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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 중대재해 조사위 권고안 비웃는 정부] "이행하겠다" 말잔치에 가려진 '암울한 노동현장'100여개 시민·사회단체 참여한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위' 토론회 … "통합적 이행점검위원회 구성" 제안
▲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의 중대재해사업장 조사위 권고와 이행실태 점검 토론회에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여는 말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기획추진단·국민참여조사위원회·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진상대책위원회 이름이 붙은 4개 위원회가 잇따라 꾸려졌다. 이들 조직은 수개월의 조사 끝에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권고안을 내놨다.

그러나 권고안 발표 1년이 지나도록 현장은 바뀐 게 없다. "이행하겠다"는 약속만 허공을 떠돈다. 휴지 조각·부도어음이 따로 없다. 기획추진단·국민참여조사위·특별노동안전조사위·진상대책위. 이름만 그럴듯한 기구를 꾸려 노동계 투쟁과 사회적 공분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사단법인 김용균재단과 민주노총을 포함한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위원회'는 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문재인 정부의 중대재해사업장 조사위원회 권고와 이행실태 점검 토론회'를 열어 "각종 조사위 권고사항이 캐비닛 안에 쌓여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용균 특별조사위 22개 권고안 중 특진마스크 지급 외엔 '감감무소식'=지난해 12월 태안 화력발전소 청년노동자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정부는 이듬해 2월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특별조사위는 8월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2인1조를 위한 필요인력 충원 등 22개 권고안을 내놓았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청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도 주문했다.

권고안은 얼마나 이행됐을까. 추모위에 따르면 특진마스크 지급을 제외하면 제대로 이행된 게 없다. 김용균 특별조사위에 참여했던 전주희 조사위원은 "고인의 죽음은 고용형태와 얽혀 있는 죽음이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권고했는데 정부는 '안전대책은 권고안대로 할 수 있지만 직접고용은 어렵다'거나 '임금 착복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데 직접고용은 어렵다'는 식으로 권고안을 선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균씨 사고 직후 정부가 긴급조치로 '위험업무시 2인1조 작업'을 발표했지만 인력충원은 일부에서만 이뤄졌다. 현장은 여전히 인력부족에 허덕인다. 특별조사위는 490명을 권고했는데, 실제 충원은 170명에 그쳤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유해화학물질 관리방안 개선과 관련해 특진마스크를 지급한 것 외에는 변한 게 없다"며 "그마저 기존에 사용하던 1·2급 방진마스크를 다 쓴 뒤에야 특진마스크로 교체해 주는 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간사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약속한 특별조사위 권고안만 이행해도 발전소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온데간데없는 우정사업본부 정규직 인력충원 약속=다른 조사위 사정도 비슷하다. 정부는 집배원 과로사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떠오르자 2017년 8월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집배원노동조건개선기획추진단'을 만들었다.

기획추진단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745시간이다. 한국 임금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2천52시간)보다 693시간 길다. 하루 8시간 노동시간으로 따지면 평균 87일을 더 일한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하면 평균 123일, 4개월을 추가로 일했다. 집배원 건강상태는 형편없었다. 높은 노동강도와 스트레스에 따라 뇌심혈관계질환에 걸릴 위험이 교육공무원에 비해 평균 1.23~2.95배 높았다. 보수성·폐쇄성이 강한 조직문화는 스트레스를 가중했다.

기획추진단은 지난해 10월 △정규직 집배원 순차적 증원 △토요근무 폐지를 위한 사회적 협약 △안전보건관리시스템 구축 △집배부하량산출시스템 개선 △조직문화 혁신 △업무완화를 위한 제도개편 △재정 확보를 골자로 한 7개 권고안을 제시했다.

우정사업본부는 2020년까지 집배원 2천명을 증원하고, 토요일 배달업무를 중단하는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통상우편물 감소로 우편사업 적자 폭이 커지자 태도를 바꿨다. 토요배달 유지 입장을 고수하면서 인력충원 대신 인력재배치로 방향을 틀었다. 정규직 인력을 늘리는 대신 '와사비앱' 같은 배달대행서비스 업체와 위탁계약을 맺고 노무관리를 강화했다.

허소연 집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심지어 우정사업본부는 CJ대한통운 같은 거대 유통업체와 단가경쟁을 하고, 단가를 떨어뜨려 확보한 물량을 집배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사용자(우정사업본부)가 권고안을 지킬 의지가 없다면 정부가 이행을 강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단계 하도급 금지" 권고 비웃는 조선소 현장=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 권고안 역시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 2017년 5월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 참사가 벌어졌다. 사상자만 31명. 같은해 8월 STX조선해양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민간전문가 중심으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위가 9개월 만에 발표한 조선업 중대재해 근본 원인은 다단계 재하도급, '위험의 외주화'였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가 난 마틴링거 모듈에는 1천623명이 일하고 있었다. 원청인 삼성중공업 정규직은 159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1천464명은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하청노동자 중 근속 6개월 미만이 전체 인원의 절반이 넘는 53.6%를 차지했다. 1개월 미만도 13.5%나 됐다. STX조선해양 폭발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들은 모두 재하도급업체 소속이었다. 국민참여조사위에 함께한 박종식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1차 하청보다는 2~3차 하청으로 갈수록 숙련수준이 낮고 산업안전관리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국민참여조사위는 다단계 하도급의 원칙적 금지를 권고했다. 정부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복마전 같은 다단계 하청구조는 지금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선하청조직사업부장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같은 원청은 안전을 위해 1년에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쓰지만 그 영향력이 다단계 하도급 밑바닥까지 미치지 못한다"며 "다단계 하도급이 허용되는 한 조선소들이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도 하청노동자들은 죽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고안 이행하랬더니 진정성 없는 이벤트만=올해 1월 이른바 태움에 시달리던 고 서지윤 간호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대책위는 9월 서지윤 간호사 사망 관련 책임자 징계를 포함한 34개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 발표 3개월이 지난 이달 2일 서울의료원은 혁신방안을 내놓았다. 대책위가 권고한 핵심대책은 반영되지 않았다. 김민기 서울의료원장이 사임했을 뿐이다. 한인임 진상대책위원은 "조직구조·인사관리·인력운영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더니, 되레 인사·노무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인사팀과 노사협력팀을 신설했다"고 비판했다.

김경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새서울의료원분회장은 "의료원측이 진정성 없는 이벤트만 하고 있다"며 "나이트 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간호사들에게 힐링데이라며 음악감상·행복강의에 참석하라는 식인데, 이게 제대로 된 힐링이냐"고 반문했다.

◇"통합적 이행점검위원회 만들자"=김용균 특별조사위원으로 활동한 권영국 변호사는 "지금까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돈으로 때우거나 진상규명 요구 목소리 자체를 원천봉쇄해 버렸다면,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적어도 사고원인을 규명하는 단계까지 진전되기는 했다"면서도 "조사위를 만들어 놓고도 권고안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조사위는 뭐하러 만들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정책 결정권한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주희 김용균 특별조사위 조사위원은 "권고안 내용이 당장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해법을 찾겠다는 입장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놓아야 한다"며 "모든 권고안에 대한 감시·점검이 가능하도록 통합적 이행점검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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