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상정 공동대표를 보호하는 유시민 공동대표가 당원으로부터 가격당하고 있다. 노동과세계 이명익 기자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지난 12일 열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가 폭력사태로 얼룩지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일부 회의를 참관하던 당원들이 회의장에 난입하고, 단상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회의를 진행하던 공동대표단을 폭행했다. 조준호 공동대표는 집단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 대표가 당원들에게 폭행당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진보정당에서 발생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13일 저녁 중앙위를 전자회의로 전환했지만 진보정당 역사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이번 사태는 회의 시작 7시간여가 이날 오후 9시40분께 벌어졌다. 회의 내내 “불법 중앙위 해산하라”고 외치던 100여명의 참관 당원들이 심상정 의장이 첫 번째 안건인 강령개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하자마자 단상으로 난입했다. 이들은 점거를 막던 진행요원들을 몸싸움 끝에 단상 밑으로 밀어내더니 심상정·유시민·조준호 공동대표를 둘러쌌다. 2~3분 동안 둘러싸인 채로 유시민 대표는 얼굴을 가격당하고, 조준호 대표는 목이 졸리고 머리채를 잡히고 발과 몸통을 구타당했다. 조 대표는 급하게 회의장을 빠져 나온 뒤에 탈진했다. 조 대표 비서실에 따르면 그는 현재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해 정밀진단을 받고 있다. 목과 허리에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권파, 처음부터 중앙위 무산 노린 듯

선출직 비례대표의 전원사태를 핵심으로 하는 전국운영위원회 결정에 반대했던 당권파의 노림수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이정희 공동대표는 회의 시작 전에 대표직을 사퇴하고 자리를 떠났고, 장원섭 사무총장도 사무부총장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자리를 떴다. 장원섭 총장은 중앙위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회의장 밖에서는 이따금 모습을 보였다.

중앙위는 오후 2시30분께 개회한 뒤 한순간도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당권파 중앙위원들은 국민참여당계 중앙위원들의 선출 과정에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적법한 중앙위원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중앙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의제기가 뒤따랐다. “당헌에 중앙위원은 각 통합주체 합의로 각 주체별 상황에 따라 선임하도록 일임됐다”, “11일 오후 2시까지 중앙위원을 확정하기로 했고, 첫 중앙위인 만큼 중앙위원을 교체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김용신 사무부총장과 유시민 공동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당권파의 문제제기는 그치지 않았다.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였다.

참관인석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약속한 듯 “불법 중앙위 중단하라”는 구호가 나온 것은 회의 시작 30분도 안 돼서다. 구호가 커지자 심상정 공동대표가 ”구호를 멈출 때까지 회의 진행을 중단하겠다”며 중지를 선언했다. 오후 4시30분께였다. 구호는 심 공동대표가 발언을 하려고 하면 더욱 커졌다. 오후 7시20분에는 참관인석에 있던 청년당원들이 중앙위원석에 난입했다. 이들은 단상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중앙위 해산"을 외쳤다. 이렇게 폭력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7시간 동안 안건은 단 하나도 통과되지 못했다. 폭력사태에 대해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오늘로 대한민국의 진보는 죽었다”고 표현했다.

당권파 “정당한 항의”, 온도차 극과 극

그러나 당권파가 사태를 보는 눈은 천양지차였다. 우위영 대변인은 중앙위가 중단된 뒤 “중앙위 파행은 심상정 의장이 중앙위 성원문제를 제기하며 일방적인 안건처리에 반대하는 중앙위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1호 안건을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해 발생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통합 과정에서 만장일치 합의정신을 최대한 발휘하자고 했던 약속이 무너진 것에 대한 중앙위원들의 정당한 항의를 거부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김배곤 당 용인시 위원장은 중앙위 뒤 연단에 서 남은 당원들에게 “당을 바로세우기 위해 분파와 정파의 싹을 자르기 위한 피눈물 나는 투쟁”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합진보당을 반석 위에 우뚝 세우는 과정이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며 “2008년 종북이라는 낙인, 멸시와 모멸 속에 어떻게 당을 세웠나. 역사를 만든 진실이니 굴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선동·김미희·오병윤·이상규 국회의원 당선자는 13일 “중앙위 원천무효”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냈다. 이들은 “중앙위에서 불법 성원 문제가 불거졌고, 밝혀진 대로 24시간 이전에 확정된 명부만 보더라도 교체 과정에서 절차무시, 시행규정 무시, 당사자 동의절차 생략 등의 사례가 무더기로 확인되고 있다”며 “중앙위원회 자체가 원천무효”라고 밝혔다. 심상정 공동대표에 대해서는 “회의 파행의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심상정 당선자 주재하에 전자회의를 통해 중앙위원회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다”며 “합의정신을 파기하고 중앙위를 파행으로 만든 장본인인 심상정 전 의장이 또다시 전자회의를 소집한다는 것은 재차 불법을 행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고립무원 빠지는 당권파

하지만 외부의 반응은 싸늘하다. 통합진보당의 최대 지지층인 민주노총이 등을 돌렸다. 민주노총은 12일 회의장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해 “당이 마지막 기대를 저버릴 경우 진보정당으로서의 지지철회를 포함한 당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폭력사태를 막지 못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매우 실망스럽다”며 “17일 중집회의에서 지지철회는 물론 폭력 가담자 처벌 문제도 논의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말을 아끼던 민주통합당도 이례적으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통합진보당 사태를 언급하며 압박하고 나섰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의 폭력사태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적 원인이 선거부정이고 이런 것은 철저히 밝혀서 수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특히 "통합진보당 사태 해결이 야권연대의 전제조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말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가 명확하게 해결되는 것이 필요하다”며 “야권연대는 국민의 마음을 얻자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정권교체를 하자는 것인데 과연 이런 상태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갖는다”고 말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폭력사태는 매우 충격적이고 참담하다”며 “통합진보당의 자정과 쇄신을 전제로 연말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연대 지속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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