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환경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수행한 수은함유 폐기물 실태조사에 따르면 형광등 생산시설의 배출 특성에 대한 선행연구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시설의 수은사용량은 자료가 없어 조사하지 못했다. 구태우 기자

1988년 온도계 공장에서 수은 주입작업을 했던 15세 소년 문송면군이 사망했다. 수은중독으로 3개월 만에 일을 그만두고 요양을 하던 차였다. 문군의 죽음은 우리나라 산업재해 제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로써 직업병 문제가 쟁점화하고 제도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정부의 관리실태는 27년 전인 그때나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매일노동뉴스>는 충격적인 제보를 접했다. 형광등을 만드는 중견기업의 지방공장을 철거하는 작업을 했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수은에 중독됐다는 내용이었다. 작업장은 환기조차 되지 않았고, 안전장구는 지급되지 않았다. 수은 폐기물이 다량 배출될 가능성이 높아 정부의 모니터링을 받을 만도 했지만 감독의 손길은 닿지 않았다. 철거작업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부의 수은관리 실태는 어떤지 <매일노동뉴스>가 2회에 걸쳐 짚어 본다.<편집자>

[게재 순서]
① 아무도 공장에 수은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② 법도 행정도 미비, 사각지대 놓인 수은 관리

"고철만 꺼내고 나머지는 공구리(콘크리트) 쳐 버렸죠."

올해 3월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산업단지에 있는 남영전구 광주공장에서 철거작업을 하다 수은에 중독된 김용운(60)씨가 충격적인 얘기를 털어놓았다. 김씨 얘기인 즉, 남영전구가 수은 덩어리가 가득한 광주공장 지하층을 아예 콘크리트로 묻었다는 것이다. 남영전구 광주공장은 철거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수은에 집단중독된 곳이다. 남영전구는 4월 철거작업이 마무리되자 지하 1층은 폐쇄하고, 지상 1층은 물류센터로 이용하고 있다.

증언은 매우 구체적이다. 김씨는 "재어 보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수은을 묻은 지하실은) 길이가 꽤 길고, 폭은 3~5미터 정도였다"며 "흙으로 묻고 그 위에 공구리(콘크리트)를 쳤다"고 말했다. 수은 폐기를 담당한 업체는 김씨가 속한 용역업체와 다른 업체였다.

김씨와 함께 철거작업을 하다 수은에 중독된 유성기(54)씨의 증언도 일치했다. 유씨는 "쇳덩어리 몇 개만 잘라서 (지하실에서) 들어 올리고, 나머지는 메워 버렸다"며 "수은이 그대로 매장돼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영전구의 행위는 불법이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수은 폐기물이 리터당 0.005밀리그램 이상이면 지정폐기물로 관리해야 한다.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은 지정폐기물의 경우 고형화한 뒤 관리형 매립시설에 매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체상태로 만들어 별도 매립시설에 묻어야 한다는 뜻이다.

0.005밀리그램 기준치에 미달해 일반사업장 폐기물로 분류되더라도 안정화 처분 방법으로 처리해야 한다. "파이프를 자를 때 은색 액체가 줄줄 쏟아졌다"거나 "은색의 덩어리가 곳곳에 있었다"는 작업자들의 증언으로 볼 때 상당량의 잔류수은이 있었고, 이는 지정폐기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수은 덩어리 모아 콘크리트로 덮어"

그렇다면 남영전구는 어떻게 수은을 지하에 매립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이 자리 잡고 있다. 남영전구는 2013년 이후 형광등 생산을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생산을 중단했으니 광주공장에 남은 수은은 관리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형광등 생산 과정에서 수은을 사용한 남영전구는 적어도 생산기간 동안에는 환경부에 수은 이동량을 보고할 의무를 진다. <매일노동뉴스>가 환경부의 화학물질 배출·이동량 정보시스템을 확인해 보니 2000년부터 올해 10월 현재까지 남영전구의 수은 이동량과 대기배출량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정부의 수은 모니터링은 낯부끄러운 수준이다. 정부는 내년에 발효되는 '수은에 관한 미나마타협약'에 대비해 2012년부터 국내에서 배출되는 수은 폐기물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경기도 업체 두 곳만 조사했다. 실태조사는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수행했다. 그나마 한 업체는 자료가 없어 사용한 수은량을 파악하지도 못했다.

또 다른 업체에서만 연간 212킬로그램의 수은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421톤의 폐유리가 나왔다.

2013년에도 연세대 산학협력단과 와이에스환경기술연구원이 용역을 맡아 수은 폐기물 실태조사를 진행했는데, 이들은 업체로부터 굴욕을 맛봐야 했다. 역시 경기도지역 업체 2곳을 조사했다. 형광등 생산시설을 보지 않고 폐기물 재활용업체를 살펴봤는데, 끝내 수은 사용량을 밝혀내지 못했다. 한 업체는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2004년부터 광주공장을 가동한 남영전구의 수은 사용량을 파악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셈이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수은 폐기물 조사를 하면서 형광등 재처리 업체가 협조를 꺼려 어려움을 겪었다”며 “2010년 이후 국내 형광등 생산업체가 외국으로 생산공정을 옮긴 것으로 알고 있어 생산업체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단 수은중독은 '예고된 사태'

법·제도 사각지대도 광범위하다. 화학물질관리법상 유해물질을 취급한 공정과 관련한 철거 지침은 없다. 환경부도 이를 인정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업체가 생산공정 일부를 철거할 때 해당 관리 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화학물질관리법 시행규칙은 유해물질 취급 중단기간이 60일을 초과하는 경우 사업장의 잔여 유해화학물질을 처분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노동자가 직접 유해물질을 취급할 때에는 개인보호장구를 착용하고, 화학물질이 대기·수계·토양 등 환경으로 배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영전구는 유해화학물질로 분류되는 수은을 2013년부터 적어도 3년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 남영전구 광주공장은 1980년대 금동조명이 운영하던 시절부터 30년 이상 수은을 취급하던 곳이었다. 공장에서 철거작업에 투입된 도급업체 소속 노동자가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철거작업을 하다 수은에 중독된 만큼 회사가 책임을 면할 길은 없어 보인다.

고용노동부의 부실한 관리·감독도 문제로 지적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안전보건상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은 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지 않으면 도급을 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은 도금작업과 수은·납·카드뮴 등 중금속을 제련하거나 가공하는 작업의 도급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해물질 취급 공정 철거작업의 경우 별다른 규정이나 지침이 없다.

수은 폐기물 관리와 관련해 지침이 없기는 화학물질관리법을 관할하는 환경부도 마찬가지다. 유해물질이 아닌 건설폐기물 관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철거작업 중 발생하는 근로자 안전문제는 공사를 발주한 원청(남영전구)이 아닌 도급업체에 책임을 묻도록 돼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 금지 조항은 수은을 직접 취급하는 곳에만 한정할 뿐 철거작업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작업 중 근로자가 재해를 입어도 공사를 발주한 원청이 아닌 하청업체에 법적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남영전구의 모기업인 송원그룹 관계자는 “철거작업을 한 근로자에 대한 문제는 공사를 따낸 우리토건이 책임질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제2·제3의 집단 수은중독 우려

내년에 미나마타협약이 발효되면 사정이 좀 나아질까. 불행하게도 답은 '아니올시다'다. 정부가 지난달 11일 발의한 잔류성유기오염물질 관리법(잔류성물질법) 개정안은 맹독성 물질에 무감각한 현실을 드러낸다.

잔류성물질법 개정안은 폐기물 보관시설과 재활용시설 신고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활용업체의 부담은 줄어들겠지만 폐기물 관리 사각지대는 더욱 넓어질 게 뻔하다. 현재 정부 정책은 수은을 사용했거나 취급하는 공장이 아닌 수은 폐기물 관리에 집중돼 있다.

하물며 2010년까지는 형광등 생산시설의 수은 배출과 관련한 연구조차 없는 실정이다. 2012년 정부 위탁으로 실태조사를 수행한 연세대 산학협력단은 “수은 함유 폐기물과 수은 함유 제품의 취급, 수집 및 처리 과정에서 수은 관리가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고 연구도 부족하다”며 “수은 함유 폐기물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국내 기준 마련이 시급하고, 건강과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도계 공장에서 수은을 주입하다 열다섯 나이에 사망한 문송면(15)군 사건이 발생한 때는 1988년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86년부터 90년까지 직업병 유소견자 3만7천731명 중 수은중독자는 478명이었다.

정부 지원을 받아 92년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가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는 형광등 제조공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여실히 보여 준다. 당시 환경의학연구소는 90년부터 91년 2월까지 전국 10곳의 형광등 제조사업장의 작업환경 관리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노동자 792명 중 411명(51%)의 소변에서 리터당 50마이크로그램(㎍/L) 이상의 수은이 검출됐다. 15명(1.8%)은 리터당 300마이크로그램 이상의 수은이 나왔다.

수은을 취급한 공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만큼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수은 중독 피해를 입었는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형광등 생산공장은 모두 외국으로 옮겨 간 상황이다.

금호전기는 2012년 베트남 호찌민시에 형광등 생산공장을 준공했다. 국내 생산은 중단했다. 남영전구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과 할로겐 전구를 주력 상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남영전구 광주공장처럼 철거 과정에서 재해자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철거작업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이 하도급 단계를 수차례 거쳐 고용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재해가 감춰졌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현재순 일과건강 기획국장은 "석면 해체작업과 관련한 규제가 마련된 것처럼 수은의 취급과 철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화학물질 관리 책임은 정부에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수은을 비롯한 위험물질에 대한 실태조사를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 국장은 "주력 제조업종이 변화하는 상황인 만큼 위험물질을 다루던 공정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하청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기회에 법·제도적인 대책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실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에 따르면 정보제공 의무를 위반한 원청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며 "노동부가 적극적인 처벌을 통해 위험업무의 외주화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