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지난 13일 국내 재벌 서열 3·4위인 SK와 LG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보고대회를 치렀다. 대표적인 통신업체인 SKT의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고객서비스센터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이다.

보고대회 열기가 뜨거워 내내 울컥하는 심경으로 힘차게 팔뚝질도 하고 구호도 따라 외쳤다. 70~80년대 민주노조운동 초창기의 분위기가 이랬으리라 싶을 만큼 노조로 가입한 조합원들의 분노와 열망이 전율을 불러일으키면서 온몸으로 엄습해 왔다.

비정규 노동자에게 노조는 희망의 무기였고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특효약이었다. 노예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절절한 갈망이 대회장을 용광로처럼 달궜다. 명색이 일류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의 근로조건이 어떠했기에 이리 사무치도록 절박한가.

하루 10시간이 넘는 기본 근무시간에 △주 6일 이상 근무 △휴일근무 강제 △시간외근로수당 미지급 △4대 보험 미가입에 업무 중 사고처리 자기부담 △각종 업무비용 부당전가 △근로계약서 미작성. 대기업 소속의 고객서비스센터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열악한 근무조건이 사방에 널려 있어 아무 데나 찔러도 불법이라고 할 정도다.

심지어 퇴직금과 4대 보험료 사용자 부담분을 노동자 급여에서 공제하는가 하면, 각종 명목의 차감으로 상당한 금액의 급여를 뺏어 간다. 출근시 2회 이상 지각하면 매회 1만원씩 떼 가고, TV 수신품질 떨어진다고 3만원 떼 가고, 고객민원 들어왔다고 10만원 떼 가고, 고객신청서 수거 못했다고 10만원 넘게 떼 가고, 고객이 해지한 장비 못 찾아왔다고 10만원 떼 가고, 개통한 지 얼마 안 돼 장애 발생했다고 10만원 떼 간다. 눈 뻔히 뜨고 이리 떼이니 정말 도적이 따로 없다. 거대 통신회사들이 어마어마한 순익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 숨어 있다.

헌법과 노동관계법이 통신 대기업을 비롯한 재벌그룹 앞에서 내팽개쳐진 채 외면당해 온 셈이다. 노동인권은 거추장스러운 치장일 뿐이다. 최소한 준법적 수준에서라도 보장돼야 할 노동자들의 권익과 처우는 안중에도 없이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을 희생양 삼아 천문학적 이익을 갈취해 온 한국 자본주의 슈퍼갑들의 천박한 민낯이 볼수록 충격적이다.

이런 참담하고 열악한 근로조건을 오랜 세월 감내해 온 비정규 노동자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이르러 노조 결성으로 폭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재벌 대기업에서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의 봉기는 한국 사회의 핵심 노동문제의 근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개가 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케이블방송 씨앤앰·티브로드·인천국제공항공사·다산콜센터·대학 청소노동자·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에 이르기까지 최근 강도 높은 투쟁을 벌였거나 벌이고 있는 대부분의 노동현장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고 있는 사업장들이다.

2014년 현재 한국 사회 노동시장은 ‘가짜사장’ 전성시대다. 삼성·현대·SK·LG를 필두로 한 거대 재벌 대기업군에서부터 지방 공단의 중소영세 공장에까지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이 판치고 있다. 법적 책임을 노골적이고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중간착취를 통해 자기 배를 불리는 가장 나쁜 자본주의의 폐해가 사회적 책무가 가장 큰 대기업들에서부터 확대 재생산돼 왔다. 그나마 공공부문은 상시지속 업무를 기준으로 무기계약직 수준 이상의 정규직화가 대세로 확산되고 있는 반면, 민간부문은 오히려 역주행으로 치달아 업종과 규모를 막론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비롯한 나쁜 일자리가 양산돼 왔다.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경제주체인 재벌대기업의 실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해 온 비정상의 정상화는 여기에서부터 이뤄져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그간 눈물겹게 일하며 고통 받아 온 비정규 노동자들이 헌법에서 정한 노동 3권을 자신의 당연한 권리로 받아안아 당당한 국민으로 거듭나는 것이 가장 긴급한 정상화 아닌가. 그리고 재벌그룹 오너들을 위시한 사용자들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더 이상 불법을 자행하지 말고 준법경영을 하는 것이 정상화의 출발이다. 천민자본주의를 통렬하게 질타하며 죽비처럼 내려치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의 봉기가 심상찮은 봄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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