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전경. <홍준표 기자>

공개된 장소에서 사업주에게 질책을 받는 등 업무상 부담으로 뇌출혈이 발병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서태환 부장판사)는 A(58)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공단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레이저 및 장비 개발·생산업체에서 부장으로 재직하며 개발연구를 담당해 왔다. A씨는 직원 635명 중 10여명에 불과한 박사급 연구원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2016년 10월17일 자택에서 왼쪽 팔다리에 힘이 빠져 일어서지 못하는 증상을 겪어 급히 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는 병원에서 뇌출혈·뇌경색·심부전증·편마비 등의 진단을 받았다.

이후 A씨는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불승인 결정이 났고 재심사 청구도 기각됐다. 그러자 A씨는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뇌출혈이 발병했거나 기존 질환이 과로로 인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했다”며 2019년 10월 소송을 냈다.

1심은 “A씨의 상병이 업무상 부담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업무상 재해로 판단했다. 근무시간이 고용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지만 A씨가 과중한 업무를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는 퇴근 이후에도 자택에서 새벽까지 업무를 했다고 진술했다”며 “업무 내용과 직위, 사업장 근무형태, 개인 컴퓨터 접속 시간 등을 볼 때 공단이 조사한 근무시간보다는 장시간 근무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특히 A씨가 개발업무 책임자였기 때문에 부담이 심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회사에서 높은 매출 비율을 차지하는 제품에 대한 개발업무를 담당했던 것으로, 업무 강도나 긴장도는 통상적인 업무보다 높았다”며 “더욱이 팀장과 갈등을 겪었고, 상병 발병 3일 전에는 개발업무를 발표하면서 사업주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질책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건강검진 결과 직무 스트레스 정도가 상위 25%로 높게 나타났다.

재판부는 “개발업무의 진행상황, 소속 부서 팀장과의 갈등, 공개된 장소에서 질책 등 사건들로 인해 A씨가 상당한 업무상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도 1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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