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논란은 없으면 좋겠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제는 (내부 논란을) 수습하고 단결해야 한다.”

김재하(59·사진)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이 넉 달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의 역할을 언급하며 말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7월27일 열린 임시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선출됐다. 당시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장이었다.

김명환 전 위원장은 7월23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합의 최종안’이 부결되자 다음날 김경자 수석부위원장·백석근 사무총장과 함께 직을 내려놓았다. 김재하 비대위원장이 김명환 전 위원장의 공백을 메우게 된 것이다. 사회적 대화 논란으로 민주노총이 진통을 겪을 당시 김 비대위원장은 김명환 전 위원장이 제시한 합의안에 반대했다.

“(김명환 전 위원장과 저 모두) ‘철도재이(철도쟁이)’ 아닙니까. (제가) 얼마나 고민됐겠어요.”

김재하 비대위원장은 “철도노조 구성원들끼리는 동료의식이 엄청나다. 철도 현장에 민주노총 깃발을 꽂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탓”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대화에 대한 입장은 명확히 밝혔다. “사회적 대화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는 것이다. 내용이 미흡한데 사회적 대화 자체를 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사회적 합의는 무산되고, 위원장은 사퇴하고, 코로나19 경제 위기로 노동자들의 고통은 가중되는 상황. 민주노총의 비상시기에 김 비대위원장은 민주노총 운영과 관련해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실에서 김 비대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2002년 철도·발전·가스 노조가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반대 공동파업을 할 때 투쟁본부 상황실장을 맡으며 구속됐다. 철도노조 부산본부장과 민주노총 부산본부장을 거쳤다.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 비대위원장 선출 배경과 소감은.
“민주노총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었으니 비대위원장으로서 역할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통상 비대위원장은 규모가 큰 산별노조 위원장이 맡았는데, 이번엔 코로나19 경제 위기 대응으로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중집에서 16개 지역본부장 대표를 맡고 있던 제가 선출됐다. 비대위원장이라는 자리가 말 그대로 비상시기에 위원장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라서 (역할을 하기) 쉬운 상황은 아니다.”

- 선출된 이후 어떻게 지냈나. 임기 동안 중점을 둘 사안은.
“선출된 뒤 한 달이 좀 지났는데 상당히 바빴다. 김명환 전 위원장을 비롯해 10여명의 결원이 발생했다. 비대위 체제와 사무총국을 꾸렸다. 하반기 사업계획 토론을 했고 8·15 광복절에 노동자대회 행사도 했다. 이른바 전태일 3법 입법발의를 위해 국민동의청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도 10만명을 채워야 한다. 공이 많이 드는 사업이다. 코로나19 경제 위기 시기의 노동자·민중 생존권 확보라는 목표도 설정해 추진 중이다.”

전태일 3법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과 5명 미만 사업장에 적용을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다.

- 전태일 3법 청원은 가능할 것 같나. 
“절차상 한 달 내 10만명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무조건 가능할 것이라 본다. 한 달이 안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10만명이 동의를 한 뒤에 국회가 답을 어떻게 할 것인가다. 민주노총은 10만명 동의가 이뤄지면 그 부분에 대한 대응방안도 모색하려 한다. 발의가 시민 10만명 동의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법안이 폐기된 지난 회기와는 달리) 국회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본다.”

“민주노총과 코로나19 연결은 억측 ”

- 광복절에 2천명가량이 모인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집회를 기자회견 형식으로 바꿨다고는 하나 사실상 집회 규모의 인원이 모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에 꼭 대규모 행사를 해야 했냐는 지적이 있다.
“우선 행사는 집회가 아니라 방역에 최선을 다한 기자회견이었다. 2천명이 참가했지만 보신각 사거리 인도에 흩어져 쭉 늘어서 있었다. 그래서 질병관리본부나 경찰은 당시 우리 기자회견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와 노동자대회를 동일시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리고 그날 행사를 한 것 자체는 맞다고 판단한다. 지금 한반도 정세를 보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남북정상회담도 하고 백두산도 가고 했던 것이 다 어디 갔나. 한미워킹그룹을 두고 제2의 조선총독부 아니냐는 말도 많다. 또 자주와 평화는 노동자의 삶과 직결된다. 천문학적인 주한미군 주둔비·군사무기 구입비 등은 우리가 낸 세금인데 복지로 쓰면 얼마나 좋겠나. 그래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민족의 자주·평화·통일을 위해 남북합의 이행·한미워킹그룹 해체·한미연합훈련 중단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이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가 아닌가.”

- 노동자대회에 참석한 2천명 중 99%가 코로나19 검사를 했다고 밝혔는데.
“당초 질본은 노동자대회 참석자는 검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우리를 검사 대상에 포함하면 보신각 반경에 있던 2만명을 다 검사해야 하는 상황이라 질본 입장에서는 행정력 낭비라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자체적으로 결정을 해서 대회 참가자들은 다 검사를 받도록 지침을 내렸다. 문제는 검사 대상이 아니다 보니 일부 조합원들이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지침을 내린 초반엔 서울의 경우 어느 구에선 되고 어느 구에선 안 돼서 조합원들이 가능한 구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강원도는 검사가 더 어려웠다. 한 조합원은 검사가 안 돼서 보건소 세 군데나 찾아갔다. 민주노총의 (비공식) 협조 요청으로 이후 정부 쪽에서 대회 참석자도 검사받을 수 있도록 정리했다.”

- 지침대로 노동자들이 검사받은 결과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분의 확진이 이번 기자회견과는 관계없다고 200% 확신한다. 보신각 행사로 감염된 것이었다면 2천명 중 1명이라도 확진자가 더 나와야 하는데, 그 많은 인원 중에 감염자는 그 조합원밖엔 없다. 더군다나 해당 조합원은 이후 다시 음성으로 판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와 광화문 집회발 코로나19를 연관시킨다는 것은 억측이거나, 우리를 향한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회 참석 명단도 다 질본에 제출했다. 처음엔 제출 의무가 없어서 안 내다가 이후에 (정부 요청으로) 제출하게 됐다. 조합원 동의를 구하느라 시기가 조금 늦어졌다.”

- 올해 또 대규모 행사를 열 계획이 있는지. 또 현재 일부 가맹·산하 조직의 농성은 계속 진행될 예정인지.
“(각종 대외활동을) 코로나19 상황에 맞게 할 것이다. 우리도 멍청이가 아닌데 어떻게 집회를 계속하겠나. 이달 5일 예정됐던 집회도 이미 취소했다. 기자회견을 진행할 때도 인원을 9명 이하로 하고 있다. 농성은 코로나19 이후 해고를 비롯한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이 하고 있는데 해당 농성과 관련해서는 농성 주체가 판단할 문제다.”

“대정부 대화 채널, 언제든 열려 있어”


- 앞선 집행부에서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 합의가 무산됐다. 사회적 대화 논란을 평가한다면.
“노사정 합의문에 대해 대의원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코로나19와 경제 위기로 다 같이 고통스러운 상황인데 경제계 역할은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노동계의 고통분담이란 말이 많았다. 사회적 대화를 비롯한 교섭·투쟁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다. 투쟁 자체가 목적이 아니듯 사회적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사회적 대화는 조건과 역량을 고려해 진행해야 한다. 외국 사례를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기는 곤란하다. 민주주의 발전 수준도 다르고 자본의 행태도 다르기 때문이다.”

- 1노총으로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임은 뭐라고 생각하나. 코로나19 시대에 사회적 대화도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민주노총의 사회적 역할은 코로나19와 경제 위기로 생존권 위기에 빠진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활동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단위사업장·산별노조마다 이해가 다르고, 사회적 인식·내부 역량·환경·법제도 등 다양한 이유로 사회적 역할을 못 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와 관련해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겠지만, 전체 노동자 이익을 두고 따져봤을 때 충분하지 못하다는 대의원 대다수의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 코로나19 시기인 만큼 집회나 농성으로 민주노총의 요구를 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화와 투쟁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현안을 풀기 위한 묘책이 있나. 
“현장 간부들과 조합원들은 상황에 맞는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다양한 방식들을 활용하고 있는데 (민주노총이) 소규모로 현장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는 방식, 화상회의를 하는 방식, SNS를 활용하는 방식을 비롯한 활동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고금지·전 국민 고용보험제·상병수당과 관련해서는 진보정당들과 시민·사회단체들과도 힘을 모을 생각이다. 정부에도 시기에 맞게 보도자료든 기자회견이든 다른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요구할 것이다. (사회적 대화는 아니더라도) 정부와 대화의 문도 열어둘 것이다. 거부할 이유도 없다. 우리의 주체적인 판단이 늘 반정부 투쟁은 아니다. 민주노총은 각종 정부위원회에도 적극 참여해 우리 주장을 할 것이다. (내용상 문제로 사회적 대화에 불참한 것이지) 우리는 (정부와의 대화) 채널을 닫아 놓은 적이 없다. 코로나19로 집회나 농성 같은 활동이 어려워 노동자·민중의 처지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묘책이 따로 있겠나. 열심히 뛰고 힘을 모으는 방법밖에 없다.”

- 사회적 대화 논란 과정에서 찬·반 양측 모두 의사결정·소통 방식이 미숙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파 갈등이 조직 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민주노총 내 소통·의사결정 방식을 개선할 방안은.
“노조는 대중조직인 만큼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 견해가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그 정파가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정파가 아니라 중집과 같은 자체 의사결정기구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이다. 정파들의 다양한 의견을 민주노총 방침으로 할지 말지는 민주노총의 권한이라는 것이다. 결국 규약과 규정에 따라 의사를 결정하고, 조합원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뜻을 모으는 것이 의사결정·소통 방식 개선방안이라고 본다.”

- 대부분의 민주노총 위원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나. 
“원인이 뭔가를 봐야 한다. 가령 위원장에게 높은 의식이 있는데 조합원들이 무시한다면 그건 조직의 수준이 그 정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합원을 설득하고 교육해서 의식을 끌어올리는 것이 위원장의 지도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안 되니 물러난 거다. 결국 (잘못 판단했든 조직의 수준이 높지 않아서든 위원장이) 잘못해서 물러난 거다. 한편으론 저를 포함해 합의에 반대한 사람들도 먼 후일에 잘못 판단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 평가도 흔쾌히 받을 것이다. 그것도 저는 당시 조직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대화 논란 수습, 직선제 무사히 치러야”

- 차기 집행부에는 어떤 사람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나. 
“내가 답할 문제는 아니다. 조합원이 선택할 문제다. 다만 크게 세 가지는 생각한다. 첫째는 조합원의 요구·시대적 요구에 입각해 방향을 잘 설정하고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다음으로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잘 구축해야 한다. 아무리 방향이 옳다 해도 힘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업과 투쟁을 잘 벌여야 한다. 투쟁이란 집회하고 파업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전술이 있을 수 있다.”

- 차기 위원장 선거 출마계획은 없나.
“없다. 훌륭한 분들이 많다. 나는 내년에 정년이기도 하다.”

- 남은 임기 동안 하고 싶은 것.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논란은 없으면 좋겠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수습하고 단결해야 한다. 간부들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코로나19 정세는 만성화할 것이라 본다. 방역을 하자니 경제가 어렵고 경제를 살리자니 방역이 안 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노동자·민중의 어려움이 갈수록 가중될 것 같다. 대응이 필요하다. 직선제 선거도 무탈하게 치러야 한다. 조합원 100만명이 참가하는 선거를 순전히 우리 손으로 치러 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행정력이 동원되는 정부·지자체 선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자부심이 있는 일이다. 조합원들이 단순히 한 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 주인으로서 자각하고 좀 더 정책 살펴보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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