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삼성전자서비스 노사가 기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결성된 지 1년 만이고, 그사이 두 명의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바치고 지회의 주요 간부들이 구속됐다.
이렇게 큰 희생을 치르면서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또 쟁취한 것은 무엇인가. 이번에 노사가 맺은 기준 단체협약의 주요 내용을 보면 △생때같은 젊은 노동자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간 비인간적 노무관리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협력업체 폐업에 따른 해고자의 고용승계 △월 120만원의 기본급 보장 △노조활동 보장 등이다. 앞의 두 가지는 원·하청 사측이 저지른 불법·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회복 차원이고, 뒤의 두 가지는 헌법으로 선언하고 있는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에 관한 것이다.
이처럼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것을 보장하는 실질적 당사자가 삼성전자서비스라는 사실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의 임금 수준을 결정한 것도 삼성전자서비스가 정한 ‘수수료’이고, 각종 매뉴얼과 모니터링·해피콜제도를 통해 노동자들의 감정까지 쥐어짜는 노무관리를 하도록 만든 것도 삼성전자서비스이며, 지회를 탄압하기 위해 서비스센터의 관할구역 조정과 협력업체 폐업을 주도한 것도 삼성전자서비스다.
이번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투쟁을 통해 기형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를 교섭석상으로 이끌어 냈다. 비록 삼성전자서비스가 기준 단체협약의 서명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삼성전자서비스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이 조인식에 참석해 증인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빠진 것이 있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버려 가며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되찾을 동안 고용노동부와 국회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설사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지배력을 가지는 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대법원이 확인한 것이 2010년의 일이다. 지난해 9월 노동부는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기획근로감독에서 불법파견 사용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에 서비스업무 처리지침을 시달하고 각종 ‘경영지도’를 한 사실은 인정했다. 적어도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지배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삼성전자서비스가 업체 폐업 등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을 때, 그리고 젊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바쳐 가며 삼성전자서비스의 책임을 물을 때 손을 놓고만 있었다.
야권의 직무유기는 더 심각하다. 노조법의 사용자 정의를 확대함으로써 실제 노동조건과 노사관계에 지배력 또는 영향력을 미치는 자를 사용자에 포함시키는 노조법 개정안은 2012년 옛 민주당 등 야권이 발의한 바 있다.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은 야권이 손을 놓은 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심지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옛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는 등 야권이 다수였음에도 상임위원회 처리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에 뭔가 ‘새로운’ 내용을 입법하라고 주문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대법원이 확인한 법리라도 노조법에 명문화하라는 것이다. 노동기본권이 침해당할 때마다 노동자가 법원으로 갈 수도 없는 일이고, 노사관계의 특성상 법원에서 부당노동행위의 시정을 명할 때는 이미 노조와 노동자는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노동자가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이 선언한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는가. 2000년대 이후 적지 않은 간접고용 노조들이 직·간접적으로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도록 만들었음에도 언제까지 시시포스(Sisyphos)의 노동을 되풀이해야만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사용자의 기본권 침해를 조장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야권이 단지 ‘알리바이용’으로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 아니라면, 이제부터라도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