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지방노동청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이부진 당시 삼성에버랜드 사장을 포함한 그룹 수뇌부를 무혐의 처리했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였다.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2013년 10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2012 S그룹 노사전략’ 문건과 관련한 수사를 한 뒤 서울중앙지검에 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민변·참여연대는 당시 “삼성그룹이 에버랜드 노동자들이 가입한 금속노조 삼성지회를 와해하기 위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실행하면서 간부 4명을 해고·정직·감급 조치했다”며 삼성그룹 관계자들을 노동부에 고소·고발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최지성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을 포함한 35명이 가해자였다.

그런데 서울지방노동청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피의자는 단 4명에 그쳤다. 이 회장과 최 전 실장, 이부진 당시 삼성에버랜드 사장, 김봉영 삼성에버랜드 대표이사 같은 그룹 수뇌부는 모두 법망을 빠져나갔다. 삼성에버랜드 전무·상무 각 1명, 차장 2명이 기소의견으로 송치돼 벌금형을 받은 것이 전부다.

<매일노동뉴스>가 22일 입수한 서울노동청 수사보고서를 보면 노동부와 검찰이 인정한 이들의 혐의는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활용한 노조와해가 아니었다. 반노조 교육을 실시하거나 노조의 소식지 배포를 방해하고, 성명서 발표·언론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노조간부를 징계한 혐의만 인정했다.

노조와해 지시·문건작성 의심자는 ‘무혐의’
실행에 옮긴 일부 실무자급만 벌금형


서울노동청과 검찰 수사의 쟁점은 문건을 누가, 누구의 지시로 작성했는지였다. 노동계는 이건희 회장과 최지성 당시 실장이 이부진 삼성에버랜드 사장·김봉영 삼성에버랜드 대표이사·최주현 삼성에버랜드 전 대표이사에게 문건작성을 지시하거나 문건 내용대로 노조와해를 실행에 옮길 것을 지시한 것으로 봤다. 그리고 나머지 30명의 피의자들이 실제 행동에 옮겼다고 주장했다.

서울노동청은 노동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노동청은 수사보고서에서 “S그룹 문건이 미래전략실 등 삼성그룹 내에서 작성됐다는 사실과 동 문건이 (2011년 12월에 열린) 삼성그룹 CEO 세미나에서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며 이 회장과 최 실장의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삼성에버랜드 수장 3명의 혐의도 “당연히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런데 결론을 내기까지 과정을 보면 논리가 매끄럽지 못했다.

문건작성 입장 바꾸기에
노동청은 “인정” 법원은 “못 믿어”


삼성그룹은 2013년 10월 문건이 공개되자 언론인터뷰와 공식블로그에서 문건작성 사실을 인정했다가 일주일 뒤 번복했다. 애초 삼성인력개발원 관계자가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에게 2011년 12월 CEO 세미나에서 사용할 자료작성을 지시했다가 나중에 중단시켰고, 작성 중단된 파일이 외부로 유출돼 누군가가 수정했다는 것이 삼성쪽 주장이었다.

서울노동청은 이에 대해 “(처음에) 순순히 작성사실을 인정한 것은 감추거나 조작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일주일 만에 문건작성 사실을 부인한 것에 대해서는 “최초 확인시 기자로부터 넘겨받은 6장만으로는 전체 114장의 S그룹 문건 작성 여부에 대해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삼성쪽 말 바꾸기를 두둔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삼성에버랜드에서 해고된 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의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2014년 1월 서울노동청과 정반대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그룹이 처음에는 문건이 삼성그룹에서 작성한 것을 시인한 점, 문건에는 삼성그룹 내부 고위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자료가 포함돼 있는 점, 노조설립에 관해 진행된 사실관계가 문건 내용과 일치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문건은 삼성그룹에 의해 작성된 사실이 추인된다”고 판시했다.

서울고법도 2015년 6월 2심 판결에서 “삼성그룹이 밝힌 입장 번복 근거들은 삼성그룹이 문건을 접한 초기부터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던 점과 입장 번복시기 등에 비춰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삼성 주장대로 문건작성을 중단했다가 외부로 유출된 것이 사실이라면 처음에 문건작성을 인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노동계·법조계 23일 이건희·이부진 고소·고발

서울노동청은 결국 문건작성을 지시하거나 작성할 위치에 있는 피의자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문건대로 노조와해를 실행하는 위치에 있는 실무자들,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혐의를 인정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서울노동청이 인정한 것은 삼성에버랜드 전무·상무·차장급 관리자가 회사 교육 중 노조혐오 발언을 하고 삼성지회의 유인물 배포를 방해한 사실, 언론인터뷰와 성명서에서 노조 의견을 밝혔다는 이유로 노조간부를 징계한 혐의뿐이다.

노조설립 준비자들 회유·협박·폭행, 친회사 노조 설립과 단체협약 체결, 노조간부 미행·감시, 노사협의회를 통한 노조활동 방해처럼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서 나온 것과 비슷한 내용의 부당노동행위 역시 무혐의 처리됐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민변·참여연대는 23일 오전 이건희 회장과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이부진 당시 삼성에버랜드 사장을 비롯한 핵심 관계자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한다. 서울노동청 수사보고서에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난 삼성인력개발원과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들도 대상에 포함된다.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는 “서울노동청 수사 결과 문건대로 노조탄압을 실행에 옮긴 일부 실무자들만 처벌받았다”며 “노조와해 전략을 만들라고 지시한 자와 문건을 작성한 자 간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