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은 중독으로 산재를 신청한 김용운씨가 가톨릭성모병원에서 병원비 수납을 기다리고 있다. 구태우 기자

“복도 참 지지리도 없습니다. 군산에서 서울까지 병원 다니는 것도 중노동입니다. 병원 한 번씩 왔다 가면 30만원씩 드는 데다, 힘들어서 다음날 일어나지도 못해요. 산재 승인이 안 떨어지니 입원도 못하고. 벌써 8개월째예요.”

올해 3월 남영전구 광주공장에서 설비를 철거하다 수은에 중독된 일용직 노동자 김용운(60)씨의 말이다. <매일노동뉴스>는 11일 오전 수은중독 치료를 위해 서울 서초구 가톨릭성모병원을 찾은 김씨를 만났다. 7개월 전만 해도 스카이차에 올라 고공에서 철거일을 하던 그가 이제 지팡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수은에 중독되면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몸무게는 50킬로그램으로 줄었다. 손에 힘이 없는지 지팡이를 꽉 쥐지도 못했다. 제대로 걷지 못해 자꾸 뒤처졌다. 그는 “키가 160센티미터도 안 되지만 체력 하나는 좋아서 병원 한 번 안 가 보고 살았다”며 “병원에서 검사받는 일도 지쳤고, 병명을 알아도 치료가 힘들다니 미칠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수은중독 7개월 만에 빚쟁이

김씨는 병원비 영수증을 손에 쥘 때마다 놀란다고 했다. 이날 혈액·소변검사 비용으로 8만3천910원, 통증치료 비용으로 12만2천원이 나왔다. 김씨가 검사비가 높은 이유를 묻자 병원측은 “30가지가 넘는 혈액검사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김씨는 남영전구 광주공장에서 수은에 중독된 뒤부터 실업 상태다. 일용직 노동자인 그는 철거공사를 하면서 일급으로 생활했다. 성모병원에 올 때마다 교통비(7만2천원)·식대(6천원)·병원비(20여만원)가 든다. 카드로 병원비를 결제한 뒤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카드값을 갚는 식으로 7개월을 버텼다.

김씨는 “이제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면 돈 빌려 달라는 줄 알고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8월에 산재를 신청하면서 바로 승인이 될 줄 알았는데 계속 늦어지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날 김씨는 꼬리뼈·목 등 네 군데 통증치료를 위한 약물주사를 맞았다.

마취통증의학과 담당 의사는 치료를 위해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으라고 권했다. 그는 "3주에 한 번씩 오겠다"고 흥정했다. 김씨는 “약물주사를 맞으면서도 병원비 때문에 걱정이 된다”며 “카드값이나 보험료 밀리면 갚으라고 난리면서 당장 죽을 것 같은 노동자를 위한 산재는 왜 이리 늦게 돼냐”고 토로했다.

산재 승인절차 개선 시급

김씨와 유성기(55)씨는 올해 8월과 9월 근로복지공단 광산지사에 산재를 신청했다. 공단은 한 달 넘게 시간을 끌다 9월30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했고, 연구원은 그로부터 또 2주가 지나 10월12일부터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공단과 연구원은 남영전구 수은중독 사건의 경우 역학조사 같은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역학조사는 이달 5일 끝났다. 현재 역학조사 보고서는 역학조사평가위원회 운영분과에 상정돼 결재를 앞두고 있다. 연구원 결재가 끝나면 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산재가 승인된다.

공단 광산지사 관계자는 “연구원이 역학조사 보고서를 보내지 않아 현재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남영전구 수은중독의 경우) 빠르게 산재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공단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실장은 “남영전구 수은중독 사례처럼 수은 노출로 질병을 얻은 경우 공단이 역학조사와 업무상질병판정위를 거치지 않고 산재 승인을 곧바로 해 줘야 하는데 절차를 거치느라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며 “사고로 직업병에 걸렸다면 산재 승인을 받기 전까지 재해자가 입을 피해를 줄여 주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용운씨는 “지금은 일하러 가는 사람들만 봐도 부럽다”며 “(수은중독으로) 8개월째 몸이 아픈 상황에서 언제 산재가 승인될 지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라고 한숨 쉬었다.

한편 남영전구는 지난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수은중독으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의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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