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백신을 맞고 쉴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가 백신휴가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속노조는 10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산업단지 내 영세사업장의 모든 노동자에게 코로나19 백신 유급휴가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나미자 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사무장은 “정부의 시야에는 벼랑 끝에 매달려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노동자가 없다”며 “누구나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는데 권리 침해와 차별 없이 백신을 접종하고 쉴 권리는 동등하지 않은, 극단적 양극화를 정부가 나서서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3월 코로나19 백신 이상 반응에 따른 휴가 활성화 방침을 통해 기업들에 백신 유급휴가를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권고 수준에 그쳐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노동자들은 백신 유급휴가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노동계 주장이다.
서다윗 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장은 “대기업과 금융권, 대형유통사, IT기업을 중심으로 백신 유급휴가가 도입되고 있다”며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100명 미만 사업장을 우선 지원해 양극화를 극복하자”고 말했다. 노조는 정부가 모든 노동자에게 백신 유급휴가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실질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백신을 맞은 날과 그 다음날 유급휴가를 보장하고 백신을 두 번 맞아야 할 경우 유급휴가도 두 차례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내하청·파견·특수고용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사업장 내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휴가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코로나19는 불안정한 노동조건에 노출된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게 더 가혹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가 지난해 6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3.5%가 연차휴가 사용 강요, 무급휴직 강요, 권고사직이나 해고통보 위협, 임금삭감과 반납 등을 경험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긴급지원을 경험했다고 답한 노동자는 6.1%에 불과했다. 같은해 10월 조사에서는 부평·주안·남동·검단·서부공단 노동자 가운데 54.2%가 코로나19로 노동시간 감소, 연차 강요, 구조조정, 무급휴업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미 해고를 당했거나 휴업 중인 노동자는 통계에서조차 제외됐다.
노조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백신을 맞고 건강하게 일터로 복귀할 권리마저 차별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가 전국 산업단지 내 중소·영세 사업장과 무노조 사업장의 백신휴가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유급휴가를 부여하지 않고 무급휴무를 적용하거나 강제로 연차를 소진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산의 중소·영세 사업장 대다수는 연차를 사용하거나 금요일에 백신을 접종할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미조직 사업장의 경우 백신 접종과 관련한 근태 적용 지침이나 휴가 방침이 없는 곳이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형태에 따라서도 휴가가 차별적으로 제공됐다. 구미공단의 한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접종 당일과 다음날 유급휴가를 보장했지만 비정규 노동자에게는 휴가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도 코로나19에 취약하지만 백신휴가를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백신을 맞을 때 사장이 이주노동자에게 유급휴가를 줄 리가 없다”며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어도 강제로 일할 수밖에 없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방역지침도 지키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에게도 백신 유급휴가를 보장하고 백신접종 절차와 이상반응에 대해 자국 언어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