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안에 일반해고 가이드라인과 취업규칙 변경 지침을 내놓겠다고 밝힌 가운데 노동법 전문가들은 "행정지침으로 노동조건과 노사관계를 규율하면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법연구소 해밀과 한국노동법학회·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동법, 지침과 예규를 넘어' 토론회를 열었다.

"지침→판결→입법 악순환"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이날 토론회에서 "행정지침의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으나 이것이 남발되면 자의성 배제와 법적 안정성·예측 가능성이라는 법치주의 원칙을 위협하고 국민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현재 고용노동부는 405개의 행정지침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직접적이고 대외적인 효력(법규성)을 지닌 고시나 예규·훈련 같은 행정규칙뿐 아니라 법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매뉴얼·지침도 98개나 된다. 현실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면서도 법적 근거가 불명확해 위법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통상임금 관련 지침이 대표적이다. 지금의 통상임금 논란은 노동부가 근로기준법상 시행령이나 기존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은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만든 것이 배경이 됐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판결을 내린 뒤에도 하급심 판결이 제각각으로 나오는 등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업무매뉴얼도 마찬가지다.

김 변호사는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취업규칙 지침 역시 복수노조 매뉴얼이나 통상임금 지침처럼 노동부 업무범위를 넘어선 월권이자 위법이라고 봤다. 그는 "해고의 정당성은 법원이 결정하는 것이고 근기법에서 절차를 정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부가 별도 지침을 마련할 필요도 권한도 없다"며 "정부 지침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거나 일반해고를 할 경우 나중에 법원으로부터 효력과 관련한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이 기존 판례를 어긴 노동부 통상임금 지침을 논거로 삼았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지침이 향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임금피크제를 법원이 허용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행정지침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의 권익을 구제할 행정수단이 없는 만큼 위법한 행정지침을 재정비하고 국회와 사법부가 통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노사관계 자율성 침해

노호창 호서대 교수(법정학부)는 노동부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노동부의 부적절한 행정해석 사례로 꼽았다. 해당 지침은 특정 기간 재직자에 대해서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판례법리로도 불확실한 부분을 너무 선제적으로 해석해 노사 간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개별 근로관계는 관련법 범위 내에서 노사자율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부 부처가 이를 행정지침으로 지도하는 것은 법적 권한이나 의무를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행정지도 원칙상 이해당사자 간 분쟁을 조정하거나 일정한 행위를 규제하는 행정지도에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근거가 불분명할 경우 권한도 없이 국민에게 불이익을 끼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임금피크제도 마찬가지로 "월권"이라고 강조했다.

노 교수는 "노사관계는 힘의 균형이 기울어져 있어 노동부가 지침으로 개입하면 노동자가 대응하기 어렵게 된다"며 "지침 제정 과정은 물론 제정 이후에도 법률전문가나 비판자의 견해를 고려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법원 판례 위에 노동부 업무매뉴얼?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노동부의 집단적 노사관계 업무매뉴얼을 "대법원 판례에 반하며 현실 노사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례"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2008년 "비서나 경비원은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해 행동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는데 노동부가 이를 매뉴얼에 반영하지 않고 이들을 조합원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지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노동위원회 쟁의조정 결정이 없더라도 조정기간이 끝나면 조정절차를 거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과 달리 노동부는 이 과정에서 노조가 쟁의행위에 들어가는 것을 불법으로 보고 있다.

권 변호사는 "정부는 올해 4월 위법·불합리한 단체협약 시정지도 지침을 내리면서 인사·경영권 부문 단협을 개정하라고 지도하고 있다"며 "적법한 목적을 갖고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행정지도가 노사자율성을 축소하고 대법원 판례를 무시한 채 진행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잘못된 행정지침과 행정지도는 노사관계를 왜곡하고 사회적 낭비로 이어진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사법적 심사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우찬 연세대 법학연구원 박사는 "행정지침은 법률이 아닌 일종의 해석이라서 책임을 지울 수 없는 반면 현실적 영향력은 지대하다"며 "합리적 해석을 위한 연구나 판례가 축적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장 박사는 "행정지침이 상위법의 취지를 왜곡하지 않고 현장에 명확하게 적용돼야 한다"며 복수노조 매뉴얼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헌법재판소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창구단일화가 단체교섭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자율교섭과 교섭단위 분리제도·공정대표의무를 보완책으로 제시했다"며 "노동부가 이를 지침에 반영해 기본권 제한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단일화 절차만 구체적으로 기술했을 뿐 보완대책은 매우 한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도 지침 제정사유 모르는 경우 많아"

토론자로 참석한 한인상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노동부 행정지침에 대한 명확한 법적 검토와 정보공유, 정부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견제·감시기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조사관은 "노동부 관계자도 노동부가 하려는 게 행정처분인지 행정지도를 위한 내부기준 정립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 주장대로 정말 노사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면 그 필요성과 효과, 법적 성격을 명확히 검토하고 이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권창준 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노동부의 지침 제정 취지는 법원 판례와 경향성을 안내해 주고 불투명성을 해소하자는 것"이라며 "지침 도입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쪽으로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여연심 변호사(법무법인 지평)가 토론자로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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