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영전구 광주공장에서 철거작업을 하다 수은에 중독된 유성기씨가 약을 먹고 있다. 구태우 기자

1988년 온도계 공장에서 수은 주입작업을 했던 15세 소년 문송면군이 사망했다. 수은중독으로 3개월 만에 일을 그만두고 요양을 하던 차였다. 문군의 죽음은 우리나라 산업재해 제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로써 직업병 문제가 쟁점화하고 제도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정부의 관리실태는 27년 전인 그때나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매일노동뉴스>는 충격적인 제보를 접했다. 형광등을 만드는 중견기업의 지방공장을 철거하는 작업을 했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수은에 중독됐다는 내용이었다. 작업장은 환기조차 되지 않았고, 안전장구는 지급되지 않았다. 수은 폐기물이 다량 배출될 가능성이 높아 정부의 모니터링을 받을 만도 했지만 감독의 손길은 닿지 않았다. 철거작업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부의 수은관리 실태는 어떤지 <매일노동뉴스>가 2회에 걸쳐 짚어 본다.<편집자>

[게재 순서]
① 아무도 공장에 수은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② 법도 행정도 미비, 사각지대 놓인 수은관리

“수은이 있는 공장인 줄 알았으면 철거작업을 했겠습니까. 이대로 죽는구나 했어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앞으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철거작업을 하기) 전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올해 3월 광주시 광산구 하남산업단지에 있는 남영전구 광주공장에서 철거작업을 하다 수은에 중독된 김용운(60)씨. 그는 3월22일부터 4월7일까지 공장의 형광등 생산설비 철거작업에 투입됐다. 남영전구는 지하와 지상 설비를 빼낸 뒤 물류센터로 이용할 계획이었다. 산소절단기로 대형 생산설비를 자른 뒤 공장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게 김씨가 맡은 업무였다.

김씨와 함께 철거작업에 투입된 노동자는 9명. 일용직 3명을 빼면 6명이 같은 용역업체 소속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동료들은 "머리가 아프다" "힘이 없다" "어지럽다"며 차례로 쓰러졌다. 동료들이 떠난 뒤에도 김씨와 작업자 관리담당 서아무개씨는 끝까지 남아 철거작업을 마무리했다.

김씨는 원인 모를 통증과 피로에 시달렸다. 병원을 전전하다 6월26일 원광대병원에서 수은중독 진단을 받았다. 그제야 곳곳에 보이던 주먹만 한 액체 덩어리들이 병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7월 근로복지공단 광산지사에 산재를 신청했다. 같은 작업장에서 일했던 유성기(54)씨도 함께였다.

<매일노동뉴스>가 산재 피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남영전구 광주공장 집단 수은중독 사건을 재구성했다.

"파이프 자르면 수은 줄줄 … 바닥 기면서 작업했다"

철거업무 경력 10년의 베테랑인 김씨는 올해 3월 남영전구 광주공장 설비 철거업무에 투입됐다. 남영전구가 발주한 계약을 김씨가 소속된 우리토건이 따냈기 때문이다. 우리토건은 서우건설에 하도급을 줬고, 서우건설은 이른바 오야지인 서씨에게 일을 맡겼다. 하도급 단계를 거쳤지만 김씨의 일급은 25만원으로 비교적 높았다. 약속된 기간 15일을 일하면 목돈 375만원을 벌 수 있었다. 김씨는 동료 5명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광주로 내려갔다.

3월22일 도착한 광주공장은 딱 보기에도 낡았다. 남영전구는 금동조명이 운영하던 광주공장을 2004년 인수했다. 1991년 이전에 지어진 공장이었다. 철거현장 지하에는 환기시설조차 없었다. 지하 철거작업에 배치된 노동자들은 “환기시설이 없어 철거작업을 할 수 없다”며 작업을 거부했다. 이튿날 환기시설이 설치되자 철거작업이 본격화했다. 지급된 작업복에 방진마스크만 쓰고 일했다.

노동자들은 수은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냥 은색 덩어리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김씨는 “수은이 뭔지도 모른 채 신경 쓰지 않고 일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은색 덩어리가 예뻐 보여 맨손으로 구슬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덩어리는 곳곳에 널려 있었다. 노동자들이 산소절단기로 파이프를 자르면 몽글몽글한 은색 액체가 바닥에 줄줄 쏟아졌다. 절단된 설비를 공장 밖으로 옮길 때에도, 철거현장 쓰레기들을 치우려 대걸레로 밀 때에도 덩어리가 보였다. 유씨는 “전기가 끊겨 어두웠고, 대형설비 아래쪽을 자르기 위해 누워서 일하기도 했다”며 “눈 바로 옆에 액체 덩어리가 있었던 적도 있는데 그런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지하에서 작업하던 동료 3명이 "입맛이 없고 어지럽다"며 점심을 걸렀다. 몸이 재산인 건설노동자들은 밥심으로 일한다. 김씨는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이튿날 지하에서 일하던 노동자 3명이 “도저히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으니 돌아가겠다”며 공장을 떠났다.

하나둘씩 시름시름 앓다 철거현장 떠나

철거작업을 한 지 8일째가 되자 김씨도 심하게 아팠다. 김씨와 남은 동료 2명은 피부에 발진이 생겼다. 토하기도 했다. 손발이 저리고 한기를 느껴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서씨가 자진해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뒤 감기약을 처방받았다. 이들은 서씨의 약을 나눠 먹었다. 음식을 삼킬 수가 없어 두유를 먹고 약을 먹었다.

김씨는 “10년째 일감을 받아 철거일을 해 왔는데 아프다고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며 “남영전구 직원에게 (동료들이) 모두 아프다고 얘기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어 그냥 참고 일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유성기씨마저 “몸이 너무 아프다”며 11일차인 4월1일 철거현장을 떠났다. 유씨는 “철거를 하다 보면 아연가스를 가끔 마시게 되는데 증상이 비슷했다”며 “처음에는 아연중독 때문에 그렇게 아픈 줄로만 알고 며칠 지나면 나을 줄 알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보름 만에 일을 마무리한 김씨는 집에 돌아온 뒤 시름시름 앓았다. 그는 “가만히 있으면 무언가 몸을 쿵쿵 밟고 가는 것처럼 아프고, 잠을 자다가 망치로 맞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며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거의 매일 느껴서 곧 죽는 줄 알았다”고 증상을 설명했다.

약국에서 약을 사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두드러기 때문에 피부과도 가고, 내과도 갔지만 왜 아픈지 속 시원히 알지 못했다. 군산의 한 한의원에 가서야 병의 원인이 은색 덩어리, 수은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한의사는 “아픈 사람 맥이 아닌데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김씨가 “얼마 전 전구공장에서 철거일을 했고, 은색 액체 덩어리가 많았다”고 설명하자 한의사가 원광대병원을 소개해 줬다. 그리고 6월26일 원광대병원은 김씨를 수은중독으로 진단했다. 혈중 수은농도가 리터당 163마이크로그램(163㎍/ℓ)이나 됐다. 소변에서는 161마이크로그램이 검출됐다.

정상 기준치인 5마이크로그램의 무려 30배를 넘는 수치였다. 유씨는 혈액에서 50마이크로그램의 수은이 나왔다. 김씨는 “수소문한 결과 동료들 모두 철거현장을 떠난 뒤 수은중독 의심증상으로 입원했다”며 “공장에서 나온 고철을 내다 팔았던 노동자들도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수은중독에 병든 가장들, 당장 생계 걱정

김씨는 지난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현재는 2주에 한 번씩 군산 집에서 서울을 왕복하며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두 달 이상 치료를 받으면서 수은중독으로 인한 통증이 호전된 상태다.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에서 수은을 중화시키는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 과정은 험난했다. 수은 중화치료 중에는 고단백질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하지만 입안이 헐어 버린 탓에 음식을 삼키면 자꾸 토했다. 신장이 나빠져 위급한 상황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김씨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 죽이라도 먹어야 했는데 몸에서 받질 않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며 “콩팥으로 수은이 전이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너무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현재 김씨는 목발에 의지해 걷고 있다. 그는 “조금만 걸으면 발목부터 시작해 다리 위까지 저린다”며 “지금 같은 몸상태로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한숨지었다. 함께 산재를 신청한 유씨의 몸상태는 최근 들어 악화됐다. 유씨는 “면역체계가 파괴돼 합병증이 번갈아 나타나고 있다”며 “치료를 받으면서 좋아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니 불안하다”고 힘들어했다.

김씨는 “철거현장에 수은이 있다는 것을 남영전구도, 우리토건도 알려 주지 않았다”며 “수은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호소했다. 유씨는 “수은인 줄도 모르고 일하다 병에 걸렸다며 아내가 화를 낸다”며 “요새 아내랑 자주 싸우게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월세방에서 외롭게 투병 중이다. 유씨 역시 생계가 걱정이다. 유씨는 “막내아들 대학 마칠 때까지 공부시키려면 내가 한참은 더 일해야 한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떨궜다.

원청도, 하청도 “내 책임 아냐”

철거작업을 발주한 남영전구도, 계약을 따낸 우리토건도, 하도급업체도 철거현장에 유해물질인 수은이 있다고 알려 주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인자로 분류되는 수은은 취급할 경우 환경부와 보건관리전문기관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 수은을 흡입하거나 피부로 접촉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15년 만에 노동자들이 집단 수은중독에 걸렸는데도 남영전구와 우리토건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남영전구는 “광주공장에 수은은 없었다”며 잔류수은 존재를 부인했다. 철거작업 중 수은중독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공사를 따낸 우리토건이 책임질 일"이라는 입장이다.

남영전구 모기업인 송원그룹 관계자는 “광주공장에서는 이미 3년 전에 형광등 생산을 중단해 공장에 수은이 남아 있지 않다”며 “철거작업을 한 근로자에 대한 문제는 우리토건에서 책임질 일이고 계약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토건이 수은중독 사실을 보고한 적이 없고 (수은중독과 관련해) 남영전구는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수은중독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와 고용관계가 없어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남영전구에 책임을 묻을 수는 없을까. 아쉽게도 현행법상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건설·철거현장에서 산재를 입게 될 경우 고용관계가 있는 하청업체가 (법 위반 사항을) 책임을 져야 한다”며 “원청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문제가 있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청회사인 우리토건은 어떨까. 우리토건은 남영전구가 철거현장 잔류수은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아 산재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우리토건 관계자는 “철거계약을 따내고 작업하기 전까지 남영전구는 광주공장에 잔류수은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적이 없었다”며 “잔류수은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적절한 조치를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실장은 “맹독성 물질인 수은이 있는 공장을 철거하면서 이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남영전구, 적절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우리토건 모두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건을 수임한 최광현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중용)는 “남영전구 광주공장에서 작업한 모든 노동자에게서 수은중독 증상이 동일하게 나타났다”며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수은에 노출돼 업무상 인과관계가 있는 만큼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를 승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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