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대국민 담화를 읽어 내리던 대통령 뒷자리에, 영화 <암살> 국회 상영회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여당 대표 손에, 잠실벌 높다란 롯데월드타워 외벽에, 노동부 장관 옷깃에, 또 해고자 눈물 흘리던 대법원 앞마당에도 태극기가 있었다. 바닷속 세월호에도, 안산 단원고 교정에도, 거기 텅 빈 교실에도 국기가 또렷했다. 촛불 행렬에, 어느 뜨겁던 길거리 응원현장에, 장갑차에 치여 죽은 어린 학생의 추모집회에도 건곤감리 태극문양이 어김없었다. 6월 항쟁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80년 5월 광주도청에도 태극기는 펄럭였다. 조회시간, 운동장에 모여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던 어린이들은 다 자라 이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른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과 내 집 마련을 포기한다. 이게 나라냐고 묻는다. 광복 70년, 여기저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빌딩 외벽 위태롭게 매달린 노동자들이 대형 태극기를 새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