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땅이나 집은 민중의 필수 생산수단이거나 생활수단이다. 생산과 생활의 필수품인 이 토지와 주택이 지금 뜨거운 정치문제가 되고 있다. 토지와 주택이 민중들의 생산수단이나 생활수단으로 사용되기보다 재벌과 관료를 비롯한 기생계급의 재산증식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데서 오는 문제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6월 취임사에서 “국토는 국민의 집입니다. 그리고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입니다. ‘돈’을 위해 서민들과 실수요자들이 ‘집’을 갖지 못하도록 주택시장을 어지럽히는 일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됩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이 소신과 달리 24번에 달하는 잘못된 대책으로 주택을 더욱 더 재산증식 수단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주택임대사업자 양성화다. 서울 아파트 값은 50%가량 폭등했다. 그로 인해 분노하는 민심에 의해 장관직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그의 후임 변창흠 장관에 의해 주택문제는 누그러지기는커녕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그는 전국적으로 2025년까지 아파트 83만채, 수도권 32만채를 건설하는 2·4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지난해 8·4공급대책에 따른 3기 신도시 포함 수도권 127만채 건설을 합쳐 총 211만채가 건축된다.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 보듯 하다.

때맞춰 3기 신도시개발 예정지에 대한 토지주택공사 직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토지매입 비리가 폭로됐다. 그 한가운데 변창흠 장관이 있다. 토지주택공사 직원 토지매입 비리는 그가 사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에 일어난 일이다. 그의 조기 낙마는 기정사실이다.

김현미 전 장관의 말대로 토지와 주택은 투자든 투기든 재산증식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집값이나 땅값이 오를 것을 내다보고 행한 것이므로 모두 지대추구 행위다. 토지와 주택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런 필수 사용가치는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이익(이 경우 이윤이기보다 지대인데) 추구 수단으로 자본화해서는 안 된다. 교육이나 의료가 그렇게 자본화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파트값 폭등 문제나 토지주택공사 직원 토지 부정매입 문제나 모두 근원적으로는 이렇게 자본화해서는 안 될 것을 자본화하는 잘못된 자본주의에서, 그리고 이렇게 자본화해서는 안 될 것을 극단적으로 자본화하는 한국적인 천민자본주의 체제에서 파생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그냥 둔 상태에서 내놓는 온갖 처방들은 어느 정권 어느 장관의 어떤 정책이든 소리만 요란할 뿐 기대하는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게 부동산 문제에 대한 ‘솔직한’ 진단이다.

주택문제만 해도 그렇다. 문재인 정권 들어 아파트값이 폭등함으로써 이 문제가 표면화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처럼 아파트값이 폭등하지 않았어도 주택문제는 심각했다. 국민의 절반가량이 자기 집을 소유하지 못해 셋방살이를 하고 있으며, 소유권은커녕 셋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보유권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무주택 문제는 토지가 소수의 자본계급에게 독점적으로 사유돼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집값의 큰 부분은 건축비가 아니라 땅값이다. 이 측면만 보자면 지금의 임금노동자는 봉건시대 농민만도 못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진보를 자칭하는 자유주의 세력은 대증요법에 급급하다. 공급이 문제였다며 대규모 주택 건설을 추진하며, 주택투자에 대해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감면하고 있다. 자유주의 진보가 아닌 사회민주주의 진보 쪽에서는 무슨 대책을 내놓고 있나. 별로 없다.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할 지향이 없을 뿐 아니라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할 의사도 없으니 당연하다.

부동산 문제는 한국 천민자본주의의 핵심적 측면 중 하나다. 재벌과 관료들의 주요 축재수단이다. 이런 천민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토지공개념이 무산된 데서 보듯이 자본주의적 소유권과 영리추구권을 침해하면 헌법에 저촉된다.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있지만 자본가의 사유재산권보다 우선하지는 않는다.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토지공개념 정도가 아니다. 토지는 국유화하고 필요로 하는 개인이나 조합 또는 법인에게 보유권을 줘 이용토록 하며, 주택은 비영리적으로만 거래되게 해야 한다. 이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런 정도의 변화는 개혁이 아니라 변혁에 속한다. 그리고 변혁을 이루려면 혁명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혁명에는 많이 못 미치고 자본주의 안에 머물지만, 천민자본주의는 끝장내는 급진적인 민주주의 혁명이다.

그런데 어느 저명한 진보교수는 언론에 토지공개념 도입을 제안하며 “그것이야말로 … 혁명을 예방하는 길이다”고 말한다. 그런 철지난 정책을 해답으로 내놓는 것도 실망이지만 혁명을 선동해도 부족할 판에 혁명을 예방하자고 말하는 것은 더욱 실망스럽다.

이에 비해 현장을 뛰는 김헌동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장의 대안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우선 부동산 거품을 제거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과거 시행했던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상한제와 후분양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다음으로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며 건물만 분양하는 반값 또는 반의 반값 아파트를 정부가 계속 공급해 아파트값을 대폭 떨어뜨리라고 제안한다. 나아가 주택정책을 복지정책으로 접근해 국토부를 없애고 토지주택공사를 ‘주택청’으로 만들어서 보건복지부 산하에 둬 공공주택을 확대하라고 제안한다.

나름 획기적이다. 그러나 그도 인정하고 있듯이 재벌과 관료를 비롯한 지대추구 세력이 경제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상태에서, ‘부드러운 파시즘’의 한 날개에 불과한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의해 그런 획기적 정책이 실행될 리 없다. 그도 실망하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를 접고 노동자·민중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혁명에 함께 희망을 걸었으면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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