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통교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까지 일자리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코로나로 취업 안 된 고3 일자리 정부가 책임져라!”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학생들이 일제히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지난 20일, 낮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만큼 추웠지만 이들은 40여분간 행진을 이어 나갔다.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 종로구 청계천의 광통교부터 서울고용노동청까지 행진하는 코스였다. 벌써 6주째 일요일마다 거리행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특성화고 졸업생·재학생이 조합원인 특성화고졸업생노조와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소속인 이들은 지난 11월부터 거리를 행진하거나 운동장에서 피켓을 들며 고졸 취업자 일자리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왜 이들은 거리로 나오게 됐을까.

코로나19로 기회 자체가 줄었다

특성화고 학생들과 단체 관계자들은 졸업을 앞둔 고3 학생들의 실업이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년 1월부터 졸업할 학생들은 당장 사회로 “내던져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3년간 취업을 준비해 온 학생들은 구직난에 급히 대학입시를 결정하기도 한다. 전공에 따라 아예 취업처를 찾지 못한 경우도 다수다.

수도권 특성화고를 다니는 고등학교 3학년 김민선(가명)양은 “취업을 못 할 것 같아 대입 원서를 8개나 썼다”고 토로했다. 아이들을 좋아해 영유아보육과에 진학했고 자격증도 여러 개 취득했지만 취업 전망은 어둡다. 반에서 취업한 사람도 없고 학교 안 보육전공자 중 취업자도 없다. 김양은 “모의고사 한 번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수능을 보게 됐다”며 “어린이집 보육실습 한 번 없이 졸업해 취업도 못 하는 상황에 놓여 고교 입학을 후회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 닥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자격증 시험 일정이 미뤄지거나 취소돼 취업에 필요한 준비도 다하지 못했다. 학교의 실습수업이 진행되지 않아 기계 사용법을 집에서 혼자 익힐 지경이다. 연말에는 취업처가 정해지거나 현장실습을 해야 하지만 현장실습 기회도 줄었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일자리 자체가 없는’ 문제다.

최서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 고졸일자리보장 실천단장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진학을 권유하거나 학생들에게 직접 취업사이트를 알아보라고 할 정도”라며 “전공과 무관한 일자리로 진출하는 경향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올해는 취업처가 워낙 없으니 3년간 회계·사무를 전공하고 현장직이나 공사장으로 취업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밝혔다.

고졸 이하 청년 입직기간 대졸 이상 청년의 2배
“특성화고 졸업생 취업 제한돼 열악한 노동환경 감내”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2020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졸업 후 첫 취업에 소요되는 평균기간은 고졸 이하가 14.8개월, 대졸 이상이 7.2개월로 나타났다. 학력에 따라 입직 기간에도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이상현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이사는 “취업에 필요한 기술 숙련도나 자격을 학력 중심으로 평가하다 보니 대학졸업자격이 없는 이들은 일자리 문제에 취약한 것이 현실”이라며 “특성화고 학생들은 저임금이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내하거나 안 좋은 일자리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고 구조적으로 대졸자에 비해 차별적인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경기비정규직지원센터가 지난해 2월 발표한 ‘경기도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환경 인터뷰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표본의 반수 이상이 취업 현장에서 고졸자 차별이나 근로계약 미준수, 임금차별, 성차별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스스로 차별을 당연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센터는 경기도 지역 특성화고 졸업생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고, 졸업생 24명과 심층면접을 했다.

이상현 이사는 “여러 통계들에서 학력별로 임금격차가 발생하고, 정규직·비정규직 고용형태 비중이 다르거나 기업 규모가 클수록 대졸자가 중심이 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졸 노동자들을 명확히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처우개선은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학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폐단을 개선하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졸업 앞둔 학생들에 대한 일자리 대책 시급”

노조와 연합회는 교육부·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구체적인 일자리 대책들을 제안하고 있다. 당장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일자리 대책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공기관·대기업 고졸 일자리 비율 확대와 지자체별 고졸취업지원센터 설립, 코로나19 고졸취업급여 지급 등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말하는 일자리 문제의 핵심은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들 단체가 공공부문과 대기업이 고졸 직무를 적극 개발하고 취업을 장려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유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일자리센터 등은 대졸자에 맞춰 정보를 제공한다고 지적한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졸업 뒤 취업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들은 고졸취업지원센터를 만들어 고졸자에 특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5월 교육부는 ‘2020 직업계고 지원 및 취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대책으로 온라인 수업을 개발하고 직업계고 학생을 위한 기능사 자격검정을 별도로 개설했다. 당사자들은 정부 정책이 의미는 있지만 당장 취업난을 마주한 학생들이 변화를 체감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최서현 단장은 “특성화고 졸업생 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단기·중기·장기적 방침이 각각 필요하다”며 “코로나19로 당장 2주 뒤 실업자로 졸업할 학생들에 대한 대책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년 초 졸업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은 8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거리로 나와 일자리 대책을 촉구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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