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안전’은 기업과 정부의 공적인 책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몰아닥치면서 ‘안전을 위한 비용’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그 결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와 기업은 안전을 위한 비용을 줄이기 시작했고, 그 위험은 고스란히 노동자와 국민이 떠안았다.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 이번 세월호 참사였다. 정부는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들을 ‘기업에 대한 규제’라고 부르며 해체했고, 청해진해운은 안전의 원칙을 저버리고 이윤을 위해 과하게 짐을 실었다. 해난사고로부터 국민의 목숨을 지켜야 할 해경은 안전업무를 ‘언딘’이라는 업체로 외주화했다.
우리는 정말로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들은 발화점이 낮은 기름을 가득 싣고 있다. 화재가 나면 정말로 위험하기 때문에 인천공항에서도 주기적으로 소방훈련을 한다.
그런데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현재 인천국제공항에서 항공기와 부대시설 화재사고 등에 대한 1차 초기진압을 해야 할 소방출동대기자는 60명 수준에 불과하다. 엄청난 규모의 부지와 공항 내 123개에 달하는 대상물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이 3조2교대로 일하는 180명뿐인 것이다. 공항과 승객 규모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수치다. 해당 노동자들에게는 소방을 위한 자율적인 권한도 주어져 있지 않다. 용역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세계 1위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인천공항이지만 비정규직을 고용함으로써 매출을 늘리고 안전에 대한 책임은 용역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KTX는 무엇보다 승객의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 고속열차에는 기관사를 포함해 6명의 승무원이 타지만 승객안전을 담당하는 노동자는 열차팀장 단 한 명이다. 그 외의 승무원들은 코레일관광개발이라는 자회사 노동자들로서 승객안전 업무를 담당할 권한이 없는 비정규직이다. 철도공사는 이 노동자들이 ‘안전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승무원으로서의 비상대비 훈련도 시키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안전업무를 하게 되면 중요업무가 되므로 외주화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고, 정규직 열차팀장과 함께 안전업무를 하게 되므로 불법파견이 인정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승무원을 간접고용으로 유지하기 위해 철도공사는 승객들의 안전은 버렸다.
철도공사는 열차안전의 필수업무인 정비업무도 외주화했다. 철도 외주회사인 코레일테크는 90%가 비정규직이다. 간접고용에 또다시 용역으로 일하다 보니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런 나쁜 노동환경 때문에 전차선분야의 기술자를 구하는 것은 어렵고 숙련공들이 계속 이직을 하자, 코레일테크는 기술자의 자격요건을 완화해 달라고 철도공사에 요청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외주화와 자회사 설립을 ‘비용절감’이라고 선전하겠지만, 결국은 안전을 위한 비용을 줄이고 위험을 철도 승객들에게 전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안전이 중요한 대형병원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전기 및 시설과 설비를 외주화했다. 외주를 받은 업체는 노조탄압을 위해 조합원들을 무원칙하게 순환배치하면서 2009년 태풍 곰파스로 인한 전기공급 중단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올해 서울대병원은 비용을 절감한다면서 도급금액을 낮췄고 새로 들어온 용역업체는 14명의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 결국 수술실에 불이 나거나 병동에 누수가 발생했다. 서울대병원은 인력부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이런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것이 대응인력의 부족을 보여 주는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들도 열심히 일한다. KTX 승무원들은 사고가 나면 몸을 던져 승객들의 안전을 지킬 것이고, 인천공항 소방대도 몸을 돌보지 않고 화재진화에 나설 것이다. 정비노동자도 힘들여 밤샘작업을 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안전의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고 인력이 부족하기에 그 위험을 지금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만으로는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외주화·용역화 등은 결코 비용을 절감한 것이 아니다. 안전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서 임금을 낮추고 직무권리를 빼앗은 것이며, 그 위험 비용을 고스란히 승객이나 환자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그러니 ‘위험의 외주화’에 대해 결코 묵인해서는 안 된다. 안전의 비용은 정부와 기업이 담당하라고 요구해야 하며,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안전업무를 용역화하거나 외주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세월호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비용절감’이라는 술수에 속지 말고, 노동자와 국민이 더 이상 위험을 떠안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