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은 월급이 16만원이라면 어떤 심경일까. 티브로드 설치기사 최민석(35·가명)씨는 올해 4월 급여명세서에 찍힌 월급액수을 보자 울화가 치밀었다. 실수령액은 달랑 15만9천820원이었다. 최저임금은커녕 애들 용돈도 안 되는 액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월급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달 최씨는 기본급 160만원과 휴일근무수당 3만원을 받도록 돼 있었다. 흔한 복리후생비 하나 없이 딱 163만원이다. 하지만 뺄셈이 남았다. △국민연금 6만3천원 △건강보험료 4만7천830원 △건강보험료 정산분 5만8천500원 △장기요양보험료 3천130원 △장기요양보험료 정산분 3천870원 △소득세 8천410원 △주민세 840원 △고용보험료 9천920원 △고용보험 정산분 2만6천640원가 빠져나갔다.

진짜 심각한 대목은 여기부터다. △영업비 환수금 37만원 △유류대 초과금 4만1천원 △2월 미회수금 46만6천120원 △1Q 실사 17만920원 △가불금 20만원이 뭉텅이로 사라져 버렸다. 액수부터 장난이 아니다. 최씨의 월급을 털어 간 이들 항목은 대체 무엇일까.

티브로드 도급노동자, 눈덩이 급여공제액 다달이 반납

민주화를위한 변호사 모임과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티브로드 인력운용 및 근로조건 실태연구팀’이 10일 발표한 ‘티브로드 케이블방송 인력운용 및 근로조건 실태와 문제점’ 보고서에 따르면 케이블업체 노동자들은 부당한 급여공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광그룹 계열 종합유선방송사업(MSO) 업체 (주)티브로드홀딩스와 도급계약을 맺은 고객센터·기술센터에서 일하는 최씨와 같은 노동자들이다.

예컨대 최씨가 유치한 고객이 6개월 이내에 계약을 해지하면 영업비 환수금이 급여에서 공제된다. 계약을 해지한 고객이 케이블 수신기 같은 장비를 반납하지 않고 이사를 가 버리면 장비 미회수 페널티가, 전산에 등록된 장비와 실제 보유 중인 장비가 맞지 않을 때는 장비실사 페널티가 기다리고 있다. 가정방문 서비스라는 특성상 이동이 많은 업무임에도 회사는 한 달에 10만원의 유류비만 지원한다. 유류대 초과분 역시 월급에서 깎인다. 급여공제액이 워낙 많아 노동자들이 공제액을 회사에 분할 납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명세서에 ‘가불’로 찍힌다. ‘선지급된 급여’를 의미하는 가불의 일반적 정의와는 한참 다르다.

현행 민사집행법은 압류 가능한 급여채권의 마지노선을 150만원으로 정하고 있다. 노동자가 불법행위를 저질러 급여를 압류하게 된 경우에도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불법행위를 저지르지도 않은 최씨는 손배가압류보다 더한 '월급 떼가기'에 시달리고 있다. 실태연구팀은 보고서에서 “티브로드 도급노동자들은 차량유지비와 PDA 통신비·영업활동비 등 기본적으로 수익의 향유자인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비용까지 떠안고 있었다”며 “사용자가 자신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함으로써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해당 노동자들은 부당이득 반환청구를 고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티브로드 본사가 페널티 부여, 헤어·손톱까지 간섭

티브로드 도급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급여공제는 해당 노동자들의 영업실적 평가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영업목표치를 할당하고 이를 독려하는 업무는 도급업체인 고객센터나 기술센터의 몫이 아니다. 원청업체인 티브로드가 직접 관여하고 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공개된 것처럼 도급노동자에 대한 인센티브나 페널티 부여는 티브로드 본사의 계획하에 이뤄졌다.

심지어 티브로드 본사는 원청과 하청직원을 한 팀으로 묶은 뒤 경쟁업체의 광고전단을 제거하는 업무에 투입하기도 했다. 본사가 작성한 ‘경쟁사 홍보물 철거계획’이라는 내부문건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티브로드의 업무지시가 원·하청을 가리지 않고 일괄적으로 하달됐음을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다.

티브로드는 이도 모자라 도급노동자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손톱길이까지 간섭했다. 이 같은 세밀한 업무지시는 주로 개인용휴대단말기(PDA)를 통해 이뤄졌다. PDA 전산망 관리 역시 티브로드 본사가 직접 했다.

실태연구팀은 “최근 티브로드나 삼성전자서비스·이마트처럼 서비스부문 위장도급·불법파견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고, 원청의 부당이득을 위해 하청노동자들이 월급을 통째로 빼앗기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갈수록 악랄해지는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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