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복수노조제도 악용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가가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2011년 7월1일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면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업은 삼성그룹 계열사였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페이퍼노조 탓에 노조설립이 번번이 실패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안팎의 관심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같은해 7월18일 에버랜드 노동자들로 구성된 삼성노조(현 금속노조 삼성지회)가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하지만 삼성노조는 회사측과 교섭조차 할 수 없었다. 에버랜드 사측이 먼저 설립된 기업노조와 같은해 6월29일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고용노동부에 신고까지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는 단협 유효기간 만료 전 3개월이 되는 날부터 교섭요구를 할 수 있게 돼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에 따라 교섭을 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난 지금도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 닮은꼴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경기도 시흥 소재 제조업체인 대창이 그렇다. 대창 노동자 220명은 올해 4월19일 금속노조에 가입했고, 노조는 같은날 회사측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자 회사측은 "2003년 설립된 조합원 4명의 기업노조와 올해 1월 단협을 체결했으니 단협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교섭에 나설 수 없다"고 맞섰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실체가 불분명하고 활동도 없는 기존노조를 부인하고 회사측에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다시 밟으라고 주문했다. 그럼에도 회사측은 "노동위원회가 휴면노조 해산의결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삼성노조와 대창지회 사례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시행된 후 노조설립을 제한받은 사례로 꼽힌다.

주객 전도된 교섭창구 단일화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송옥주·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수노조 제도 시행 5년을 맞아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복수노조 제도 악용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에서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시행된 뒤 나타난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총이 주관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문제점과 법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해 발제한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삼성노조와 대창지회 사례를 언급하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과거처럼 노조를 만들어 곧바로 교섭을 시작하거나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설노조 설립 전부터 교섭과 쟁의행위가 가능한지 검토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기존노조가 있는지, 기존노조가 있다면 단협을 체결했는지, 단협이 있다면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인지에 따라 신규노조의 단체교섭권이나 단체행동권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신규노조 권리만 제약하는 것은 아니다. 유성기업·동서발전·갑을오토텍·순천향중앙의료원의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한 법원 판결을 보면 사측은 친사용자 성향이 강한 새노조를 만드는 데 개입한 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악용해 부당노동행위를 했다. 기존노조보다 규모가 큰 새노조를 만들어 기존노조를 교섭에서 배제하는 방식이 주되게 쓰였다. 기존노조가 세력을 유지할 경우 개별교섭으로 노조 간 차별을 두는 사례도 잇따랐다.

기업들은 기존노조든 신규노조든 상대적으로 강성이라고 판단되는 노조의 노동권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복수노조 제도를 활용했다. 유성기업을 포함해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정황이 있는 금속노조 사업장 노조탄압 사건의 상당수는 복수노조 제도 시행시기와 맞물려 발생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부채질한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다.

이날 토론회에서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노동 3권 보장의 하위제도로서 공정한 노사관계 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적 성격의 제도인데도 일부에서는 단체교섭권 보장을 창구단일화 뒤에 두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창구단일화 없애고 산별교섭 보장해야”
“노조 간 차별·부당노동행위 제재 시급”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지하든지, 제도를 유지한다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제안이 줄을 이은 배경이다. 박주영 노무사는 제도 폐지쪽에 손을 들었다. 그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지하면 각각의 노조는 자유롭게 노조를 설립할 뿐 아니라 교섭권과 쟁의권 역시 제한 없이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자율교섭만으로 노조 간 차별이나 친사용자 노조를 막을 수는 없다”며 “노조 간 차별방지를 위한 제도를 갖춰야 하고, 기업 단위 노사의 유착을 막기 위해 산별교섭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지하기는 쉽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4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현행 법령을 보완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다. 기업에 유리한 교섭창구 단일화 관련 법 조항이 많은 가운데 부당노동행위와 공정대표의무 위반 관련 조항을 구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장우찬 경남과학기술대 교수(법학)는 “노동부의 복수노조 업무매뉴얼과 세부 지도방안을 보면 공정대표의무 위반사항에 대해 구체적이지 않고 ‘다른 노조의 의견을 수렴하고 교섭진행 상황을 공유하라’고만 적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헌법재판소도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기본권 제한적 성격을 인정했기 때문에 제도보완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며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유형화하고 부당노동행위 규정처럼 법률에서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강성태 교수는 미국 사례를 들면서 부당노동행위 구제 관련 제도개선에 주목했다. 미국 역시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는 사용자에게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을 내릴 경우 수십 가지에 달하는 금지행위 목록과 노동자 권리회복을 위해 조치해야 할 목록을 전달한다. 사용자는 노동위원회 명령을 사업장에 게시해야 하고 이행상황을 구체적으로 보고하도록 돼 있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가 상습적이고 악의적이라고 판단되면 금전보상명령과 교육명령을 내린다.

강 교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서는 부당노동행위 실효성 제고가 절실하다”며 “노동위 직권조사 강화와 이행강제금 제도 도입, 구제명령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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