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중턱 햇볕 귀한 언덕길에 비석이 세 개 있다. 누군가의 이름과 사연을 새긴 돌이 비바람과 시간을 견뎠다. 추모비라고 불렸다. 2000년 겨울, 미시령 옛길을 넘어가던 버스가 뒤집혔고, 까마득한 벼랑 앞에 겨우 멈췄다. 수십 명이 버스에 올랐지만 제 발로 내린 이가 적었다. 일곱이 죽었고 여럿이 피 흘렸다. 참사라고 뉴스는 전했다. 브레이크 고장 때문이
바람 매섭다. 뜨끈한 아랫목 이불 속 그리운 철, 잔뜩 껴입고 거리 나선 이들이 많다. 날숨마다 구호마다 안경알이 뿌옇다. 장갑 낀 손으로 대충 닦고 만다. 이 정부 무슨 타령에 뿔난 사람들이다. 개혁 타령이 1절이다. 바람이 분다. 해고 바람이 분다. 노동 개혁에 쉬운 해고 칼바람 분다. 재벌 좋네. 아 좋네. 꿀맛이여. 에헤라. 재벌 청원이구나. 거기
언젠가 기타 만들던 늙은 노동자의 서울 여의도 단식농성장 앞에서 한때 고속열차에 올라 일하던 승무원 한숨이 깊었다. 어디 올라갈 데라도 찾아봐야 하는지를 농담처럼 물었다. 거기 지척 광고탑엔 화물노동자 둘이 올라 농성했다. 어느덧 비바람에 삭아 흐릿한 현수막이 사정을 겨우 알렸다. 그 아래 국회 앞길엔 빨간색 현수막이 매번 말끔하게 내걸렸다. 거기 새긴 노
빨간불에 멈춰 선 게 줄줄이 갈 길 바쁜 자동차만 아니라, 신호등 기다리며 옷깃 여미던 시민만 아니라, 저기 세월호 광장 천막 안에 걸린 달력이, 또 시곗바늘이, 단체 사진 속 해맑던 아이들 모습이 또한 그대로 멈췄다. 허튼 시간만이 돌고 돌아 아이들 영정이 두 번의 눈을 맞는다. 거리에 선 엄마 아빠 머리 위에는 진작에 흰 눈이 소복했다. 진상조사를 위한
가이 포크스 가면이다. 가톨릭 탄압에 저항해 1605년 11월 영국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폭파하려던 '화약음모사건'의 주인공이다. 영화 로 널리 알려졌다. 국제해킹그룹 어나니머스의 얼굴로도 쓰인다. 월가 시위 등을 거치며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2015년 11월 노동개악과 국정교과서 저지, 밥쌀 수입 반대 등을
이제는 민생이라고, 여당 대표는 국정교과서 싸움 나선 야당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발 빠른 현수막이 네거리 곳곳에 걸렸다. 쫙 깔렸다. 새누리당이 해냈다고 알렸다. 영세자영업자는 이제 카드수수료 걱정을 덜었다고 붉은색 현수막이 전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올바른 역사를 씁니다라고도 새겨 알렸다. 그 단어 어디서도 구김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과연 긍정 대장의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다. 진짜 생각 따위가 궁금한 게 아니다. 맞장구가 필요할 뿐이다. 격한 공감, 토 달지 않는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한다. 대개는 일방적이다. 그 옛날 왕과 독재자의 질문이 그러했을 터. 신조어는 종종 역사를 거슬러 올라 그 의미를 찾는다. 힘없는 이는 대답을 할 뿐, 질문은 불온한 것이었다. 때때로 그
평화시장 건너 창신동 골목길 굽이굽이 누비면 전통시장 지나 봉제공장이 따닥따닥. 김 사장도 박 사장도 거기 많아 어디 부자 동넨가. 담벼락 빨랫줄엔 낡은 군용바지와 주머니 많은 조끼와 페인트 얼룩 티셔츠만 덜렁. 한숨 돌릴 때쯤 어머니 살던 집이, 열사의 이름 딴 재단이. 오르막 가팔라 뒷다리 근육 파르르 떨릴 때쯤 지팡이 버거운 노파 기대 쉬던 옛 한양성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앞 버스정류장 유리 벽에 덕지덕지 노란색 테이프가 붙었다. 온갖 포스터가 한때 저기 붙어 제 역할을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부욱 찢겨 나간 흔적이 유리창에 낙엽처럼 쌓였다. 어렵게 붙었지만 곧 떨어질 것을 각오해야 하는 신세가 매한가지라 사람들 여럿 모여 노란색과 빨간색 손팻말을 들었고, 목소리 높였다. 쉬운 해고와 노동개악에 반대
국회 앞마당엔 대한민국 청년 20만+ 창조 일자리 박람회 준비가 한창이다. 삐죽한 천막 빼곡하게 그 너른 마당을 채웠으니 대규모다. 온갖 희망찬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거느라 사람들은 분주했다. 강약중강약 궂은비가 오전 내내 내린 탓에 오후 시간이 더욱 바빴다. 알바! 이쪽으로! 행사 관계자 목소리가 높았고, 그 자리 멀뚱멀뚱 섰던 청년들이 우왕좌왕 바삐 움
추석 앞이라고 도로에 차가 많았다. 길이 막혀 끼니때를 놓쳤다.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식당을 찾아들었다. 칠괴산업단지 인근 중국요릿집 ‘중국성’엔 사람이 붐볐다. 주방 한편에서 탕탕 면을 치대는 소리가 끊김 없다. 음식은 손맛이라더니, 거기 수타면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짜장면을 기다리며 손님들은 귀성 계획과 선물 목록과 명절 전 증후군 따
볕 좋은 날 광장에 장이 섰다. 온갖 팔도 특산물이 좌판에 죽 깔렸다. 빨갛게 잘 익은 사과며 씨알 굵은 배가 근사한 상자에 담겼다. 줄줄이 엮은 굴비부터 어디 무슨 벌꿀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카드 환영 안내문이 크게 붙었다. 싸고 믿을 만하다니 천막 아래가 사람들로 붐볐다. 내일모레가 추석이다. 공장으로 돌아가자던 해고자 몇몇이 그 곁을 바삐 지났다. 3
언젠가 3포라더니 5포, 또 7포란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 대인관계며 내 집 마련에 희망과 꿈까지 접었다니 꼽아 보기도 버겁다. 점점 늘어 이제 N포란다. 디지털 기술과 함께 성장해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능하다고 한때 N세대라고도 불렸던 이 시대 청년은 지금 집도 사랑도 뭣도 없어 동수저도 사치라 여긴다. 자조 담긴 흙수저를 인증한다. 이상한 나라의 성실한
이게 다 쇠파이프 휘두른 노동자 탓이라고 여당 대표가 총대 메고 나섰다. 싸우자는 거다. 규탄발언과 행동이 잇따랐다.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이 소란스러웠다. 붉은 펼침막엔 그 입 다물라는 경고와 함께 유력 대선후보 얼굴이 선명했다. 날 선 발언 이어 달걀이 그리로 날아들었다. 무참히 깨졌다. 노른자 사방으로 튀었다. 친일파 청산과 재벌개혁만 잘했어도 소득 3
오래도록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좀 쉬시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맞벌이 나선 젊은 엄마 아빠는 별수가 없었다. 늙은 엄마 품에 딸아이를 안겼다.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손주를 등에 태우고 마루를 기었다. 멍멍 짖고 야옹 울었다. 아이는 잘 따랐다. 잦은 야근에도 아이는 밝게 웃었다. 용돈 얼마간 꼬박 쥐여 드리는 것으로 마음 짐을 덜었다. 아이들 다 키워 낸 늙
대국민 담화를 읽어 내리던 대통령 뒷자리에, 영화 국회 상영회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여당 대표 손에, 잠실벌 높다란 롯데월드타워 외벽에, 노동부 장관 옷깃에, 또 해고자 눈물 흘리던 대법원 앞마당에도 태극기가 있었다. 바닷속 세월호에도, 안산 단원고 교정에도, 거기 텅 빈 교실에도 국기가 또렷했다. 촛불 행렬에, 어느 뜨겁던 길거리
비둘기 떼가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평화의 상징이었으나, 지금 사람들 생각은 좀 다르다. 여기저기서 골칫거리다. 닭둘기라고도 불린다. 좋아라 뒤쫓는 건 아이들뿐이다. 푸드덕 날갯짓에 비명 터진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짓자고 누군가 노래했지만 흘러간 옛노래다. 높은 자리 우뚝 선 광고탑은 자본의
꽁꽁 둘러싸 빈틈이라곤 없어 보이는 저 무진복은 한여름 땡볕 아래 참으로 별스러웠다. 오늘 참 덥다고, 사람들 인사말이 한결같은 날이었다. 무진복은 애초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춤 한바탕 선보이고 내려오는데 땀 한 바가지를 쏟아야 했다. 시선은 끌었으니 무대복 소임은 해냈다. 먼지 없는 방에는 쉴 틈도 없었다. 교대 근무가 밤낮으로 빡빡하게 돌아갔다.
아들은 엄마의 고장 난 스마트폰이 걱정이었다. 이리저리 손봐 고쳤다. 자전거 달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을 찾아 엄마 손에 건넸다.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 나미자씨는 노동청 앞자리에서 철야농성 중이다. 14일로 보름째다. 불법사찰과 채증 등 회사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노조 시작하고 나서부터였으니, 스마트폰을 쓴 지가 꼭 2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