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 연대회의 교선팀장 | ||
그렇다면 산재사고의 책임은 당연히 작업지시를 한 건설업체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건설업체는 특수고용 노동자인 굴삭기 기사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결국 굴삭기 기사는 숨진 노동자에게 지급된 보험금의 구상권까지 청구당하게 됐다.
한국은 3시간마다 노동자 1명꼴로 죽고 5분마다 1명꼴로 다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사망 1위가 한국이다. 지난해에도 2천114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9만3천292명의 노동자가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25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재해는 포함돼 있지 않다. 특히 건설업은 매년 600~70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숨지는 것으로 집계된다. 레미콘·덤프 트럭·굴삭기·펌프카 등 건설기계 노동자의 대부분은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주’라는 이유로 노동재해의 실태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특수고용형태는 건설업만이 아니라 제조업·서비스업·운수업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대병원에서 에이즈 환자를 간병하던 간병노동자가 환자가 사용한 주삿바늘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간병노동자는 응급실과 병원 내 안전보건관리실로 갔지만 병원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즉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후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진료비·검사비·약값 등 모든 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만 했다.
이처럼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법·사회보장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생명과 건강마저 차별당하고 있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레미콘기사·학습지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보험모집인에 한해서, 그것도 노동자 본인이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는 것을 조건으로 산재보험을 특례적용하고 있다. 이마저도 노동자가 적용제외 신청을 하면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어, 산재보험 적용을 꺼리는 사업주가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적용제외 신청을 하도록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계약서와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함께 들이미는 사업주 앞에서, 그것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산재보험 포기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현재 4개 특수고용 직군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률은 9%에 불과하다.
더욱이 특수고용 노동자 본인이 산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을 뿐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산재사고의 책임까지도 떠안아야 하는 실정이다. 앞의 사례에서 든 건설기계 노동자 외에도 화물운송노동자·퀵서비스기사도 업무를 수행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를 당한 다른 사람에게 지급하는 보험급여 비용까지 떠안고 있다. 사업주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위장 자영인’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자신은 물론 다른 노동자의 산재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겨 사용자뿐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보험사도 부당하게 이득을 보는 셈이다.
몇몇 특수고용 직군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들과 동등하게 산재보험의 전면적용을 받도록 하는 법 개정이 시급히 필요하다.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를 지금처럼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자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타인을 고용하지 않고 스스로 노무를 제공하고 다른 사업주의 업무를 위해 일하는 모든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괄하도록 법을 개정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약의 형식이 아니다. 노동자의 노무제공을 통해 이윤을 얻는 자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노동관계법상 원칙의 재확인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