원 선고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해야 산재사망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선고가 상향된 대법원의 양형기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과 관련해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가중영역을 ‘징역 10월~3년6월’에서 ‘징역 2년~5년’으로 대폭 올린 바 있다. 또 죄질이 좋지 않은 특별가중영역에 속하면 징역 7년까지 선고를 권고했다.
이선호씨 사고 책임자에 대한 재판은 지난해 7월 이후 시작돼 새로운 양형기준이 적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청 책임자에게 이러한 기준은 반영되지 않았다. 안전보건관리 총괄책임자인 동방 평택지사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관리감독자인 팀장은 금고 5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가중영역 양형의 최소기준에도 미치지 못한 셈이다.
유족측을 대리한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1심 선고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권고한 가중영역의 형량에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검찰 구형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양형으로서 동방과 경영진에게 안전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경각심을 주기에는 턱없이 가벼운 형벌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선호씨 사망사고는 어쩌다 실수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동방과 경영진의 안전경영 부재로 인한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결과라는 점에서 기업과 경영진의 위법성과 책임의 정도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유족측은 지난 18일 수원지검 평택지청에 양형 부당으로 항소할 것을 요청하는 항소 촉구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에 검찰은 다음날 항소했다. 이어 피고인 변호인도 20일 재판부에 항소장을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