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굴욕을 당하고야 말았다. 22일 박근혜 대통령은 고용노동부 장관·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한국경총 회장·한국노총 위원장을 불러 '17년 만에 노동개혁 대타협'을 이끌어 낸 노사정 대표들을 격려했다. 사실 ‘노사정 합의’로 노동법 개정을 이끌어 낸 전례는 98년 2월의 노사정 대타협, 2005년 11월의 ‘비정규직 보호법안’에 대한 한국노총의 최종안 발표, 2007년 7월 노동부·경총·한국노총의 ‘비정규법의 안착을 위한 합의문’ 발표, 2009년 12월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타임오프제 노사정 합의 등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스스로, 그렇게도 차별화하고 싶어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노사정 대타협을 전범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은 무엇을 말하는가.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참여해 ‘노사관계 법·제도개선의 7대 기본방향’에 합의했다. 당시 합의된 추진방향에는 정리해고와 관련해 “고용제도는 새로운 고용관행의 존중과 함께 이로 인한 고용불안이 야기되지 않도록 근로자의 능력개발 등 합리적인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쓰고 있다. 이후 노개위 소위원회에서 공익안에 반발해 민주노총이 한 달여간 불참했다 다시 복귀하는 등 진통을 겪다가, 결국 정부로 공이 넘어갔다. 1996년 12월26일 정부는 노동법 개악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가 사상 초유의 총파업 투쟁에 부딪히게 된다. 이후 1997년 3월 여·야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근로기준법에는 경영상 해고를 도입하되 시행을 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그러나 1997년말 발발한 IMF 외환위기 가운데 출범한 김대중 당선자의 ‘비상경제대책위원회’는 “정리해고 문제도 노사정위에서 논의 결정한 뒤 처리하겠다”는 약속을 바탕으로 1998년 1월15일 노사정위를 발족시켰고, 닷새 뒤인 1월20일 '노사정 고통분담 선언문'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2월6일 “고용조정과 근로자파견제를 즉각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이 타결됐다.
17년 전 민주노총의 지그재그 행보를 복기해 오늘 한국노총의 야합의 책임을 덜어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논의 자체를 거부하면 위기의 책임을 노동조합이 뒤집어쓰게 된다”거나 “논의에 참여해 최악의 안이 관철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거나 “타협을 통해 일방적 시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식의 주장이 노조운동으로 하여금 자기파괴적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비극으로 반복돼 왔다는 사실이다.
1998년 대타협 당시 어차피 판례로 인정되고 있는 정리해고제를 입법으로 요건을 명확히 했다는 식의 사고나, 전교조 합법화 약속 등 일정한 성과도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대타협 이후 정리해고제는 입법으로 정당성을 확보하며 노동의 저지선을 무너뜨렸고, 약속했던 노동기본권 보장은 번번이 깨지고 있다. 최근의 ‘대타협’을 통해 한국노총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않고 노사정 협의를 하도록 만든 것'을 성과라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정부·여당의 노동법 개악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23일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벌였다. 주체적 사정에 따라 앞으로 투쟁 방식은 총파업을 포함해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로부터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은 현재의 역관계에서는 ‘대타협’을 통해서는 저지마저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사용자 맘대로 해고’와 ‘평생 비정규직화’에 맞서는 투쟁을 사업장에서부터 전국적 수준으로 흔들림 없이, 중단 없이 조직화해 내는 길만이 주체를 강화하고 동요하는 세력들을 견인하며 불리한 역관계를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 방책이다. 민주노총의 투쟁은 신화 속 뱃사람들을 난파시킨 세이렌(Seiren)의 노래에 홀리지 않고 가야 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