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남영전구 광주공장 생산설비 철거작업에 투입된 노동자 20여명이 집단으로 급성 수은중독에 걸렸다. 노동자들은 은색 물질이 줄줄 흘러 바닥에 가득했는데도 그게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 알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그 은색 물질이 수은이라고 알려 주지도 않았다. 같이 일했던 노동자들이 쓰러져 일을 못할 지경이었는데도 단순히 '용접할 때 나오는 가스에 중독됐나 보다' 생각했다.

<매일노동뉴스>가 그해 10월 보도를 시작하면서 "수은중독 같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14명이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했다. 근로복지공단 광산지사는 그중 12명의 신청을 승인했다. 2명은 사업자로 분류돼 산재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지역사회 불안감도 높아졌다. 남영전구 광주공장은 잔류수은을 폐기물로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파묻었다. 땅에 묻힌 수은은 인근 강으로 유출됐다.<본지 2015년 10월12일자 2면 '아무도 공장에 수은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기사 참조>

집단 수은중독 환자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수은으로부터 안전해졌을까. 예상대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27일 <매일노동뉴스>가 취재한 결과 고용노동부도, 환경부도, 당시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던 남영전구까지 집단 수은중독 사건 이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산재피해자들은 근로복지공단이 3개월 넘게 휴업급여 지급을 거부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치료비를 모두 대겠다던 남영전구도 한 달째 돈을 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는 남영전구 광주공장 대기에서 다른 지역보다 최대 40배의 수은이 검출됐는데도 쉬쉬했다. 대체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근로복지공단 "휴업급여 한 달만" 탁상행정
환경부 "대기 중 수은 검출" 공개 안 해


박아무개(46)씨는 다른 동료들처럼 남영전구 광주공장 설비철거를 하다 수은에 중독됐다. 박씨는 공장 지하 1층 대형설비를 산소절단기로 자르고 공장 밖으로 꺼내는 일을 했다. 지난해 3월22일 일을 시작했는데, 오한·구토 증상이 나타나 같은달 26일 그만뒀다. 그때 증상이 수은중독이었다는 것은 반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조아무개씨·심아무개씨도 비슷한 증상으로 같은날 공사현장을 떠났다.

박씨는 그해 11월 수은중독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공단 광산지사는 지난해 3월31일부터 두 달이 채 안 되는 5월26일까지만 휴업급여를 지급하는 산재요양기간으로 인정했다. 5월27일부터 산재승인을 받은 11월까지 152일은 휴업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철거공사를 지원한 하청업체 S건설 임아무개씨도 마찬가지였다. 임씨는 같은해 4월16일부터 30일까지 보름만 휴업급여 지급기간으로 인정받았다. 산재를 인정받을 때까지 수은중독 탓에 일하지 못한 169일은 보상받지 못했다.

공단은 이들 노동자들의 상태, 즉 △노동능력 상실 여부 △병원치료 여부 △미취업 상태를 종합해 볼 때 휴업급여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광산지사 관계자는 "휴업급여를 받으려면 병원치료를 받으면서 요양한 기록이 있어야 하고 미취업 상태여야 한다"며 "남영전구 수은중독 피해자는 (그나마) 자문을 받아 일용직 일을 했더라도 노동력 상실기간에 포함시켜 휴업급여를 지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공단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매일노동뉴스> 최초 보도 전에 이미 병원에서 혈중·요중 수은농도를 측정하고 산재를 신청했던 김용운·유성기씨를 제외한 나머지 노동자들은 보도 이후에 수은중독 검사를 받았다. 수은이 몸 밖으로 일정량 배출된 뒤에 검사를 했다는 뜻이다. 실제 이들은 혈중·요중 수은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렇다고 해서 증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수은에 중독된 것을 모른 채 지난해 10월까지 피부과·내과를 전전했다고 입을 모았다. 수은중독과 무관한 치료를 받았다는 얘기다. 대부분 일용직인 피해자들은 수은중독으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생계를 위해 일을 나가야 했다. 공단 결정이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받는 근거다.

유성기씨를 비롯해 산재를 인정받은 9명의 피해자들은 이달 25일 광산지사의 결정과 관련해 감사원에 심사를 의뢰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도 민원을 넣었다. 박씨는 “두드러기·구토와 잇몸이 허는 증상이 수은중독 때문인 줄도 모르고 지난해 10월까지 6개월 동안 내과·피부과·한의원을 돌아다녔다”며 “광산지사가 수은에 중독된 뒤 한 달 동안만 휴업급여 지급기간으로 인정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피해자들은 "수은중독 치료도, 진단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요양기간으로 인정하지 않은 광산지사의 결정은 모순"이라며 "피해자들에게 적극적인 보상을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최광현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중용)는 "재해발생일부터 진단일까지 7개월의 기간 동안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광산지사가 요양기간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피해자들은 수은중독으로 일을 못하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수은중독을 야기한 남영전구로부터 2차 치료비를 받지 못한 상황이다. 남영전구는 수은중독 파장이 커지던 지난해 11월 “철거공사에서 발생한 수은 피해에 대해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피해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5개월여가 지난 이달 현재 피해자들에게 2차 치료비는 지급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각각 780만원과 437만원의 치료비를 남영전구에 청구했다. 11월에 청구한 치료비는 제때 지급됐지만 올해 2월에 청구한 치료비는 한 달이 넘도록 지급되지 않고 있다.

최 노무사는 “산재보험이 비급여항목 진료비를 지원하지 않아 피해자들이 남영전구 치료비 지원금으로 비급여항목 진료비를 내는데 한 달째 입금이 되지 않고 있다”며 “수은중독 사태가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회사가 태도를 바꾼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남영전구 모기업인 송원그룹 관계자는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급이 늦어진 것일 뿐”이라며 “빠른 시일 안에 치료비가 지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공장인근 수은오염 고지 안 해

유해물질인 수은을 관리하는 환경부는 노동자들이 수은중독에 걸렸고, 폐기물을 땅에 묻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토양과 인근 하천 수질검사를 신속하게 진행했다. 검사 항목에는 대기오염도 있었다. 대기 중 수은중독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경부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오염측정을 맡았다. 그런데 환경청은 핵심적인 위험요소를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환경청은 남영전구 광주공장 인근 대기 중 수은농도가 전국 평균보다 최대 40배나 높게 측정된 사실을 지난해 11월 인지하고도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의도적 은폐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광주환경운동연합이 올해 1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전문가 자문회의 결과 보고’ 문서에 따르면 환경청은 지난해 11월 공장 인근 6개 지점에서 대기 중 수은농도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2개 지점에서 각각 세제곱미터당 13.13나노그램과 21.97나노그램의 수은이 검출됐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월평균 수은농도 분포가 세제곱미터당 0.37~4.78나노그램인 것을 감안하면 20~40배 높은 수치다.

영산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4개월 동안 대기 중 수은농도를 분석한 결과 우려할 만한 수준의 수은은 검출되지 않았다"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빠른 시일 안에 (남영전구 수은 유출과 관련해) 측정한 결과를 빠짐없이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광주환경운동연합은 남영전구 수은유출 사고 처리 과정과 측정 결과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경희 정책국장은 “대기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은 결과 대기 중 수은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 수은 농도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안전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 국장은 "대기 중 수은을 바로 흡입하는 경우가 아니어도 장기적으로 수은이 몸에 축적돼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며 "수은이 대기에서 검출되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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