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보통 사람들이 흔히 접하게 되는 특수고용 노동자 중 하나가 택배기사일 것이다. 상품을 주문하건 부피가 큰 물건을 보내야 할 일이 생기건 간에 ‘현관에서 현관으로’ 배송을 해 주는 택배서비스는 어느덧 필수서비스가 돼 버렸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체국·CJ대한통운·한진·현대·옐로우캡 등 대기업 택배회사의 브랜드를 신뢰하고 그 택배회사의 로고가 붙은 차량을 운전하며 그 택배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배송을 담당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나의 배송이 차질 없이 이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택배기사들이 택배회사가 고용한 직원이 아니라 배송건당 수수료를 받는 개인사업자로 돼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현관에서 현관으로 배송을 담당하는 택배기사 대부분은 택배회사의 지역별 영업소 또는 대리점과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자신이 구입한 차량을 활용해 배송을 담당하는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택배기사는 배송건수당 수수료를 받고 차량운행에 소요되는 비용을 차주 겸 기사가 부담하는 개인사업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해도, 운송시간과 운송구간을 회사가 지정하고 택배의 수집·집하부터 배송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독립적 사업자로서 독자적 이윤 추구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종속적 노동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택배회사는 ‘갑’의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을’인 택배기사들에게 각종 비용을 부당하게 전가한다. 3월 말부터 파업이 확산되고 있는 CJ대한통운도 그렇다. 대한통운을 인수한 CJ가 수수료의 일방적 삭감, 분실물 책임 전가, 보증인 강제 제도 등 부당한 대우를 한것이 파업 돌입의 1차적 요인이 됐다. 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현재 택배기사는 1일 평균 8.0시간의 배송작업, 3.7시간의 배송외 업무 등 하루 평균 11.8시간을 일하고 주 6일 근무한다. 정해진 휴게시간이나 식사시간도 없이 1주일에 7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2011년 현재 월평균 순수입은 213만원에 머물러 있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법정 최저임금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게다가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고용·산재보험 등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운전대를 잡으면 신용불량자요, 운전대를 놓으면 실업자”라는 화물운송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한숨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택배기사에게 산재보험이 특례적용되고 있긴 하지만, 택배기사 본인이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해야 하고 임의탈퇴(적용제외신청)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 혜택은 미미한 수준이다.

2009년 4월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 박종태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유도 대한통운이 화물연대 조합원인 택배기사들에게 가한 집단해고(계약해지)와 일방적 수수료 삭감, 노사합의 파기 등 부당한 대우 때문이었다. 건당 수수료를 30원 인상하기로 한 노사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택배기사의 업무가 아닌 분류작업을 강제하고, 이에 항의해 단 하루 분류작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화물연대 소속 택배기사 78명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계약해지를 통보한 대한통운의 횡포와 이를 비호하는 공권력의 편향에 맞서 박종태 열사의 항거와 파업이 벌어진 것이다.

2009년 4월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의 항거나 2013년 5월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의 전국적 파업은 모두 개인사업자라는 명목으로 노동자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갑’인 사용자의 부당한 요구를 감내해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저항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본이 강요한 개인사업자라는 허울은 이들에게 본래 업무가 아닌 택배회사의 업무도 무급으로 해야 하고, 보수(수수료)의 일방적 삭감도 감내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상조회를 비롯한) 어떠한 단체라도 참가하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노예계약서에 서명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의 투쟁은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는 길은 단결하고 함께 싸우는 방법 외에 있을 수 없다는 상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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