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삼성그룹노조연대와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삼성노동자 현장 사례발표회에서 오상훈 삼성화재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노조는 사내포털 메일을 쓰지 마라고 합니다. 사내 동호회나 평사원협의회는 자유롭게 써도 되지만 노조는 안 된다는게 노동법이고 판례라고 합니다. 노조 만든 지 반년이 되는데 노조전임자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는커녕 복사지 한 장도 쓰지 못하고 있어요. 노조활동에 사내 포털 메일을 쓰면, 복사지를 사용하면 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오상훈 삼성화재노조 위원장)

“대표이사와 면담을 하면서 노조를 인정하고, 기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지금 사내 직원을 대표하는 창구는 노조가 아니라 60% 이상 투표해 선출된 노사협의회라고 합니다.”(이창완 삼성디스플레이노조 위원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에서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며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머리를 숙인 지 두 달이 지났다. 하지만 삼성그룹 노조들은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단체교섭 테이블 앉은 대표이사 단 한 명도 없어
곳곳에서 교섭 해태·지연·무력화 


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노총 삼성그룹노조연대와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삼성 노동자 현장 사례발표회’가 열렸다. 삼성 노동자들은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선언은 허구일 뿐”이라며 “재판 형량을 줄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고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언론플레이에 불과했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오상훈 삼성화재노조 위원장은 “이재용 부회장 대국민 사과 이후 두 달 동안,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인내하며 기다려 왔지만 노조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질적인 노조활동 보장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각 계열사 대표이사가 노조와의 공식교섭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노조의 자료요구 등 기본사항을 거부하면서 교섭을 해태하거나 지연·무력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이 진정 노동 3권 보장에 있다면 계열사 대표이사들이 노조와의 단체교섭 자리에 나와야 하고, 노조와 소통해야 한다”며 “모든 결정권을 가진 대표이사가 교섭에 나오지 않는 것은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사협의회 앞세워 노조 탄압”

한마음협의회 같은 삼성식 노사협의회가 회사에서 지원과 특혜를 받으며 노조탄압에 앞장서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를 지낸 경험이 있는 최원석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노조 위원장은 “얼마 전 언론에서 우리 회사 노사협의회 간부가 노조 조합원에게 ‘진급도 해야 되고 회사에서 커 가야 될 상황에 먼저 칼 맞는 입장 아니냐’며 노조탈퇴를 권고하는 녹취록이 보도됐다”며 “어쩌다 노사협의회가 본연의 기능과 다르게 삼성에서 노조를 탄압하고 파괴하는 주인공이 됐는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부터 삼성의 노사협의회는 노조조직화를 억제하는 방패막이였다”며 “법과 상식을 초월하는 부당지원으로 삼성은 노사협의회 운영에 지배·개입을 일삼았다”고 고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와 근로자위원 선거 개입이다. 그는 과거에 회사 인사팀 관계자와 노사협의회 위원들이 강원도 한 콘도에서 노사협의회 차기 근로자대표 후보가 단일화될 때까지 며칠간 머물면서 압박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삼성 노사협의회가 회사에서 사무실을 지원받고 유급 전임자로 활동하며 운영에 소요되는 회식비와 활동비, 경비를 지원받는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삼성의 노사협의회 경비원조와 지배·개입 행위는 점점 지능화되고 있으며, 노사협의회의 자주성은 극도로 훼손돼 노조탄압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부회장이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고 했을 때 100% 믿지는 않았지만 노조위원장의 진술을 들으며 설마 이 정도 수준도 안 되나 싶어 놀랐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이재용 부회장과 각 계열사 대표를 가을에 열리는 국정감사장에 세워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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