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갈등과 부당노동행위 의혹이 제기된 ㈜샤프에비에이션케이의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됐다. 14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따르면 공공운수노조 샤프항공지부(지부장 김진영)가 회사측의 ‘과반수 노동조합 공고’ 취소를 요구하며 제기한 이의신청에 대해 지난 13일 ‘기각’ 결정이 나왔다. 지부에 비해 조합원수가 월등히 많은 샤프에비에이션케이노조(위원장 공경현)가 이 회사 교섭대표노조 자격을 갖는다는 것이 지노위 판단이다.

이는 예견된 결론이다. 당초 지부는 기업노조가 조합원을 확보하는 과정에 회사측 관리자들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의신청을 냈다. 회사 관리자들이 기업노조 가입신청서를 들고 다니면서 직원들의 서명을 받은 정황을 보여주는 다수의 자료가 제출됐다. 지노위는 그러나 교섭대표노조를 판단하는 데 있어 사측의 부당한 지배·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판단기준은 하나, 바로 ‘쪽수’다.

지노위 관계자는 “두 노조의 조합원 명부를 제출받은 뒤 1개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은 1명으로, 두 개 노조에 모두 가입한 조합원은 0.5명으로 계산해 조합원 과반을 확보한 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판단한다”며 “숫자는 객관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 대표성 판단기준 이대로 좋은가=2011년 7월 복수노조와 교섭 창구단일화 제도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났다.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복수노조 제도는 애초의 취지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 샤프에비에이션케이 복수노조 갈등은 현행 복수노조 제도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를 환기시킨다.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노조가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해 조합원 유치경쟁을 벌이는 구조 자체가 노노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이때 회사측이 특정 노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더라도 이를 규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정찬무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국장은 “노조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 단체교섭인데 이를 위해서는 교섭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노동위원회가 지금처럼 조합원수만으로 교섭대표노조를 판단하면 범죄행위에 가까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가 은폐되고, 이런 결정이 거듭될수록 모든 사용자들은 별다른 죄의식 없이 자주적으로 설립된 노조를 무력화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양대 노총 산별조직 가운데 복수노조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는 곳은 민주노총 금속노조다. 현재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중 60여곳에 복수노조가 만들어졌다. 해당 사업장 거의 대부분에서 노노 갈등이나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갈등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이를테면 금속노조 소속 신규 지회가 만들어지면 곧 이어 회사노조(Company union)가 설립돼 금속노조의 교섭권 행사를 방어하는 경우다. 기왕에 설립된 금속노조 지회를 약화시킬 목적으로 외부 컨설팅을 거쳐 ‘노조 파괴 프로그램’ 차원에서 회사노조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가 됐든 교섭권을 박탈당한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각종 차별과 불이익에 맞서 싸워야 한다.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금속노조 조합원만 특근조에서 제외시켜 임금을 덜 주거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거나, 표적감시나 각종 징계로 못살게 구는 공통점이 발견된다”며 “금전적 차별이 계속되거나, 회사노조로 넘어가면 징계를 풀어주겠다는 식의 회유에 직면한 노동자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는 자명하다”고 설명했다.

◇사용자에 유리한 칼 '교섭 창구단일화'=언제 만들어졌는지도 알 수 없는 휴면노조(Paper union) 때문에 교섭권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시흥시 시화국가산업단지 내 압연·압출제품 생산업체 ㈜대창이 대표적이다.

지난 4월 금속노조 대창지회가 설립돼 생산직 노동자 266명 중 263명이 지회에 가입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이 노동자들을 한 데 뭉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회사는 “조합원 4명이 가입한 기존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 시효가 남았다”며 지회의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활동내역이 불분명한 4명짜리 노조 때문에 263명의 노동자가 교섭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 역시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현행 복수노조와 교섭 창구단일화 제도가 빚어낸 일이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의 개선을 강조한다. 유형근 부산대 교수(일반사회학과)는 “강제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한 현행 제도는 사용자들에 유리한 무기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여러 개의 노조가 조합원 유치경쟁을 벌이면서 반목하게 되는 구조인 데다, 이는 결과적으로 노조들이 사용자의 ‘분할통치’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교섭권 제한은 단체행동권 제한으로 이어져 노동 3권을 형해화한다"며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고, 노동자 간 분열을 조장하는 교섭 창구단일화 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