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8일 한아무개씨가 촬영한 캐럿글로벌 사무실의 모습. 왼쪽 아래 한씨의 자리를 비추는 CCTV가 오른쪽 위 입구 근처에 설치돼 있다. CCTV는 한씨의 문제제기 이 후 철거됐다. <제보자>

유명 외국어·인사관리 교육 컨설팅 회사가 부당해고당한 직원을 상대로 복직 2주 만에 또 징계절차에 들어가 빈축을 사고 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피해자는 고립감을 호소하고 있다.

2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캐럿글로벌에 다니는 한아무개(34)씨는 지난 16일 복직 2주 만에 열린 인사위원회에 출석했다. 징계절차 수순이었다. 캐럿글로벌은 기업 등을 대상으로 교육인력을 파견하는 회사다. 가장 최근 금융감독원에 보고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매출이 254억원을 넘는다. 한씨는 2018년 8월부터 회사 창원센터에서 근무했다.

복직 3일차 인사위 출석 통보

한씨는 지난해 9월 업무 불이행·직장내 성희롱 등으로 해고됐다. 결혼식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청천벽력 같은 통보였다. 무엇보다 해고 사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상사에게 이메일로 소통 문제를 제기한 것이 ‘업무 불이행’이라는 징계혐의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직원 위협 발언이나 성희롱 같은 문제는 징계위원회 출석통지서를 받기 전까지 문제된 적이 없었다. 징계위가 열리기 전 본사 관계자와 면담했지만 업무태도에 관한 이야기만 오갔을 뿐이다. 그날 관계자는 창원에 신혼집을 준비한 한씨에게 서울 또는 부산으로 전보를 제안했다.

한씨는 결국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경남지노위는 지난 1월 회사에 한씨를 원직복직시키고 해고기간에 해당하는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한씨에게 직장내 성희롱이라는 해고사유를 형식적으로 통보해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이유였다. 성희롱에 관해서도 회사는 입증자료나 징계위 회의록을 경남지노위에 제출하지 못했다. 해고사유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한씨가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봤다. 사측은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을 포기했다. 안도도 잠시, 회사는 또 다른 징계를 내렸다.

한씨가 이번에 받은 징계혐의는 지난해 해고 당시와 비슷했다. 근무태도가 나쁘고, 직장규율을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인사위원회 출석 공지는 복직 3일차인 지난 4일 받았다. 다만 지난 해고 때 회사가 주장한 성희롱 문제는 ‘풍기문란’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복직자만 비춘 CCTV

해고 6개월여 만에 복직한 한씨가 겪은 시련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씨가 근무하는 창원센터는 한씨를 포함해 4명이 근무하는데 지금은 한씨만 사무실로 출근한다. 다른 직원들이 한씨를 불편해한다는 이유다. 그런데 복직한 지 일주일 만에 갑자기 사무실 안에 CCTV가 1대 설치됐다. 촬영 각도는 한씨 자리를 향했다.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노동자 감시를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하면 과태료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씨가 회사에 문제제기를 하자 본사 관계자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가 경찰이 오니 “선이 연결돼 있지 않아 CCTV를 볼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매일노동뉴스>가 캐럿글로벌쪽에 CCTV 설치에 관해 묻자 사측은 “보안업체 직원이 실수로 설치한 것”이라고 발뺌했다. 보안업체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고 CCTV는 한씨가 문제제기를 한 뒤로 철거됐다.

한씨는 “상사에게 지난해 보낸 이메일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구성원 간 평등한 소통을 강조하며 서로를 직위가 아닌 영어이름으로 부른다. 한씨는 당시 이메일에서 일처리를 독촉하는 상사에게 “일이 많아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다”며 “민주적인 소통방식이 필요해 보인다”고 썼다. 징계가 결정되고 나서는 억울한 마음에 유튜브에 회사 이름을 알리지 않고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알리거나 노조 결성을 촉구하는 영상을 게시했다. 회사는 이것도 문제 삼았다. 커뮤니케이션 서약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한씨가 입사 때 쓴 ‘커뮤니케이션 서약서’에는 “회사문화에 저해되는 네거티브 커뮤니케이션(부정적인 소통)을 절대 생산하거나 동조 및 전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사측 “경남지노위 판정 결과는 절차상 문제”

회사는 지노위 판정 결과를 ‘절차상 문제’로 일축한다. 캐럿글로벌쪽은 <매일노동뉴스>에 “지노위 판정 당시 징계 절차가 문제된 것이고 회사는 여전히 한씨가 업무불이행 등의 징계 혐의가 있다고 본다”며 “인사위원회에서 사실관계 조사 후 징계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에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징계사유에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피해자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회사 이름을 기사에 실명으로 기재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도 위협했다.

경남지노위에서 사건을 대리한 강문대 변호사(법무법인 서교)는 사측이 주장하는 절차적 하자가 보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사측은 징계 과정에서 다른 해고 사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사절차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성희롱 문제를 갑자기 제기했다”며 “경남지노위가 지적한 절차적 하자의 의미”라고 밝혔다. 그는 “실제로는 성희롱 사실이 인정되기 어렵다”며 “커뮤니케이션 서약도 근로자 발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씨가 겪는 일은 직장내 괴롭힘의 전형적 유형이다. 한씨는 현재 업무용 메신저나 회사 이메일도 차단됐다. 회사는 “한씨가 다른 직원들에게 사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메일로 알려 사내 질서를 해쳐 소통수단을 차단했다”는 입장이다. 직장갑질119의 김유경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근로자 동의 없이 원직복직 시점에 맞춰 CCTV를 설치했다는 것은 감시하기 위한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업무용 이메일 차단 역시 직장내 괴롭힘 유형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한씨는 “더 이상 나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노조를 결성하고 싶다”며 “회사가 지금이라도 과오를 반성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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