꽹과리, 장구 소리 너른 터에 울린다. 높다란 솟대에 걸린 까만색 천이 바람 탄다. 춤추던 이가 몸 던져 흰 천을 가른다. 달그닥 훅 더르르 거기 네거리에 굿거리장단, 난데없는 굿판에 구경꾼이 빼곡 빙 둘러섰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 검은 옷에 빨간 칠을 해서 온 데 누비던 화가는 가끔 양팔 벌려 우주의 기운을 모았고, 검은 옷의 음악가는 마음속에 메
사람들 흰 국화 들고 줄줄이 섰다. 얼굴 없는 영정 앞에 향을 피웠고, 고개 숙였다. 안전화와 안전모와 안전띠가 그 앞자리에 가지런했다. 망자의 것은 아니었다. 2013 대한민국 안전대상 소방방재청상 수상 기념 동판이 박힌 어느 통신 대기업의 높다란 빌딩 앞이었다. 일터는 높았고, 비가 줄줄 내렸다. “일이 많이 밀려 있다. 다 처리하라”는 회사의 지시가
해거름, 낮게 깔린 붉은 빛 온 데 사무쳐 무심코 평범한 것들조차 특별하게 물들던 시간. 걸음 바삐 놀려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은 열리지 않는다. 어둠 곧 짙었고 분간할 수 없는 실루엣이 일렁거린다. 개와 늑대의 시간. 저 멀리 흐릿한 것이 곁을 주던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짙다. 사람들은 촛불을 밝혔다. 경찰 방패 잠시
바람 불어 훌쩍 가을이다. 쌀알 차올라 고개 숙이고 사과·배가 태양 빛 아래 익어 간다. 잠자리 짝지어 날고, 메뚜기가 팔짝 뛴다. 활짝 핀 코스모스 흔들리고 갖은 모양 흰 구름이 흐른다. 할 말 없어 그 말도 많은 추석을 애써 견딘 청년들이 푸를 청,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땀 흘린다. 팔뚝이며 목덜미가 사과처럼 붉게 익어 간다. 커다란 천과
먹구름 짙었고, 꾸르릉 꾸릉 하늘이 울었다. 번개가 번쩍, 꽈광 꽝 천둥소리 뒤따라 거기 죄 많아 창살 없는 길 감옥 신세 오랜 사람들이 기겁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 걱정 많은 게 노숙농성 하는 사람들 숙명. 쏴 하고 소나기 쏟아지니 거기 금세 진자리다. 앉아 오래 버티던 사람들 황급히 일어나 채비한다. 얇디얇은 저 비닐 옷은 곧잘 팔 뻗다 걸려
이제는 잠들어 더는 말 없는 어느 거인의 초상 옆자리 간이침대에 노란 옷 입은 사람이 고된 몸을 잠시 뉘었다. 가슴팍에 내내 밝게 빛나던 스마트폰 화면에 묻고 답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암호 같아 알아보기 힘든 온갖 문서가 흘렀다. 종종 찡그린 표정 방청객 얼굴도 보였는데, 그들 옷차림이 노란색 한결같았다. 거기 참사의 진상을 심문하던 자리. 국회 어느 너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오후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찾아가 단식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만났다. 취임 후 첫 현장 행보다. 추 대표는 야 3당 공조로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유가족의 단식 중단을 호소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흉상이다. 그 사이 등 보인 사람은 세월호 유가족이다. 요구안 적은 종이를 벽에 붙였다. 점거농성이다. 곡기 함께 끊었다. 그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남지 않아 단식한다고 재욱 엄마 홍영미씨가 광장에서 말했다. 그 자리 이름이 사생결단식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야당 정치인들이 말했다. 국회선진화법
길에 줄줄이 섰는데 가림막 따위 없어 땡볕 아래 시달린 피부가 구릿빛, 동메달이다. 해고 200일 맞이 자리였다니 실은 목메달이다. 오래도록 전신주며 건물 벽에 매달렸고, 영업에 매달렸고, 시간에 쫓겨 내달렸다. '니퍼쟁이'들 지금은 길에서 복직싸움에 매달리고 있다. 낡고 때 묻은 선전물 들고 벌서는데, 얼굴이고 겨드랑이고 줄줄 흐르는 게 땀이다. 챙겨 나
횡단보도 가득 채운 사람과 셀카봉. 여름이면 솟던 물줄기와 뛰고 구르며 재잘거리던 꼬마들. 웃음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던 엄마 아빠. 그리고 향불 앞 끝나지 않는 사진전, 시들지 않는 국화, 늘어선 천막과 노란색 깃발. 그 아래 까맣게 탄 사람들까지 광장 풍경이 변함없다. 농성장 돗자리 하나가 늘었대도 익숙한 풍경, 틀린 그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석태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IFC타워 옥시레킷벤키저 본사를 찾아 현장조사를 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특위 위원들에게 '진실'이라는 꽃말을 가진 퐁퐁소국을 전했다.
머리엔 빨간색 띠를, 왼쪽 팔엔 붕대를 두른 이재헌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장이 서울 용산구 갑을빌딩 앞에서 기자를 기다렸다. 앞자리가 한산했다. 건물 안 경비노동자가 폐문 알림장을 유리문에 붙였다. 양복 차림 사람들이 종종 폐문을 드나들었다. 약속한 시각, 마이크 잡아 말을 풀었는데 말 못할 사연이 많아 말이 길었다. 노조파괴를 규탄하고 교섭을 촉구했다.
시골집 개 복슬이다. 엄마 친구다. 간식 잔뜩 사 들고 내려온 아들 등을 때리며 타박하던 엄마는 당신 몫 아이스크림을 손에 덜어 내밀었다. 복슬이가 남김없이 핥았다. 활짝 엄마가 웃었다. 너른 마당 잔디밭을 뛰고 구르다 배고프면 밥그릇에 얼굴 파묻고 부스럭거리다 그늘 찾아 한숨 늘어지게 잔다. 개 팔자가 나쁘지 않다. 십수명이 한자리 모여 가족사진을 찍었는
서울중앙지법 5번 법정 출입구가 꽉 막혀 시끄럽다. 우산이 문제다. 길고 뾰족한 그것은 흉기가 될 수 있다고 그곳 경비노동자가 단호한 말투로 알렸다. 보안문 옆에 번호표 매단 흉기가 잔뜩 쌓였다. 법정은 눈 빨간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탄식이 곧 쏟아졌다. 입 앙다문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데, 우산 찾는 일이 더뎠다. 줄이 길었고 줄지를 않았
누구도 챙겨 주질 않았으니 안전은 제 일이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질 않았으니 안전은 남 일이었다. 에어컨 수리하던 노동자는 안전장비가 없었다. 시간에 쫓겼고 실적압박에 떠밀렸다. 떨어졌고, 죽었다.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어린 아들이 메모지에 적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 배달하던 알바노동자가 쫓기듯 도로를 내달렸다. 최소배달시간 20분이 그를 폭주로 내몰
벌인지 나방인지 정체 모를 큰 날벌레 한 마리가 여의도 민의의 전당 앞 농성장에 날아들었고, 거기 누운 사람 맨발을 타고 종아리까지 기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면서 엄마를 찾았는데, 눈 깜짝할 새였다. 밥 오래 굶었다더니 기력이 아직은 남았다. 젊어서 그렇다고 동조단식 나선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혈압 재 주다가 말했다. 햇볕은 우산 들고, 빗방울은
추적추적 비 오는데, 장지가 멀다. 100리 걸어 부르튼 발가락에 빗물 들어 퉁퉁 살갗이 불었다. 까만 얼굴엔 줄줄 구정물이 흘렀다. 양재 가는 길, 꽃길 100리라 이름 붙인 고행길 한 매듭을 짓던 날, 비가 쏟아졌다. 산발한 상여꾼들이 찢어진 상복 안쪽을 뒤적여 젖은 담배를 물었다. 타들어 갔다. 딱 비에 젖은 상복 두께만큼 가까이서 사람들이 부대꼈다.
한강 노들섬 사는 개 노들이 2세가 한가로이 풀을 씹는다. 보통 터무니없는 말을 두고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하는데, 개는 종종 풀을 뜯는다. 먼 친척 중에 진돗개도 있다는데, 종류를 딱히 말할 수는 없단다. 동네 흔한 똥개다. 사람을 물지 않는단다. 거기 텃밭 도시 농부들이 오며 가며 아는 체를 하면 좋다고 꼬리 치며 바닥을 구른다. 앉아 소리도 잘 알
누가 청년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 들어 저기 안전문을 보게 하라. 보라, 빽빽하게 붙어 있는 저마다의 쓰라린 절규를. 저 슬픈 것들 싹 읽고 나서야 사람들 겨우 한 발짝을 뗀다. 비틀거린다. 거기 종일 파도처럼 몰아치던 어느 정치인의 방문도, 번쩍이던 카메라 플래시도, 쏟아진 온갖 대책도 죄다 연착이었다. 죽음 뒤였다. 피어 보지 못한 미생의 무덤가에 활짝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을 때 초조해하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증상을 일컫는 새 말이다. '노 모바일폰 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줄임말이다. 중독, 금단현상의 일종이다. 집회자리 어디서든 익숙한 풍경이다. 저기 자동차회사 정문 앞에서 영정 지키던 노동자가 스마트폰 들고 바쁘다. 기자회견은 시작부터 다툼으로 번졌고 끝