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고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 정부이행계획 당정발표 자리에서 우원식 발전산업 안전강화·고용안정TF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발전산업에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관리제도를 적용하고 발전소 연료·환경설비 운전 비정규 노동자들의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다. 경상정비 업무를 하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처우개선에 초점을 맞춘다. 발전사가 연료·환경설비 운전업무를 직접 하고 경상정비 업무는 한전KPS로 재공영화하라는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권고안 핵심내용을 비껴간 대책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여당 김용균 1주기 즈음해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발표=당정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당정TF 회의를 열어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우원식·강병원·송옥주·최인호·홍의락·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차영환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구윤철 기획재정부 2차관·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 등 관련부처 관계자들이 총출동했다. 조성재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도 발표를 지켜봤다.

김용균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8월19일 내놓은 22개 권고안에 대해 정부가 이행계획을 답변하는 성격의 자리로 마련됐다. 그런데 당정 안전강화 방안은 올해 2월5일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후속대책 당정 발표문'과 같은날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발전부문 근로자 처우 및 작업현장 안전강화 방안'을 보강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당정은 우선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발전산업을 원·하청 산재 통합관리제도 적용대상에 넣는다. 협력사에서 발생한 산재를 발전사의 산재 현황에 포함한다. 지금은 500명 이상 제조업·철도운송업·도시철도운송업에 적용하고 있다. 발전 5사 전체가 산재 통계와 유해위험 정보를 공유·관리할 수 있는 통합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내년 4분기에 시행한다.

원·하청 노사가 가동하는 안전근로협의체는 내실을 기한다. 협의체에서 논의한 사항을 원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의결해 집행력을 높인다. 김용균 특조위는 산업안전보건위에 하청 노사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발전소 간접고용 유지로 가닥=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노동자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 여부를 반영하기로 한 점은 진일보한 조치다. 발전사·협력사 노동자 제안제도 운영 성과를 경영평가 지표에 반영한다. 노동자가 작업현장 개선을 요청하고 발전사가 이를 수용하면 가점을 하는 식이다. 산재를 은폐했다가 적발되면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기관 평가등급을 낮춘다.

발전사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대책은 2월5일 당정 발표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당정은 김용균 노동자가 일했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는 공공기관으로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경상정비의 경우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 근로자의 처우 및 정규직화 여부 등 고용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도 당정은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는 하나의 공공기관을 만들어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경상정비는 발전사와 정비업체(하청업체) 계약기간 연장과 낙찰제 변경 등을 통해 처우와 고용안정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전력·자유총연맹이 많은 지분을 가진 한전산업개발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연료·환경설비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경상정비는 지금과 같이 민간위탁 비정규직을 유지한다. 다만 당정은 경상정비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해 적정노무비 지급방안을 추진한다. 내년부터 2년간 적정노무비 지급 시범사업을 하고, 결과를 토대로 2022년 적정임금제를 도입한다. 발전사는 시범기간에 경상정비 공사금액의 5%만큼 노무비가 추가로 지급되도록 낙찰률을 조정한다. 하청업체가 노무비를 착복하지 못하도록 별도 전용계좌를 활용한다. 당정은 고용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발전사와 하청업체의 3년 계약기간을 최대 9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이 놓쳤거나 배제한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전보건체계를 구축·강화하고 노무비 착복을 근절한다는 점에서 당정이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안 일부를 수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험의 외주화 금지"라는 핵심에서 한참 벗어났다. 김지형 전 김용균 특조위 위원장은 8월19일 권고안 발표 당시 "위험은 외주화됐을 뿐만 아니라 외주화로 인해 위험이 더욱 확대되는 방향으로 구조화돼 있다"고 일갈했다.

김용균 특조위가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와 경상정비 업무의 민영화·외주화 철회를 정부에 권고한 이유다. 발전소를 발전 5사가 나눠 운영하고, 발전소 가동을 하청·재하청 업체들이 담당하는 구조를 개선하라고 주문한 배경이다.

당정은 이와 관련해 "특조위 권고는 그간의 발전산업 경쟁체제 축소로 기술경쟁력·경영효율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고, 민간업체의 파산과 민사소송 등 분쟁과 갈등 초래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전력산업 구조개편 논의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다양한 찬반 의견이 있는 사안으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소지가 상당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외주화'가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영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이라는 얘기다. 김용균 특조위 위원으로 활동했던 권영국 변호사(정의당 노동인권안전특별위원회 위원장)는 "발전산업 민영화·외주화 정책이 위험의 외주화를 적극적으로 조장했으니까 이를 해소하려면 간접고용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특조위 권고의 핵심"이라며 "발전소 현장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제안했던 권고안을 정부가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 공공운수노조 관계자와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이 12일 오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 밖에서 당정의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 이행방안 발표가 일방적이라며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부 대책은 용균이 우롱한 졸속정책"

고 김용균 노동자의 동료들은 12일 당정 발표에 불만을 쏟아 냈다. 김용균 특별조사위원회의 핵심 권고가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 옛 특별조사위원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김용균 노동자 1주기를 즈음해 나온 정부 대책이 되레 사태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는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고 기업과 자본에 굴복한 대책을 내놨다"며 "간접고용을 유지하고 노동자를 갈아 석탄을 때우겠다는 대책을 수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와 같이 일했던 이준석 지부 태안지회장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약속과 달리 정부는 간접고용 해결에 대한 의지를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며 "오늘 기업들을 위한 졸속정책을 발표하면서 용균이를 우롱했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당정 발표 수용을 거부하고 투쟁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관계자는 "안전근로협의체에서 안전방안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협의체의 경우 상반기에는 A노조, 하반기에는 B노조가 참여하는 등 수많은 하청업체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엉망진창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며 "회의 운영 편리성만 강조하고 노동자 의견을 꼼꼼히 듣지 않고서는 현장을 개선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국무총리실은 '발전산업 안전강화TF'를 통해 당정 발표 이행상황을 총괄하고 분기마다 점검할 예정이다. 김용균 특조위 위원 5명을 TF에 참여시킬 방침이다. 그러나 특조위원의 TF 참여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 특조위원은 "국무총리실 TF는 김용균 특조위 권고 이행을 점검할 게 아니라 핵심 내용이 빠진 당정 발표 이행을 점검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당정이 특조위 활동을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든 대책을 발표해 상실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TF 점검논의 대상과 범위를 당정 발표 내용에 국한한다면 옛 특조위원들이 참여할 이유는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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